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뉴욕타임즈는 미국 정부가 NSO의 페가수스를 비롯한 스파이웨어를 구매한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냈다. 사람들의 폰에 몰래 들어가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고, 녹음과 촬영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정부가 사용하겠다는 건 심각한 문제였고, 미국 의회는 그해 봄에 청문회를 열어 이를 추궁했다. FBI의 디렉터는 스파이웨어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구매했을 뿐, 그걸 사용해 수사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로넌 패로우에 따르면 NSO는 미국의 각 지역 경찰을 상대로 페가수스와 비슷한 스파이웨어 버전에 대한 판촉 활동을 벌였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FBI 등 연방기관을 제외하면 경찰은 각 주와 도시에 소속되어 있다. 따라서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가령 테이저바디캠같은—첨단 무기나 기술이 개발되면, 기업들은 각 주와 도시의 경찰에 광고하고 판매 계약을 체결한다. (이와 관련해 오터레터에서 2021년에 발행한 '호안 톤 탯'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호안 톤 탯 ① 낯선 스타트업
처음 들어보는 스타트업이 만든 앱 하나가 수년 동안 미궁에 빠진 범죄 사건들을 줄줄이 해결하고 있다.

불법 도감청 도구로 여겨지던 스파이웨어를 첨단 무기, 혹은 기술로 취급하는 순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다. 패로우가 연방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의 짐 하임즈(Jim Himes, 민주당) 의원에게서 들은 얘기는 이렇다. "이런 기술을 구매조차 할 수 없게 금지하는 것은 심각한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지 우리 전문가들이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FBI가 이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을 전혀 반대하지 않습니다. 좀 더 까다로운 질문은 그 다음입니다. FBI가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할 거냐는 거죠."

다큐멘터리에서 패로우는 하임즈 의원에게 미국 정부 기관이 다른 나라에서 제작된 상업용 스파이웨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이 질문에 하임즈는 금지는 절대로 답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경찰을 비롯해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시민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 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그는 문제를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대신 이런 상황을 가정한다. "제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만약에 그중 한 아이가 납치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저는 그 도구(스파이웨어)를 원할 겁니다. 엄청난 기술이 이란이나 북한의 손에 들어가게 되어도 FBI는 쓸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저희는 FBI가 그걸 사용할 수 있게 하되, 시민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하게 해야 합니다. 그게 완벽하게 지켜질까요? 아닐 겁니다. 그 기술을 남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할 겁니다. 하지만 악당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건 우리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겁니다."

짐 하임즈 의원 (이미지 출처: NBC News)

물론 이런 이해 방식, 혹은 프레이밍(framing)이야말로 NSO 같은 기업들이 원하는 것이다. 상업용 스파이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은 스스로를 총기를 만드는 회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국에서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따른다면 모든 나라가 이런 스파이웨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비유가 정말 적절한 걸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의 방위산업체들이 간접적인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무기 수출 과정을 보면 정부가 주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무기가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한국군이 생산된 무기를 대부분 구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방위산업체도 다르지 않아서, 첨단무기의 경우 미국 정부가 아예 수출을 금지하거나, 확실한 우방에만 판매하도록 철저하게 개입한다. 많은 경우 공개입찰을 거치기 때문에 이 과정은 상당히 투명한 편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NSO가 스파이웨어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이유로 이스라엘은 자국의 상황 때문에 뛰어난 첩보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데, 외국에서 정보 협력을 통해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으려 할 때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제공하지 못할 경우 NSO를 차선책으로 제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 국가 간의 협력과 달리 아무런 윤리적 제약을 두지 않는다. 로넌 패로우가 인터뷰한 전직 이스라엘 관료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는 그런 기술이 나쁜 용도로 사용될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실험실 삼아 개발된 기술이 불법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많은 나라에 제공되고, 이스라엘 정부는 그 과정을 도와주면서 윤리적 문제에는 눈을 감아준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국가에 수출된 이스라엘의 스파이웨어가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수사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로넌 패로우가 경고하려는 핵심이 여기에 있다. 그가 최근 쓴 기사에 따르면 그리스의 야당 지도자의 폰에서 페가수스와 비슷한 스파이웨어가 발견되었다. 이 해킹에 사용된 프레대터(Predator)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사이트록스(Cytrox)라는 회사는 북마케도니아에 있지만, 이 역시 이스라엘 출신이 세웠다. 그리스의 정치인뿐 아니라 은행과 관련한 탐사 취재를 하던 기자의 폰도 해킹을 당했다. 그리스의 총리는 이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리스의 정보기관이 개입되었다면 결국 총리와 무관하기 힘들다. 그리스의 검찰은 관련된 관료의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폴란드의 신임 총리는 이전 정부에서 NSO의 페가수스를 사용해서 야당 인사들을 감시했다고 밝혔고, 스페인에서는 아예 법원이 발행한 영장에 따라 정보기관이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람들의 폰을 해킹한 사실이 로넌 패로우의 취재로 밝혀져 대형 정치 스캔들로 번졌다.

로넌 패로우는 미국도 똑같은 위험에 처해있다고 설명한다.

이민자들의 대대적인 추방을 촉구하는 트럼프의 지지자들 (이미지 출처: Detroit Free Press)

2016년 선거 때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며 표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는 "군을 동원해서 불법 이민자를 대대적으로 추방(mass deportation)하겠다"고 해서 큰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가 지목하는 사람들은 사실 불법 이민자가 아니라, 난민 신청을 통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을 찾아내어 추방하는 일을 집행하게 될 이민세관집행국(ICE)은 지난 가을 이스라엘의 또 다른 스파이웨어 기업인 패러곤(Paragon)과 계약을 체결해서 NSO의 페가수스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그래파이트(Graphite)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국제 인권감시기구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ICE가 이미 국경을 넘은 난민의 인권을 무시하고 국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감시, 구금, 조사할 뿐 아니라, 이를 취재하는 기자와 변호사, 운동가들을 방해해 온 전례에 비춰볼 때 이 기관이 감시용 스파이웨어를 갖게 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미국의 정부가 스파이웨어를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이민자들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뒤집어 헌법이 더 이상 여성의 임신 중지권을 보장하지 않게 된 이후로 몇몇 주에서 임신 중지를 선택하는 여성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을 색출, 처벌하는 데 개인의 디지털 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검색 기록과 위치 정보들을 갖고 있는 구글은 검찰에서 임신 중지와 관련한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것에 대비, 임신 중지 시술과 관련된 병원이나 클리닉 주변의 위치 정보를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만약 임신 중지를 불법화한 주의 수사기관이 페가수스와 같은 스파이웨어를 사용해서 임신 중지가 의심되는 여성의 폰을 해킹하기로 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짐 하임즈 의원의 말처럼 이 기술이 남용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는 임신 중지와 관련한 디지털 감시를 피하는 법을 알려주는 방법이 퍼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Digital Defense Fund)

이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인류사상 유례없이 막강한 침투력을 가진 기술을 모든 나라가 앞다투어 도입하는 일이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다는 점이다. 그리스에서 일어난 해킹 사건 때 자기 폰이 해킹당하는 일을 경험한 어느 기업인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구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같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이런 일이 독재국가에서 일어나면 끔찍하지만 놀랍지는 않죠.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나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여기에서? 정말로?' 네,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