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의 푸른 눈물 ②
• 댓글 4개 보기콩고의 코발트 광산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지난 몇 년 동안 언론 기사와 다큐멘터리 등으로 제법 많이 다뤄졌다. 잘 사는 나라들에서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를 사용하자고 하고 있지만, 그런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서 콩고의 코발트 생산지에서는 멀쩡하게 농사를 짓고 살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광산 노동자로 전락해 고통을 받고 있다.
잠깐, 앞에서 코발트 광석은 채굴하기 쉽게 지표면 가까이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맞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비극의 씨앗이 있다. 코발트가 다른 자원처럼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 존재한다면 고가의 기계를 동원하지 않으면 뽑아내지 못하겠지만, 지표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은 곡괭이만으로도 코발트 광석을 캘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캐내다 보면 점점 깊이 파고들어가게 되는데, 코발트-구리 광맥을 따라서 파다가 지하 수십 미터 아래로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데 이들은 전문 광부가 아니기 때문에 땅을 안전하게 파는 방법을 모르고, 버팀목도 제대로 설치하지 못한다. 당연히 각종 사고가 빈번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어설프게 판 터널이 무너져 생매장되는 일이 잦다.
코발트도 다른 광물처럼 굴삭기, 불도저 등을 동원해서 채굴할 수 있고, 그렇게 채굴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실제로 대형 코발트 광산은 그렇게 채굴한다. 하지만 그런 기계화된 광산 바로 옆에서는 곡괭이나 삽 한 자루만 가진 주민들이 일한다. 이런 사람들을 artisan miner, 즉 독립 광부라 부른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잃고 갈 곳이 없을 뿐 아니라, 땅을 잃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땅을 파서 매일 1, 2달러라도 벌지 못하면 굶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론의 고발로 독립 광부들이 처한 위험이 알려지자 리튬이온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 일본, 한국, 핀란드의 대기업과 전기차 생산업체들은 "우리는 독립 광부가 채굴한 코발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이런 루트를 차단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굴삭기, 분쇄기를 사용해 코발트를 채굴할 경우 순도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사람이 위험한 구덩이에 직접 들어가 광맥을 찾아 캐내고, 캐낸 광석을 손으로 씻어 골라낸 코발트의 품질을 따라갈 수 없다. 여기에 코발트 광산의 더러운 비밀이 있다.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아무리 '깨끗한 코발트'라고 주장해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위험에 노출된 독립 광부들이 목숨을 걸고 생산한 코발트가 섞여 들어간다. (콩고에서 생산되는 코발트의 약 30%가 독립 광부들이 캐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저자 시다르트 카라는 배터리 생산업체들과 코발트 광산업체들(잘 알려진 것처럼 아프리카의 코발트 광산은 대부분 중국기업이 장악했다)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밝히기 위해 콩고의 코발트 생산지를 돌아다니며 현장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콩고 정부는 이런 비밀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군인을 배치해서 철저하게 막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취재였고, '코발트 레드'는 그 결과물이다.
나는 이 책이 꼭 한국어로 번역되었으면 한다. 콩고에서 사들인 코발트로 배터리를 만드는 한국 기업, 그 배터리를 이용해 전기차를 만드는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에 제품을 팔고 있다면,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한국으로 들어와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전기차를 타면서 지구를 보호하고 인류를 구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이 광물이 생산되는 현장을 봐야 한다.
물론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0여분짜리 영상을 봐도 좋고, 기사를 읽어도 좋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짧은 보도가 전달하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사람들의 목소리다. "한 명 죽으면 비극이지만, 수만 명이 죽으면 통계"라는 말처럼 우리는 큰 비극에 오히려 둔감해질 수 있다. 특히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무엇보다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면 왠지 그 사람들은 슬픔에 익숙할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삶이 저렇게 힘들면 가족을 잃은 슬픔도 금방 잊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아주, 아주 큰 착각이다.
터널 붕괴로 아들을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어제도 일어났고, 오늘도 일어날 일이다.
트쉬테의 이야기
틸웨젬베(Tilwezembe) 광산에서 일했거나, 자기 아이들이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며칠 동안 인터뷰를 한 후, 나는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목격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얼굴이었다. 그중에서도 트쉬테(Tshite)라는 이름의 남자의 사연은 특별했다.
내 앞에 앉은 트쉬테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 죄책감으로 떨리며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큰아들 루보(Lubo)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트쉬테는 루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 아이를 유독 사랑했다. 트쉬테에게 루보는 엄청난 선물이자 희망이었다. 그는 루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들겠다"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트쉬테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루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틸웨젬베에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제가 아이에게 그랬죠, '너는 나처럼 손으로 일하지 말고 머리로 일해야 한다'고요. 매일 저녁 틸웨젬베에서 돌아오면 온몸이 아팠어요. 머리도, 목도 너무 아팠고, 발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손에는 물집이 가득했고요. 심지어 입안에도 물집이 잡혔어요. 가슴은 항상 타는 것처럼 쓰렸고, 기침은 멈추지 않았죠." (독성을 가진 코발트를 캐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증상–옮긴이)
트쉬테는 아무리 고통스럽고, 아무리 아파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루보가 학업을 멈추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무상교육이 없는 콩고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일이 흔하다–옮긴이)
그러던 어느날 틸웨젬베 광산에서 사고가 났다. 트쉬테가 들어가 일하던 구덩이의 벽이 무너진 것이다. 그 사고로 그는 오른팔이 부러졌고, 한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그때 아들이 제게 그러더라고요,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일하면 돼.' 제가 아이에게 그랬죠, '안 된다. 너는 학업을 멈추면 안 돼. 학교는 한 번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 힘들어.' 저는 아이에게 내가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루보는 자기가 아빠를 도울 수 있으면 자랑스러울 것 같다고 했죠. 그리고 제가 다시 일할 수 있게 되면 바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했어요."
아들 루보는 그렇게 코발트 캐내는 일을 시작했다.
"루보는 (제가 일하던) 틸웨젬베로 일하러 갔어요. 그곳에서 작업을 지휘하던 사람은 아란(Arran)이라는 레바논계 남자였는데, 남자아이들 200명이 그의 밑에서 일했죠. 틸웨젬베에서 일꾼을 가장 많이 데리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아란이 루보에게 너도 터널을 파라고 했답니다. 저는 루보가 코발트 채굴 일을 해도 터널은 파지 않았으면 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란은 루보에게 터널 파기 싫으면 여기에서 일하지 말라고 했대요.
그래서 결국 터널을 파는 일을 한 달을 했어요. 저는 매일 그 아이가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도했죠. 제 팔은 거의 다 나아가고 있었어요. 며칠만 있으면 저도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럼, 루보도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였고요.
하지만 (2019년) 1월 18일 저녁, 루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광산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다른 부모들이 벌써 나와 있었어요. 부모들은 "내 아들 어디 있냐? 내 아들 내놔라!"라고 외쳤죠. 하지만 군인들이 나와서 저희 얼굴에 총구를 들이대고 죽기 싫으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미칠 것 같았어요. 도대체 루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했어요! 저는 광산 입구를 오가며 군인들에게 제발 내 아들을 찾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돌아온 건 주먹질과 발길질이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광산 근처에 있는 나무들 뒤에 숨어서 밤을 새웠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다시 광산 입구로 갔죠. 다른 부모들도 모두 돌아왔어요. 사람들이 다시 소리를 높였고, 군인들은 다시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죠. 그러고 있는데 CMKK에서 온 관계자가 지프를 타고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저희에게 상황을 설명할 테니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전날 터널 하나가 무너졌고, 생존자는 없다는 게 그의 말이었죠."
며칠 후 트쉬테와 그의 아내는 터널이 무너졌을 때 최소 40명의 아이가 안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터널 밖에서 일하던 독립 광부들은 땅을 파서 아이들의 시신 일부를 꺼내야 했다. 그렇게 17구의 시신을 꺼낼 수 있었고, 그중 하나가 루보의 시신이었다.
"저는 제 아들의 시신을 껴안고 제발 돌아와달라고 사정했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내가 트쉬테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부러진 팔이 아들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길어도 일주일이면 자신이 광산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면 루보는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저는 루보가 너무 보고 싶어요. 그 아이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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