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와 엔지니어
• 댓글 11개 보기아랫 글은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흔히 줄여서 '주의력결핍장애'라고 부르는 정신 질환의 권위자로 알려진 러셀 바클리(Russell Barkley) 박사가 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했던 강의의 일부를 번역한 것이다. 번역한 부분의 영상은 아래에 있고, 이 강의 전체 영상은 한 유튜브 채널이 모아 놓고 있다. ADHD라는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애디튜드(ADDitude) 매거진에서는 작년 1월, 바클리 박사의 업적을 기념하는 의학계 동료들의 찬사를 모아 게재했다. 기사는 바클리 박사가 연구와 교육을 통해 ADHD에 대한 이해와 치료법을 널리 알렸다고 평가했다.
이 강의의 일부를 소개하는 이유는 여기에서 바클리 박사가 하는 얘기가 단순히 ADHD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뿐 아니라 모든 부모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들뿐 아니라 부모가 될 계획을 하는 사람들, 더 나아가 (누군가의 자녀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들어볼 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요즘 부모들이 완전히 잊고 있어서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부모님은 알고 계셨지만 요즘 세대의 부모들은 모르는 것 같아요. 그건 바로 '부모가 자녀를 설계할 수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자연은 그런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진화는 특정 종(種)의 한 세대가 바로 윗세대로부터 그렇게 큰 영향을 받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특히 아이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를 설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차르트 효과(Mozart Effect) 같은 것을 믿고,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면 천재 아이를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기 침대에 장난감을 더 많이 넣어주면 아기 두뇌의 뉴런에서 시냅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천재적인 수학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죠.
여러분은 그런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그런 자극이 전혀 필요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의 환경에 자극이 주어지는 건 아무런 자극이 없는 것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자극을 가할수록 더 좋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한계점이 있어요. 모든 정상적인 두뇌가 발달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양의 자극이 있습니다. 그 한계치에 도달하면–여기에 계신 분의 98%가 거기에 도달하셨을 것입니다–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좋기만 하다면 왕창 퍼부으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은 참 미국적인 생각입니다. 프랑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우리(미국인)처럼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오늘 프랑스 육아법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그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우리가 뇌과학 이미지 처리(neuroimaging), 행동 유전학, 발달심리학 등의 분야에서 지난 20년 동안 배운 것을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면 이겁니다. 여러분의 아기는 400개가 넘는 심리적 특성(psychological taits)을 가지고 태어나고, 이것들은 아이가 성숙해가면서 표현됩니다. 여러분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아이의 성격이나 아이큐, 학교 성적 등등을 엔지니어링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이 뭔가를 쓸 수 있는 백지장(blank slate, 빈 서판)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가 쓴 '빈 서판(Blank Slate)'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책은 이와 관련해 부모가 알아야 할 정보를 담고 있고, (아이를 엔지니어링 할 수 있다는) 그 생각이 왜 틀렸는지 이야기해 줍니다.
아이는 부모의 대가족(extended family)이 가진 유전자들로 구성된 모자이크라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입니다. 여러분의 대가족에 흐르는 다양한 특성들이 모여서 독특한 조합을 만들어낸 결과가 여러분의 아이입니다.
양치기와 엔지니어
그런 의미에서 저는 양치기(shepherd)라는 관점을 좋아합니다. 부모인 여러분은 양치기입니다. 양치기는 양을 설계하지 않아요. 부모가 (자녀의) 엔지니어라고 생각하면 부모에게 모든 책임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도,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모두 부모가 책임을 집니다. 요즘 부모들이 이전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죄책감을 갖고 저희를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 (아이 기르기를) 자신과 자신이 한 행동에 결부시킵니다. 그래서 뭔가 제대로 안 되거나 혹은 자녀에게 장애가 있으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은 그 반대가 맞습니다. 여러분의 특정 양육 방식과는 관련이 전혀 없어요. 따라서 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나는 독특한(unique) 개인을 돌보는 양치기'라고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양치기에게는 큰 힘이 있습니다. 양들이 어떤 풀밭에 가서 먹고, 발달하고, 자랄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양치기는 양들이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고 있는지,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판단을 내립니다. 환경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환경은 양을 설계하지 않습니다. 어떤 양치기도 양을 개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 일을 하려는 부모들을 봅니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부모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한 걸음 물러나서 자신을 장애를 가진 아이의 양치기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설계할 수 있는 것은 풀밭입니다. 그리고 그건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양을 엔지니어링 하지는 못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녀 양육(parenting)을 죄책감에서 근본적으로 풀어주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양치기가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면서도 여러분의 아이는 독특한 개인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공연(show)을 감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와인병을 하나 따시고, 소파에 다리 펴고 앉아서 아이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즐기세요. 공연 그렇게 길지도 않아요. 아이들은 금방 자라서 떠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집 안에서 한 일이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시면 슬프게도 착각하신 겁니다. 여러분의 아이는 독특한 개인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번성하게 하세요. 물론 아이 주변의 환경은 잘 설계해 주세요. 하지만 아이를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주디 해리스(Judy Harris)가 1996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주제로 펴낸 첫 번째 책에서 바로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양육가설(The Nurture Assumption)'입니다. 주디 해리스는 책에서 여러분이 사는 동네가 여러분이 집 안에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아이의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집 안에서 아이들이 방치되거나 충분한 영향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만 아니면 말이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어떤 곳에서 사느냐이고, 그 외의 나머지는 자잘한 변주에 불과합니다. 왜냐고요? 집 밖에서 아이들이 받는 영향이 집 안에서 받는 영향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또래집단과 다른 어른들, 동네, 각종 자원, 학교, 그리고 광범위한 커뮤니티는 여러분이 아이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이 아이의 인생을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그다음으로 큰 영향도 역시 여러분의 손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바로 유전(genetics)이죠. 여러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양육방식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믿으신다면 제가 두 개의 연구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많이 인용되는 내용입니다. 학자들이 쌍둥이를 추적 조사해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일란성쌍둥이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자란 케이스들을 연구한 것을 의미한다–옮긴이) 아이들이 자란 가정환경에서의 부모의 양육방식이 그들의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핀 것입니다. 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모가 가장 영향을 많이 줄 수 있는 때는 아이가 7살 미만일 때입니다. 7살부터 12살에 이르면서 부모가 주는 영향은 극적으로 감소합니다. 그리고 15살에 이르면 약 6% 정도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부모의 양육방식이 십 대 아이들의 행동에 만들 수 있는 차이는 6%에 불과하다는 얘기입니다. 21살이 넘으면 영향력은 0입니다. 21살이 지나면 부모 양육이 심리적 특성을 전혀 바꾸지 못합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가진 지식은 분명히 그 아이가 노출된 환경의 영향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심리적) 특성과 능력, 그들을 구성하는 것, 성격(personality) 같은 것들은 환경의 영향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들을 잘 설계하면 ADHD를 없앨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은 포기해야 합니다.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이렇습니다. 이는 모든 연구에서 동일하게 나온 내용입니다. 입양한 아이의 (심리적) 특성과 양부모의 특성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correlation)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없다고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자녀 양육이 이를 바꿀 힘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증명하십시오. 그게 아니라면 한 걸음 물러나서 양치기로서 해야 할 역할을 받아들여 잘 이행하시고, 여러분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여러분이 보실 불꽃은 다른 불꽃과는 다른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여러분의 힘으로 만들어낸 게 아닐 뿐 아니라, 여러분의 잘못도 아닙니다. ADHD를 비롯해 여러분의 아이가 가진 장애는 여러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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