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새로 나온 책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을 읽고 썼습니다. 이 책을 펴낸 위즈덤하우스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10권을 보내드린다고 합니다. 받으시는 방법은 글 마지막에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 특히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종교적 신앙과 과학이 충돌한다고 느낄 때, 혹은 그런 공격을 받을 때 심적으로 대피할 수 있는 안전한 항구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10년 넘게 미국의 국립보건원(NIH) 원장이었고, 그 유명한 인간지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이끌었던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다. 콜린스는 의사이자 유전학자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인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냥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학문이 충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사람이다. 더 대단한 건 콜린스가 믿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 진영에서도 그를 존중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대표적인 무신론자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난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였다.

하지만 프랜시스 콜린스가 젊은 시절에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에 따르면 자신은 20대 때까지도 불가지론자(agnostic,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아니라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로 자처하며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생각을 바꿔 신앙인이 된 것은 병원에서 만난 한 환자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프랜시스 콜린스(왼쪽)와 마이클 셔머

그런 콜린스와 사고의 궤적이 데칼코마니처럼 반대인 사람이 있다. 무신론자들의 사이에서 스타와도 같은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다. 셔머는 자신이 불가지론자, 무신론자(atheist)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회의론자(skeptic)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선호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우리나라에도 번역, 판매되는 잡지 스켑틱(Skeptic)의 공동 설립자이자 편집장이다.

셔머는 자신의 책 'The Believing Brain'에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서 자라서 신학을 공부하려던 자신이 20대에 생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에 반대하는 과학 저술가가 된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프랜시스 콜린스가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이 한 때 가졌던 확고한 신념을 180도 전환해서 완전히 다른 신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두 사람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누구나 생각을 바꾸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자신의 생각을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고 고수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발언의 자유를 짓밟을 수는 있어도 사고의 자유는 건드릴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믿음을 갖고 산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인류가 겪은 일들을 돌이켜 보면 그렇게 낙관적인 태도로 만족할 상황은 아니다. 트럼프가 뻔뻔한 거짓말을 퍼뜨리고 대안 진실(alternative facts)이라는 말이 생겼고, 팬데믹을 거치면서 거짓말과 허위 정보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우리는 똑똑히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를 위협하는 지구 온난화는 부패한 기업과 정치인이 퍼뜨리는 과학부정론에 부딪혀 대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잘못된 믿음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가능하기는 한 걸까?

2019년에 '포스트 트루스'를 펴내서 주목을 받았던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가 새롭게 펴낸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Conversations with Flat Earthers, Climate Deniers, and Others Who Defy Reason)'라는 꽤 긴 제목의 책은 바로 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과학부정론자들과 대화하는 법'이라는 다소 딱딱한 영문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한국어판 제목은 훨씬 더 재미있어 보인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의 책처럼 유머러스한 문장이 넘쳐나는 책은 아니지만–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대화들이 모두 즐겁고 생산적인 건 아니지만–재미있는 책인 건 맞다. 저자가 평평한 지구설을 믿는 사람들의 집회(평평한 지구학회 모임)를 찾아가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부터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누구나 궁금하지만 실생활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을 대신 만나서 그 경험을 들려주니 오죽하겠나.

물론 지구가 우주에 떠 있는 둥근 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아주 극소수이고, 그들이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그리고 그럴 이유도 없어 보이니) 우리의 삶을 위협할 일은 없다. 하지만 과학부정론자들 중에서도 극단적인 집단에 속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첫 챕터에 배치한 건 흥행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부정론자들의 사고방식과 대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꽤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가령 이들이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좋아한다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지만, 그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꽤 많고, 집회 자체가 일종의 부흥회 분위기라는 건 생각 못했던 사실이다.

이들이 모두 종교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나름의 과학적 실험으로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책에도 나오지만 나사(NASA)를 불신해서 직접 만든 로켓으로 평평한 지구를 보려다 사고로 사망한 마이크 휴즈가 그런 인물이다.

이들이 가진 사고방식의 오류야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지구 평평론은 이들의 정체성(identity)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수많은 평평한 지구론자들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남들이 비웃는 생각을 고수한다는 건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따돌림받는 것을 감수한다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겠느냐 거다.

당신이 만일 자신의 삶에서 언제나 소외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한 번도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기회도 없었다. 원하는 직업을 가지거나 원하는 대로 삶을 영위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적어도 얼마간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돌리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어쩌면 처음부터 당신의 인생을 망쳐놓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몇몇 거대한 음모 론으로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당신은 이제 소외된 자가 아니라 엘리트의 일부가 되었다. 수십억 명이 알지 못하는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인류의 구원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고 당신이 속한 집단이 소수인 것은 그만큼 세상의 음모가 뿌리 깊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영화 <매트릭스> 의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했다.

물론 지구가 평평한 접시 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가장 무해한 과학부정론자들이고,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협하는 과학부정론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도입부에 불과하다. 저자는 평평한 지구론자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과학부정론을 정의하고, 그들과 대화하는 법, 정확하게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법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직접 시도해서 성공적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두 챕터를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부정론에 할애해서 이들이 평평한 지구론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석탄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과의 대화를 통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들 중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많고, 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활동이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믿는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6장이다. 5장까지의 내용에서 예로 든 과학부정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보적인 사람들이 과학부정론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챕터다. 바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생물체) 얘기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GMO 식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GMO가 그렇게 뜨거운 이슈인 만큼 이에 대한 논의도 간단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백신 주사 놓기를 거부하는 안아키 같은 집단은 두말할 것 없이 GMO에 반대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합리적인 이유–가령 생물 다양성의 훼손이나 몬산토(Mosanto) 같은 대기업의 횡포–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논의가 복잡해질 때 과학부정론이 파고들 틈은 더욱 커진다.

저자 리 매킨타이어는 과학부정론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체리피킹(cherry picking: 자신에게 유리한 요소만 선택하는 행위), 음모론에 대한 맹신, 가짜 전문가에 대한 의존, 비논리적 논증, 그리고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과학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을 사용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제시한다. (가령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도 텍스트보다 그래프나 차트를 더 신뢰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가 강조하는 건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하는 대화의 중요성이다. 자신의 믿음 체계, 심지어 정체성이 걸려있는 문제에 대해 "팩폭"을 한다고 해서 생각을 바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한 남성과 진보적인 유대계 여성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사라 실버만(Sarah Silverman) 사이에 주고받은 트윗을 예로 든다.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이 얘기에서 불법 이민자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남성에게 실버만이 조롱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하고, 하트(❤️)까지 넣어가며 적대감이 없음을 밝힌 태도는 그 남성의 생각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 우리가 코로나 백신을 부정하고, GMO와 살충제를 동시에 비난하는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GMO 작물을 완전히 거부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살충제를 사용하고 더 많은 숲을 파괴해서 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목수정 씨같은 사람의 생각도 바꿀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이 목수정 씨는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는 생각을 바꿀 의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게 이 책이 말해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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