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뉴욕타임즈의 구독자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종이신문 구독자 67만 명에 디지털 구독자 941만을 합한 숫자다. 재정도 좋았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한 5억 9,830만달러(약 7,852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0.1% 증가한 8,980만달러(약 1,178억원)였다. 오터레터에서 '뉴욕타임즈의 트위터 고민'이라는 글로 간략하게 설명한 적도 있지만, 뉴욕타임즈의 디지털 적응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 신문은 '인터넷 세상에서 신문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넘게 고민과 실험을 거듭한 결과, 세계 모든 언론사가 부러워하는 성공을 만들어 냈다.

뉴욕타임즈의 성공 소식을 듣는 언론계 종사자들의 머리에는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건 짐작이 아니라, 내가 기자나 경영인들을 만나서 항상 들었던 질문이다.) 하나는 '어떻게 가능했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도 그걸 할 수 있느냐'이다. 온더미디어(On The Media)에서 이를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다. 이 대화에는 올해 'Traffic'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모은 벤 스미스(Ben Smith),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 관해 글을 쓰는 클레이 셔키(Clay Shirky) 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벤 스미스의 책 소개를 포함한 '에스콰이어'의 특집 기사는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2011년에 나온 다큐멘터리 'Page One: Inside the New York Times (첫 페이지: 뉴욕타임즈 내부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튜브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다만 다른 웹사이트에 임베드해서 재생할 수 없게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보시기 바란다.) 특히 영상 앞부분 17분 지점에서 뉴욕타임즈의 전설적인 미디어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카(David Carr)가 온라인 매체 '바이스(Vice)'를 찾아가 취재하는 장면이 이 대화의 도입부다.

약간의 사족이지만, 데이비드 카는 뉴욕타임즈가 자기반성을 하는 백서에 가까운 '혁신 보고서'를 내놓으며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절인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유능한 기자였다가 마약 중독에 빠져 삶이 끝날 뻔했다가 벗어난 카가 함께 중독에 빠졌다가 사망한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을 기르게 된 이야기를 다룬 글은 책으로도 나와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의 내용을 발췌, 소개한 뉴욕타임즈매거진의 기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할 뿐 아니라, 내게 힘이 되어준 글이라 조금 길어도 기회가 되면 번역해서 오터레터에 소개하고 싶다.
카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딸 에린(Erin)은 회고록에서 아버지의 직설적이고 단도직입적인 말버릇을 설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위해 인터뷰를 하러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차로 태워다 줬다고 한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면서 에린을 슬쩍 보더니 "너 오늘 샤워했냐?"고 물었다. 그날 머리를 감지 않은 에린은 그런 거 묻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에린, 넌 매일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않아(“You are not smart nor pretty enough to not shower every day)"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성격을 알면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가 더욱 생동감 있게 들린다.
데이비드 카 (이미지 출처: SXSW)

데이비드 카는 2010년, 한창 잘 나가던 온라인 매체 바이스를 취재하기 위해 그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찾아간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를 안내하는 직원이 바이스의 다른 직원들에게 "뉴욕타임즈의 데이비드 카"라고 일일이 소개하자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제지한다. 그런 그의 말은 2010년 당시 뉴욕타임즈의 분위기, 특히 미디어 전문기자가 느끼는 뉴욕타임즈의 상황을 잘 설명한다.

"자꾸 제가 뉴욕타임즈에서 왔다고 하지 마세요. 좋은 소리도 아닌데. (Don't keep saying I'm from New York Times, it sucks.)"

바이스는 셰인 스미스(Shane Smith)를 비롯한 세 명의 공동창업자—그중 한 명은 미국의 극우단체 'Proud Boys'를 설립한 개빈 매키니스(Gavin McInnes)다—가 1994년 캐나다에서 설립한 종이매체 'Voice of Montreal'에서 출발했다. 2006년, 이 회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소피아 코폴라의 전남편으로,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인물. 영화 '그녀(Her)'를 감독했다)의 설득으로 온라인으로 영역을 넓혔고, 온라인 미디어가 큰 인기를 끌던 2010년대를 주도하던 매체 중 하나가 되었다. 데이비드 카는 이들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것이지만, 바이스가 저널리즘에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런 선입견에 "버즈피드, 바이스는 뜨는 온라인 매체, 뉴욕타임즈는 침몰하는 종이 매체"라는 당시 업계의 인식까지 더해져 좋은 기분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스 미디어의 사무실 (이미지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하지만 그의 속을 뒤집은 건 셰인 스미스의 말이었다. 영상을 보면 스미스는 노트북이 부서질 듯 열심히 키보드를 누르는 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의 곤조 저널리즘을 설명하며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군벌들이 인육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바이스의 다큐멘터리 'The Cannibal Warlords of Liberia'에 대해 한 말이다.)

"저는 라이베리아에 대해서 몰라요.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아는 척하지도 않아요.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다들 그곳에서 인육을 먹는다고 하는데 뉴욕타임즈는 서핑에 관한 얘기만 하고 있죠. 그걸 보면서 결정했죠. "좋아, 나는 서핑 얘기는 하지 않겠어. 인육 먹는 얘기를 취재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가 "잠깐만"하고 끼어들었다. "당신네가 라이베리아에 가기 전에 우리 신문의 기자들이 그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종학살을 계속해서 취재했어. X팔 사파리 모자 좀 쓰고 가서 현장 좀 둘러봤다고 해서 뉴욕타임즈가 하는 일을 모욕할 자격이 생기는 거 아니야. 자, 계속 말해 봐." (굳이 반말로 번역한 이유는 그의 말투 때문이다. 도저히 존댓말로 번역하기 힘든 그런 말투다. 영상의 이 부분을 직접 보시길—옮긴이)

말 곱게 하지 않기로 유명한 카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스미스는 얼굴이 붉게 변하며 사과하고 "저희는 보도(reporting)를 하러 간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고, 카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누구나 알아. 얘기 계속해. (Obviously. Go ahead)"

맨 왼쪽이 데이비드 카, 맨 오른쪽이 셰인 스미스 (이미지 출처: Page One)

이 대화는 이 다큐멘터리의 백미이자, 두고두고 언론계에서 회자되는 장면이 되었다. 자신의 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이 든 기자가 저널리스트의 원칙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당장 자기가 속한 언론사가 침몰하고 있는 순간에.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바이스는 지난 5월에 파산했고, 뉴욕타임즈는 그 어느 때보다 잘 나가고 있다. 구독자와 수익이 꾸준히 감소하던 긴 세월을 버텨낸 끝에 디지털과 종이 구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신문이 믿어지지 않는 일을 해냈다고 부러워한다. 다른 언론사들은 허덕이고 있는 세상에서 뉴욕타임즈는 어떻게 이윤을 내고 있는 걸까? 그 비결 중 하나는 뉴욕타임즈가 테크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2010년대 초, 언론사들의 전망은 좋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독자가 소셜미디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2004년, 트위터는 2006년에 시작해서 사용자들을 빠르게 모으고 있었고, 디지털 광고 시장은 구글과 페이스북이 완전히 장악했다. 원래 온라인 광고는 신문사를 지탱해 온 종이 매체의 광고보다 싸기 때문에 온라인 광고만으로 기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방문자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해낼 수 있는 기업은 결국 거대 플랫폼이다.

결국 2011년, 뉴욕타임즈는 온라인 뉴스도 유료 구독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한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공짜로 기사를 읽는 데 익숙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돈을 내라고 하면 다른 뉴스 사이트로 이동할 게 분명했고, 그러면 그나마 나오던 광고 수입마저 줄어들게 될 것이었다. 뉴욕타임즈 경영진은 유료 구독화를 조심스럽게 설계했다. 뉴욕타임즈에서 기사를 많이 읽는 독자들은 구독료를 지불하면서라도 계속 읽을 것이고, 가끔씩만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적은 수의 기사를 무료로 계속 읽게 함으로써 방문자를 유지해 광고 수익이 줄어드는 것을 막은 것이다.

버즈피드 뉴스에서 일하던 시절의 벤 스미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데이비드 카가 세상을 떠난 후 뉴욕타임즈의 미디어 칼럼니스트로 일하기도 했던 벤 스미스는 "테크 업계에서는 빠른 추적자(fast follower)가 되어야 하는 게 정설이지만, 뉴욕타임즈는 다른 기업들을 관찰하면서 기다렸고, 천천히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뉴욕타임즈는 스포티파이와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이 성장하는 걸 기다렸다. 사람들이 이 기업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구독료를 내는 데 익숙해진 후에 비로소 유료화를 단행한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조직 문화를 인터넷 중심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지금은 발행인이 된 A.G. 설즈버거(Sulzberger)는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종의 의식(ritual)이 필요했고, 신문사인 뉴욕타임즈에게 그 의식은 보도(reporting)라고 보았다. 그는 사내에서 인정받는 기자들을 골라 뉴욕타임즈가 왜 인터넷에서 고전을 하는지, 이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취재'를 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2014년에 나온 96페이지짜리 문서가 'Innovation Report(혁신 보고서)'다.

보고서 원문은 여기에서, 한글 번역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뉴욕타임즈가 당장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데이터를 더 많이 수집하고, 스스로를 진정한 '디지털 퍼스트' 매체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벤 스미스에 따르면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 특별한 건 아니었다. 사람들이 기사를 온라인에서 읽기 때문에 기사를 작성할 때도 (종이 신문이 아닌) 온라인에서 읽기 좋게 써야 한다는 게 대단한 조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보고서가 조직 내에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뉴욕타임즈 구성원들에게 이 보고서는 교황이 내린 회칙(papal encyclical)과도 같은 것이었고, 아주 중요한 신호였다.


'테크기업 NYT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