영화, 드라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배우가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연기 방법으로 알려져 있고, 이를 제대로 할 경우 배우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서 배우와 인물이 구분되지 않는 사실적인 연기라고—흔히들—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주 부족한 설명이다. 우선 그런 설명을 들으면 '어느 배우나 사실적으로 연기하려고 하지 않나? 그럼 모두가 메소드 배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배우 안성기는 한때 '국민배우,' '대배우'라 불렸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그의 연기를 메소드 연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메소드 연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연기가 나빴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사랑받는 배우다. 한국 관객이 안성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송강호를 좋아하는 이유와 다를 뿐이다.

그럼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송강호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일까?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송강호 배우 스스로 메소드 연기를 한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메소드 연기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메소드 연기자라고 말하는 많은 배우들이 자기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했고, 무엇보다 메소드 연기에 대한 많은 오해가 존재한다. (여기에 한글로 잘 정리된 글이 있다).

구글에서 "메소드 연기자(method actors in movies)"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배우가 대니얼 데이 루이스(Daniel Day-Lewis)다.

왼쪽부터 '전망 좋은 방,' '모히컨족의 최후,' '링컨'에 출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출연하는 영화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서 배역에 녹아들기 때문에 같은 배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고 하는 이 배우가 영화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을 촬영하던 중에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아래)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함께 출연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와 나란히 앉아있는 이 사진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 건 두 사람의 의자 때문이다.

헐리우드의 영화 촬영장에는 흔히 '감독 의자(director's chair)'라고 불리는 접이식 의자들이 있다.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촬영 중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이름을 붙여서 배정하는데, 사진 속 데이 루이스는 이를 거부하고 영화의 소품인 1800년대식 의자에 앉아있다. 다른 배우들이었으면 그냥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영화 촬영 중에는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아도 자기의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고 그 인물처럼 말하고 행동한다고 알려진 데이 루이스이기 때문에 이 사진이 유명해진 것이다.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촬영 기간 내내 배역의 옷을 입고 있고, 다른 배우는 물론, 감독이나 스태프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도 배역과 같은 말투를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이미지 출처: Reddit)

그뿐 아니다. 데이 루이스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녹아들기 위해 쏟아붓는 노력은 전설적이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를 촬영할 때는 3일 동안 교도소 독방 생활을 하면서 스태프들이 지나갈 때마다 찬물을 뿌리게 했고, '더 복서(The Boxer)'를 찍기 위해서는 18개월 동안 복싱을 배웠고, '갱스 오브 뉴욕'에서는 한겨울 촬영에도 겨울용 코트를 입기를 거부하다가 폐렴에 걸렸다고 한다. 이 정도면 메소드 연기자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메소드 연기자가 되는 건 아니다. 연기 이론가에 따라서는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방법론을 메소드 연기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다. 그럼 도대체 메소드 연기가 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메소드 연기의 흥미로운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관객이 영화나 연극을 즐기기 위해 연기의 역사를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때로는 종교의 발생 과정을 연상시키는—메소드 연기론의  역사를 알면 우리가 좋아하는 뛰어난 배우들도 조금씩 다른 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연기 철학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식이 미디어의 변화와 함께 어떻게 바뀌었고,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인물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학습하고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아래의 글은 2022년에 출간된 'The Method: How the Twentieth Century Learned to Act (메소드: 20세기는 어떻게 연기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나)'라는 책에 담긴 내용으로, 저자인 아이작 버틀러(Isaac Butler)의 인터뷰서평/책 소개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을 덧붙였다.

저자 아이작 버틀러는 뉴욕에서 연극 감독으로 일하며 학교(New School)에서 연기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원래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어릴 때 아역 배우였고, 대학에서도 연기를 공부했던 그가 연기를 포기하게 된 데는—아마도 진지한 연기자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특이한 사연이 있다.  

버틀러는 대학생 때 학교에서 공연하는 에릭 보고시언(Eric Bogosian)의 '토크 라디오(Talk Radio)'라는 작품에 주연으로 참여했다. 하워드 스턴(Howard Stern)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미국 특유의 거친 입담의 라디오쇼 진행자("shock jock")에 관한 연극이었고, 주인공은 연극이 진행되는 90분 내내 줄담배를 피우며 청취자의 전화에 답하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나이가 많았고,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을 겪고 있었는데, 대학생인 버틀러는 그 역을 연기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우울증과 고독, 불안감, 죄책감을 다 끌어내 사용했다. 배역이 겪고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그 인물로 변한 것이다.

그렇게 연기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면 아팠다고 한다. 감정만 완전히 고갈되는 게 아니라 몸도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 의자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3, 4회밖에 하지 않은 공연이었지만, 그 경험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공연을 모두 마친 후에는 '나는 아무래도 연기자가 될 만큼 튼튼하지 못한 것 같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버틀러가 연기를 포기한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던 거다. 그는 연기자가 되는 대신 감독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영화배우 리브 슈라이버가 연기한 '토크 쇼'의 한 장면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하지만 버틀러는 정말로 그렇게 혼신을 다 바쳐 배역으로 변신해야 했을까? 그래야 훌륭한 연기자가 되었을까?

1923년 스트라스버그

저자 버틀러가 대학교에서 연기를 할 때만 해도 그게 당연히 "좋은" 연기로 여겨졌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니, 원래 좋은 연기자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기자는 배역을 표현하기 위해 그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껴야 할까?"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 하나 마나 한 질문처럼 들리지만, 서구의 연극사에서는 오랜 논쟁의 주제였다. 우선 셰익스피어는 연기자가 배역의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쪽이다. 햄릿은 그저 대사를 외워서 읊는 게 아니라 배역 속에 빠져들어 가야 한다고 믿었다.

계몽주의자로 유명한 디드로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마음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 열정적인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힘이 빠지면서 지루하고 재미없는 연기를 하는 식으로 연기에 변동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배우가 꾸준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목소리와 몸동작 등의 외적인 부분의 테크닉을 연마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의 유령을 본 햄릿 (이미지 출처: Huntington Library)

그렇다면 열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경우에는 "연기에 변동이 심하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메소드(the method)'라는 말을 만들어 낸 리 스트라스버그(Lee Strasberg)다. 1901년 현재 우크라이나에 속한 부드나이우(당시는 폴란드 영토)에서 태어난 리 스트라스버그는 유대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서 자랐다. 친척이 운영하는 극단에서 분장 등의 일을 돕던 스트라스버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연극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브로드웨이에서 열리던 연극을 보면서 당대의 전설적인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던 스트라스버그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배우들의 불같은 연기가 연극 중반에 힘을 잃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연극 초반에는 그저 그런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불이 붙으면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도대체 배우들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뛰어난 연기가 이렇게 들쭉날쭉 하는 걸까?

스트라스버그는 21살이던 1923년, 뉴욕의 알 졸슨(Al Jolson) 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표트르 이바노비치 황제(Tsar Fyodor Ivanovich)'라는 제목의 이 연극은 19세기에 쓰여졌고, 16세기 러시아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는, 러시아어 연극이었고, 모스크바 아트 시어터(Moscow Art Theatre)라는 극단의 공연이었다. 스트라스버그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고, 대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알아볼 수 있었다.

뉴욕 센트럴 파크 남쪽에 있던 알 졸슨 극장 (이미지 출처: IBDB)

모스크바에서 온 그 배우들의 연기는 스트라스버그가 이제까지 뉴욕에서 본 미국 배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주연, 조연을 막론하고 배우 같지 않았고, 마치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처럼 연기했다.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기를 배운 걸까?

그 해답은 그 연극의 감독이자, 모스크바 아트 시어터의 창립자에 있었다.

1898년 스타니슬랍스키

그 모스크바 극단의 창립자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Константин Станиславский, Konstantin Stanislavski). 배우들의 연기가 들쭉날쭉 하는 이유가 뭔지를 스트라스버그보다 20여 년 먼저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탄생한 연기법에 '시스템(the system,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이라고도 불린다)'이라는 단순한 이름을 붙였다. 이 결과물은 '메소드'라는 이름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연극을 바꿨을 뿐 아니라, 무섭게 성장하던 헐리우드의 영화 속 연기를 바꿨고, 우리가 아는 '좋은 연기'의 기준이 되었다.

스타니슬랍스키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는 걸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는 '진리(truth)'를 찾으려 했고, 그가 찾아낸 해답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두고 크게 다투면서 계파가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사를 빛낸 명배우 알 파치노(Al Pacino)와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가 바로 그렇게 서로 다른 계파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다. 두 사람의 연기법이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치게 될 거고, 몰랐다면 이들의 연기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될 거다.

참고로, 이들의 연기를 한 작품 내에서 비교해서 보고 싶다면 나는 영화 '히트(Heat, 1995)'를 추천한다.

영화 '히트'에서 주연을 맡은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메소드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