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기업이 된 신문사 ②
• 댓글 3개 보기'혁신 보고서'가 발간된 후로 지금까지 9년 동안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부문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가령, 대표 웹사이트인 newyorktimes.com에 추천 알고리듬이 적용되었다. 이 웹사이트는 수백만 독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유료 구독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찾아낸다.
하지만 웹사이트가 전부가 아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읽을 수 있는 뉴욕타임즈 앱이 있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NYT Now라는 앱도 있었고, 크로스퍼즐과 스도쿠, 워들 등의 게임을 할 수 있는 NYT Games,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뉴욕타임즈 쿠킹 섹션에 등장하는 레시피를 모은 NYT Cooking, 그리고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읽어주고 각종 팟캐스트를 모아 둔 NYT Audio도 있다. 심지어 종이로 만든 VR 고글도 나눠준 적도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띄우고, 폰을 고글에 끼워서 보게 하는 시도였다.
이 모든 것들이 뉴스를 새로운 방법으로 포장해서 독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시도이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인터넷의 거대한 사이트로 몰려간 독자들을 다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다른 언론사들과 마찬가지로 뉴욕타임즈는 구글, 페이스북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다. 온라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빅테크가 하는 게임을 해서 이기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의 CEO인 메레디스 코핏 레비언(Meredith Kopit Levien)은 2020년, 한 컨퍼런스에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타임즈 구독자가 500만 명이 넘습니다. 큰 숫자처럼 들리지만, 매주 저희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5,000만 명입니다. 이 사람들은 구글, 페이스북을 포함한 인터넷 어디에선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희 기사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빅테크가 사용하는 전략을 가져와야 했다. 빅테크는 중독적(addictive)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사는 독자의 디지털 경험을 빅테크만큼이나 중독적으로 만들어야 하고, 저널리즘에서는 다른 언론사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는 게 레비언의 생각이었다.
여기서 잠깐, 이런 디지털 혁신은 공짜로 되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즈는 이런 작업에 들어가는 돈을 어떻게 충당했을까? 뉴욕 맨해튼 8번가에 있는 뉴욕타임즈 사옥은 2007년에 완성된 건물이다. 이 건물이 완성될 즈음 뉴욕타임즈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했고, 완성된 이듬해인 2008년에는 이를 매각하고 지금까지 세들어 살고 있다. 이 매각 대금의 일부가 디지털 혁신 작업에 투여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뉴욕타임즈의 경영진은 인터뷰나 실적 보고 때 '중독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이 표현은 원래 실리콘밸리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의학적 정의의 중독은 아닐 수 있어도, 소셜미디어를 오래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다들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페이스북의 의장이었던 션 파커(Sean Parker, 냅스터 창업자)는 2017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앱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시간과 의식적인 집중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가, 였습니다."
페이스북과 사용자의 집중을 빼앗기 위해 경쟁을 하겠다면 뉴욕타임즈도 똑같은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뉴욕타임즈에서 제품 분석을 담당하는 캐시 종(Kathy Zong)은 "중요한 뉴스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독자들이 뉴욕타임즈 앱과 웹사이트를 찾아오는 습관을 형성하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경영진이 원하는 건 사용자들과의 터치 포인트(touch points)를 만들어서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뉴욕타임즈에 들어오게 하는 겁니다. 아침에 잠을 깨면 폰에 뜬 알림을 보고, 앱에 들어가서 기사를 읽게 하는 거죠." 그 결과, 출근 준비를 하면서 혹은 운전을 하면서 더 데일리(The Daily, 뉴욕타임즈의 인기 팟캐스트)를 켜놓고, 점심 시간에는 NYT 게임 앱을 켜서 퍼즐을 푼다.
그뿐 아니다. 마트에 가기 전에 NYT 쿠킹 앱을 열어 레시피를 고르고 사야할 재료를 정하고, 가는 길에 뉴욕타임즈에서 만든 팟캐스트를 듣는다. 뉴욕타임즈는 2020년에 팟캐스트 제작 회사인 시리얼(Serial) 프로덕션을 인수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훌루(Hulu), FX 등을 통해 방영한다.
모든 시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벤 스미스는 뉴욕타임즈는 더 이상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며, 그 시장에서 나온 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에서 볼만한 영화가 뭔지 추천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경쟁하는 것보다 낫다는 거다. 뉴욕타임즈가 그렇게 사람들이 일상에서 필요한 각종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최종 목적지로 자리매김하면 그다음에는 많은 걸 팔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이 그래도 되는 걸까?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 관심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이니 신문사도 같은 룰에 따라 경쟁을 한다고 봐도 될까? 벤 스미스는 이 질문을 다르게 던진다. "그 정도는 유료 구독 서비스로서는 상식적인 목표가 아닐까? 하루 종일 뉴욕타임즈를 뒤지는 게 하루 종일 구글과 페이스북에서 혼란스러운 정보를 뒤지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일까?"
그는 오히려 걱정해야 할 부분은 정보의 단일재배(monoculture),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의 매체에서만 정보를 얻게 되는 현상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소셜미디어가 뉴스를 지배하는 것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매체 하나에 의존하고 싶어 하고, 하나를 고른다면 뉴욕타임즈는 그중 가장 큰 매체인 게 사실이다.
테크기업이 된 신문사
역설적이지만 뉴욕타임즈의 급성장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이 신문을 가장 싫어하는 트럼프다. 트럼프의 집권 기간 중 뉴욕타임즈의 구독자는 크게 늘어났다. 뉴욕타임즈만 그랬던 건 아니다. 워낙 뉴스를 많이 만들어 내다보니 사람들은 매일 뉴스를 따라잡기 바빴고, 모든 매체가 그 덕을 봤다. 하지만 트럼프의 시대가 끝나자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매체들은 트럼프 이전으로 돌아갔고, 여전히 디지털 전환으로 고전하고 있다.
그에 반해 뉴욕타임즈는 독자의 일상을 모두 커버하게 되면서 독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기사를 읽고 싶지 않으면 레시피를 찾아 볼 수도 있고, 게임이나 팟캐스트를 즐기거나 스포츠 경기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뉴욕타임즈는 이를 "전통적인 신문의 번들(bundle)을 디지털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신문의 '번들'이란, 모든 종류의 정보를 한 묶음으로 파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신문에 등장하는 모든 기사를 읽지 않는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면만 읽고, 문화, 연예에는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원하는 기사만 골라서 사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한 묶음으로 구매해야 한다. 매체는 이런 방법을 통해 더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래도 뉴욕타임즈는 여전히 신문일까? 메레디스 레비언은 그렇다고 답한다. 디지털 프로덕트 개발팀과 엔지니어, 데이터 전문가를 갖추고 테크놀로지를 잘 활용하지만, 뉴욕타임즈의 핵심은 저널리즘이라는 거다. 하지만 뉴욕타임즈는 그냥 테크 기업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를 가르치고 이 주제로 중요한 글을 많이 써온 뉴욕 대학교의 클레이 셔키(Clay Shirky)가 그런 사람이다.
클레이 셔키는 "테크 기업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기업인가"라고 묻는다. 쉬운 질문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구글, 위워크, 우버 같은 기업들은 모두 테크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각 기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살펴보면 구글은 광고업계, 위워크는 부동산업계, 우버는 운송업계에서 일하는 기업이다. 이들이 자신들을 테크 기업이라고 부르는 건 궁극적으로 마케팅 전략이고, 실리콘밸리가 재정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시기와 관련이 있다. 셔키는 그랬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이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걸 보면, 우리가 지난 20년 동안 테크 기업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이자율 0%로 돈을 빌릴 수 있던 기업이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기업들은 그저 다른 기업들은 불가능했던 투자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러니 많은 돈을 주고 엔지니어들을 싹쓸이할 수 있었고,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달리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없는 업종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을 구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앞으로 미디어나 금융업계에서도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채용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 기업도 인터넷 기술을 잘 아는 엔지니어들을 데려올 수 있게 될 것이고, 뉴욕타임즈가 이런 추세의 선봉에 있다."
하지만 신문사가 이렇게 실리콘밸리의 전략과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뉴욕타임즈 내부에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경영진은 테크 기업의 전략을 추구하면서도 이 회사가 테크 기업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유는? 테크 기업 수준의 연봉을 주기 싫은 거다. 뉴욕타임즈 직원들이 소속된 노조인 테크길드(Times Tech Guild)는 경영진에게 이를 해결하도록 요구하며 싸웠다. 데이터 과학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프로덕트 매니저처럼 전형적인 테크 기업의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신문사 수준의 연봉을 받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즈 직원들이 보기에는 경영진이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말을 바꾼다. 테크 쪽 업무를 하는 직원들에게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워싱턴포스트나 CNN, 월스트리트저널"이라고 말하고, 뉴스룸에서 일하는 기자들에게는 뉴욕타임즈가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같은 유료 구독 서비스와 경쟁한다고 말하는 거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CEO가 작년에 받은 돈은 700만 달러(약 91억 원)에 가깝다. 똑똑한 뉴욕타임즈 기자들은 그 의미를 잘 안다. 그런 액수는 테크 기업의 연봉이지, 신문업계의 연봉이 아니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싸운 끝에 뉴욕타임즈 노조는 최저 연봉(salary floor)을 65,000달러로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38,000달러였다.) 뉴욕타임즈는 이제 10년 전과 다른 기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뉴욕타임즈 빌딩 앞에서 십 대 아이들이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을 들었다. "이 회사가 워들(Wordle)을 인수한 회사래."
이들의 인식에 뉴욕타임즈는 신문사가 아니다. 테크 기업인데 저널리즘도 하는 회사인 것이다.
모방 불가의 시장 지배자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성공이 가진 그늘이 있다. 벤 스미스는 뉴욕타임즈가 테크 기업이 되면서 한 기업이 특정 시장의 독점적 지배자가 되는 빅 테크처럼 변했다고 한다. 검색에서 구글을 따를 기업이 없고, 소셜미디어에서 메타를 이길 기업이 없는 것처럼, 뉴욕타임즈를 이길 수 있는 신문은 나오기 힘들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앞서 나가면서 더 많은 유료 구독자를 모을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최고의 인재를 데려올 수 있고, 최고의 저널리스트가 가장 훌륭한 보도를 하면서 더 많은 구독자를 얻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뉴욕타임즈의 선순환은 경쟁 기업들에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뉴욕타임즈는 미국에서 다른 모든 신문의 구독자들을 합친 것보다 많은 구독자를 확보했다. 독자들이 단 하나의 신문을 구독한다면 그건 뉴욕타임즈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가 저물어 가는 신문업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냈다고 보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일은 뉴욕타임즈만 할 수 있어서다. 클레이 셔키는 이렇게 설명한다.
"설즈버거 발행인이 뉴욕타임즈를 성공시킨 경험을 갖고 LA타임즈로 간다고 똑같은 성공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하버드 대학교나 구글을 카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특정 분야를 완전히 지배하는 리더에게서 경쟁자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별로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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