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집 ②
• 댓글 1개 보기극우 개신교 목사들의 설교를 즐겨 듣던 잭의 아버지는 이제 온갖 음모론을 믿는 사람으로 변했다. 아버지가 믿는 음모론에는 높이 나는 비행기가 남긴 비행운(contrail)을 정부나 비밀조직이 뿌리는 화학약품이라고 믿는 '켐트레일(chemtrail)' 음모론도 있었고, 정부가 날씨를 조종한다는 음모론도 있었지만,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패배가 선거 결과 조작이라며 의회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사건이 사실은 바이든 지지자들이 벌인 쇼라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도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글로벌리스트들이 있다고 했다.
잭의 아버지를 포함해 많은 음모론자들이 정부 깊숙한 곳에서 숨어 이런 모든 일을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이를 그림자 정부(shadow government), 딥스테이트(deep state)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글로벌리스트(globalists)'라고 부르기도 한다. 트럼프도 즐겨 사용하는 글로벌리스트라는 표현은 자기 나라와 국민보다 국제적인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본가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유대인들이 세상을 조종한다"는 오래된 서사의 연장선에서 반유대주의적 공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트럼프가 관세에 대해 말을 바꾸면서 불확실성이 증가하자 주가가 하락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글로벌리스트들이 주식을 매도한 결과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즐겨 보는 콘텐츠를 유튜브가 자꾸 지운다고 불평했다. 기자인 잭이 "허위 정보라서 삭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아버지는 "허위 정보인지 아닌지를 누가 결정하느냐"고 되묻는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는 아마 상상할 수 있을 거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명목상 대표일 뿐,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플랫폼 기업의 허위 정보 확산 저지 노력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잭의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나이가 든 후에 과거 부모님(잭의 조부모)의 신앙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음모론에 적용하고 있었다. 가령 기독교 성경(요한복음 20장)에는 증거를 보고 믿는 사람들보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과 반대되는 사고방식이지만, 신에게서 받는 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렵지 않게 수용한다.
잭의 아버지에 따르면 물리적 감각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과학적 방법론과 반대로 "영적인 세계에서는 먼저 믿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이 신의 존재와 신이 내린 명령을 믿는 방법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신자가 신에게서 직접 계시를 받을 수 없다면, 그걸 할 수 있는—혹은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선지자, 예언자 같은 사람들의 말에 의존하게 된다.
아버지가 믿고 따르는 줄리 그린이 그런 "예언자"였고, 그의 예언대로 아버지는 미국 대도시에 테러리스트들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전자기 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 공격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렇다면 뉴욕에 사는 아들 잭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었다.
잭의 아버지는 미국에 들어온 불법 이민자들의 5%는 테러리스트가 보낸 사람들인데, 이들이 그런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 내 반이민정서에 불을 붙이기 위해 "불법 이민자들은 강간범, 절도범"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미국인들에게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법을 잘 지킨다) 트럼프의 주장 자체가 과장이다. 하지만 줄리 그린과 같은 극우 목사/인플루언서는 그런 트럼프의 주장에서 더 나아가 그들이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린의 주장은 트럼프의 주장에 한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게 되는데, 트럼프로서는 이런 과격한 허위 정보가 자기 주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방치하게 된다.

잭이 그 주장에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지적하며,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믿지 않는 주장인 것에는 동의하시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위에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그걸 확신하느냐고 하자, 아버지는 "나는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은 더 많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많은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내게 지혜를 주셨고, 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있는 판별력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게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즉, 믿으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그 논리인 것이다.
어린 시절 잭은 가족 내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잭의 친할아버지는 고집과 자기 주장이 몹시 강한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가족 내에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할아버지는 오하이오주에 살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대체의학 요법인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물리치료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을 하는 사람(카이로프랙터)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미국에서 아동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자 이에 반대해서 (아들인 잭의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백신 반대론자가 되었다) 자식들에게 백신을 접종하지 않았고, 그 바람에 접종 증명이 없었던 잭의 아버지는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던 적도 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의료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백신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을 알게 된 오하이오주 의료위원회에서 잭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클리닉의 면허를 취소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할아버지는 구치소에서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잭의 아버지가 13, 14살 무렵의 일이다. 그렇게 생업을 잃은 할아버지는 그 후로 결국 재기하지 못했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 반년 동안 침실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바짝 마른 사람이었는데, 말년에는 갑자기 체중이 40~50kg이 증가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정신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짐작만 할 뿐 정확한 원인을 몰랐다. 체중이 증가하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할아버지에게는 아무 때나 잠에 빠지는 증상도 나타나서 가족과 대화 중에, 심지어는 저녁 식사 중에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아마도 기면증(narcolepsy)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할아버지의 증세는 점점 악화되어서 운전 중에 잠이 드는 일이 잦아졌고, 그로 인한 대형 교통사고가 한 번도 아니라 여러 차례 일어났고, 동승한 할머니가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자식들은 그런 아버지가 더 이상 운전을 하면 안 된다며 운전면허증을 뺏으려 했지만 고집 센 할아버지는 운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주에서 면허정지를 받게 된 할아버지는 옆의 주에 가서 운전면허를 취득해서 운전을 계속했다.

잭의 아버지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온 가족이 걱정하고 있으니 제발 가족들의 충고를 들으시라고, 위험한 운전을 그만하시고 오래 사셨으면 한다고 설득하면서 운전을 계속 고집하시면 사고로 돌아가실 거라고 했단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들의 간곡한 부탁도 듣지 않고 운전을 고집하다가 어느 날 운전 중에 잠이 들어 대형 사고를 내고 세상을 떠났다. 가족들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날이 올 것을 할아버지 빼고는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잭의 눈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분명한 공통점이 보였고,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싶었다. 그런데 잭의 아버지는 자기가 지금 예전의 자기 아버지와 똑같이 자기 주장에 빠져 식구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잭의 아버지는 자기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 자기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고 있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는 물리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하던 사람이었고, 자기는 그저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을 예측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생각을 반드시 고쳐보겠다고 다짐한 잭은 전문가를 만나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음모론을 연구하는 조셉 유진스키(Joseph Uscinski) 교수였다. 그런데 유진스키에 따르면 음모론의 토끼굴에 빠진 사람에게 그의 믿음이 틀렸음을 증명해 봤자 별 효과가 없단다. 그들이 믿는 음모론은 팩트 체크할 수 있는 주장 몇 가지가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 정체성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은 잭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여동생이 레즈비언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믿는 것은 모두 연결되어 아버지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음모론이 틀렸음을 보여주면 음모론자들이 생각을 바꿀 거라 기대하고, 모두가 정확한 팩트를 믿게 되면 모든 게 제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허위 정보임을 가르쳐 준다고 해서 그들의 세계관(views)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믿는 것들 중에 틀린 것도 있음을 알아요. 하지만 그들은 틀렸더라도 그걸 좋아합니다."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였다가 지금은 대학교에서 종교 근본주의를 가르치는 브래들리 오니시(Bradley Onishi)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잭의 아버지를 설명했다. "기자님의 아버지 같은 분들이 그런 믿음을 갖게 되는 이유는 자기가 뭔가 거대한 것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지금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이고, 지금은 수면 아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잭의 아버지는 현재 '용서'와 기독교의 현 상황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한 번도 책을 써 본 적이 없고, 쓰고 있는 책도 자비를 들여 출판을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의 삶을 바꿀 책이 될 거라고 믿고 있단다.
잭이 마지막으로 만난 전문가는 극우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치료기법을 개발하고 있는 찰리 새포드(Charlie Safford)였다. 잭에게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그는 잭에게 아버지의 나이를 물었다. 올해로 69세라고 대답하자, 새포드는 뜬금없이 이렇게 물었다.
"혹시 기자님의 할아버지가 몇 살에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아버지의 고집 ③'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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