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말, 일본의 자동차 기업 다이하츠가 품질 인증을 조작한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차량 출하가 전면 중단되었다. 특히 다이하츠는 경차가 큰 인기인 일본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차지하는 기업이고,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토요타의 자회사라는 점에서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어제 소셜미디어에서는 현재 이 사건을 심층취재 중인 일본 언론의 보도를 전하는 포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링크에서 전문을 읽어볼 수 있지만, 글쓴이는 신차의 도면 승인부터 최종 양산 출고까지 4, 5년, 아무리 빨라도 2년은 걸리는 기간을 다이하츠가 9개월로 단축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일본 경차들은 쪼그라드는 자국 시장에서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말 단 돈 1엔 단위로 아끼려 하는 극한 마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차를 타보면 바로 느껴집니다. 통 플라스틱, 극 단순화한 계기반, 얇고 딱딱한 시트, 없다시피 한 방음 단열재, 밝은 색상과 패턴으로 싸구려 우울함 감추기...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최종 만듦새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사내에서 이뤄지는 제작 과정은 얼마나 타이트하겠습니까."
다이하츠 자동차의 충돌 테스트 (이미지 출처: Carlist)

그 글에서 특히 사람들의 공감을 샀던 대목은 이거다. "기울기가 내리막 쪽에 있는, 쪼그라드는 시장/환경/국가에서는 모든 것으로부터 압박이 들어옵니다. 그 타이트함과 우울함은 아주 구석구석 깊은 곳까지 디테일하게 퍼지기 때문에, 접하는 모든 곳에서 사람을 조여오지요. 그렇게 무기력함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하나의 가정이나 회사도 아니고, 거대한 국가 단위로 그렇게 됐을 때의 매우 나쁜 감각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인구 감소로 앞으로 한국 시장의 축소를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기업, 한 산업이 더 이상 제품의 완성도가 아닌, "마른 수건 쥐어짜기"로 버티는 상황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확히 일 년 전에 비슷한 이야기가 복스(Vox)에 실렸다. 제목은 "Your stuff is actually worse now (당신이 산 제품은 정말로 품질이 나빠졌다)."

기자는 자기가 사용하던 브래지어 이야기로 기사를 시작한다. 무려 10년 동안 사용해 왔던 브라인데, 탄력이 떨어지고 가장자리가 헤어지더니 와이어가 삐져나오면서 드디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단다. 그렇다고 특별한 브라가 아니었고 그저 티셔츠 밑에 입기에 좋은 제품이었는데, 10년을 버텨줬다. 그 제품에 만족했기 때문에 똑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다시 구매하기로 했다.

배달된 제품을 살펴보니 그 사이 제품의 몇 군데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후크가 하나 더 생겨서 네 개가 되었고, 고무밴드는 조이는 힘이 더 강했고, 재질은 훨씬 더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그게 개선된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탁을 몇 번 하고 나니 후크는 뒤틀려서 깔끔하게 채워지지 않았고, 입고 있으면 등을 긁었다. 세탁이나 보관 방법을 바꾼 것도 아닌데 브라의 끈도 훨씬 더 빨리 해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기자가 산 브라만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입는 옷, 부엌 용품, 개인용 기기, 공사용 도구 등등 많은 물건들이 비슷한 변화를 겪으며 품질이 나빠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하나의 분명한 트렌드가 존재한다.


10년 전 내가 그 브라를 산 이후로 새로운 제품 디자인의 원칙이 생겨났다. 우리가 산 제품을 몇 번 쓴 후에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거기에 맞춰 빠르게 새 제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는 새로 사는 물건이 쓰던 물건보다 정말로 더 좋은지, 고쳐서 쓸 수 있을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사용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노동력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기업들의 논리에 말려들었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RISD)에서 산업디자인을 가르치는 매튜 버드(Matthew Bird)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제품의 스타일을 주기적으로 바꾸면 소비자들은 현재 스타일을 금방 지겨워하게 됩니다. 자동차의 스타일을 자주 바꾸면 자동차를 스웨터 취급하죠. 그런데 그 주기가 무섭게 빨라졌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으면 품질은 떨어지게 됩니다. 개발과 테스트가 더 빨라지니까요."

제품 디자인 프로세스

디자인은 단순히 눈에 보기 좋으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가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사용자의 문제, 혹은 불편함이 반드시 물리적인 것도 아니다. 디자인이 해결하는 문제는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상의 환경에서 접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디자인은 외양과 실용성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그런데 수백만 명이 사용하는 물건을 생산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산업 디자인의 영역이다. 전문 지식을 동원해 대량 생산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 디자이너들이 집중하는 영역은 크게 외양(appearance)과 기능성(functionality), 그리고 생산 가능성(manufacturability), 세 가지다. 그중에서 근래 들어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마지막 항목인 생산 가능성이다.

(이미지 출처: WMT CNC Industrial Co.)

버드 교수는 전통적으로 장인은 물건 하나를 만들고 다음 물건을 만들 때 디자인을 조금씩 바꾸는 형태로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가령 금속판을 망치로 두들겨서 찻주전자를 만들었는데 손잡이가 영 불편하다고 판단하면 다음에는 도기 주전자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주전자는 물이 끓을 때 소리를 내지 않아서 불편하면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해 보는 식이다. "그렇게 여러 세대의 찻주전자를 만들다 보면 결국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형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한 제품을 만들 때마다 소비자의 요구를 받아 고칠 수 있기 때문이고,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이죠."

이런 작업 방식에 처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산업혁명 때다. 기계와 공구 제작이 디자인 프로세스에 들어가게 된 거다. 그리고 그 결과 생산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손으로 일일이 두들겨 주전자를 만드는 대신 기계가 주전자에 들어가는 부품을 찍어내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전자에 불편한 점이 발견되면 이미 수천 개의 주전자가 나쁜 디자인을 갖고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수 하나로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난다.  

(이미지 출처: TheCollector)

기계의 등장으로 생산량과 생산 속도가 많이 증가했지만, 제품의 디자인부터 제작까지의 거의 모든 과정에는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일부 부품은 3D 프린터로 만들어지고, 기계가 주물과 방직 등의 과정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제품이 조립 단계에서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란제리 전문가 코라 해링턴(Cora Harrington)의 설명은 이렇다. "다른 모든 부분이 완성된 후 최종 단계에서는 사람이 앉아서 각 부속을 조립합니다. 그 단계가 복잡할 수도 있고, 단순할 수도 있지만, 옷을 자동으로 최종 조립해 주는 로봇은 없어요. 전문가가 하는 수밖에 없죠."

20세기 초 대공황도 소비주의(consumerism)의 본질을 바꿔 놓았다. 당시 경제는 자극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있었고, 소비재는 그런 자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한 방법이었다. 광고계의 거물 어니스트 엘모 칼킨스(Earnest Elmo Calkins)는 이후 한 세기를 지배하게 될 소비 습관을 정의하는 판매 전략을 만들어냈다. 바로 '소비자 공학(consumer engineering),' 다른 말로 하면 광고주와 디자이너들이 없는 수요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가령 예전에 나온 물건을 사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게 그렇다.

'계획적 노후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표현은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버나드 런던(Bernard London)이 1932년에 쓴 글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대공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제품의 수명을 정해놓는 방법을 제시했다. 버드 교수에 따르면 그즈음부터 사람들은 제품이 유행이나 시즌이 지나면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교체하기 위해서 새 제품을 사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업들은 그런 습관에 맞춰 생산량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다. 하지만 계획적 노후화는 기능적 노후화—즉, 제품이 망가져서 쓸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소비자들이 더 나은 물건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고방식에 가깝다. 하지만 '더 나은' 제품이 반드시 더 오래 가는 제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계속해서 더 빠르게 생산하는 게 기업에 득이 될 때는 말이다.

소비자 공학의 전형적인 예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조카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의 작업이다. 미국에서 광고 홍보의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로 유명한 그는 미국인들이 베이컨과 달걀을 건강한 아침 식사라고 생각하게 하고, 일회용 종이컵을 유행시킨 장본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공황 시기 출판업 자체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출판사들은 버네이스를 찾아가 책 판매를 크게 촉진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버네이스가 찾아낸 방법은 책장이었다. 건축가들을 설득해 새로 짓는 집에 붙박이 책장을 넣게 하고, 각종 인테리어 잡지에 책이 가득 꽂힌 거실 사진이 실리게 해서 '집에 책이 가득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출판계를 살렸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이미지 출처: Pinterest, A Better World Now)

가격에 답이 있다

다시 내가 산 새 브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내가 란제리 전문가인 해링턴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자 그는 내게 제품의 가격을 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0년 전에 산 제품과 새로 구입한 제품의 가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30~40달러 정도였다. 해링턴은 그 가격에 답이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은 기후변화와 팬데믹, 가파른 인플레를 겪으며 옷감과 다른 재료, 그리고 인건비가 상승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런 큰 그림을 보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변화들을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재미있는 건 해링턴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에 관해 글을 쓰면 독자들 중에 "내가 오래 전에 샀던 패스트 패션 제품들은 튼튼하게 오래 갔다"며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해링턴에 따르면 10년 전에 싸게 산 의류 중에는 아직도 멀쩡한 것들이 있다. 10년 전 제품은 심지어 패스트 패션이어도 지금 제품보다는 품질이 좋았다는 거다.

내가 10년 전에 산 것과 똑같은 품질의 브라는 다시 사기 힘들다. 그때에 비해 생산비가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브라와 같은 제품에 돈을 더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지불하고 싶은 값은 변하지 않았는데 생산원가는 오른다면 어디에선가 희생이 있어야 하고, 대개 옷의 품질이 희생되는 거죠." 해링턴의 말이다.

그리고 대개 재료의 질이 나빠진다. 더 얇고 처음 보는 옷감이 등장하고, 후크는 빈약해지는 식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소비자는 그 차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 온라인에서 구매할 때 더욱 알기 힘들다. "지금 가장 젊은 소비 세대들은 좋은 품질의 의류가 어떤 느낌이고,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앞으로도 점점 더 모르게 될 거고요."


'Shitty Things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