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 ③ 스튜어트
• 댓글 5개 보기가난한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다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연구로도 증명되었다. 이를 밝힌 최초의 연구는 캐롤 스택(Carol Stack)의 책 'All Our Kin (우리의 모든 친족)'이다. '흑인 커뮤니티의 생존 전략'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의존하는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추적한다. 이들은 돈과 자녀 돌보기는 물론,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물건들도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데, 이게 오히려 계층 상승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이 목격되었다. 누군가 수익이 생기면 그걸 나눠 갖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운 좋게 큰 소득이 생겼을 경우 인간관계를 잘라버리거나, 아니면 골고루 나눠서 궁극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없는 작은 소득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하는 거다.
하지만 우연한 행운(lucky breaks)과 진짜 운(real luck)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 너무나 흔해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부트스트랩(bootstrap, 구두 뒤에 붙은 고리)"이라는 표현을 생각해 보자. 외부 투자자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 자기가 가진 돈으로 일단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원래 표현은 "Lift yourself up by your bootstraps (부트스트랩으로 스스로를 들어 올린다)"이다.
물론, 이건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다.
원래 이 표현은 불가능한 상황을 묘사할 때 처음 사용되었다. 첫 글에서 이야기한 소설 '골든 보이 딕 헌터의 모험(Ragged Dick)'이 나온 1860년에 윌리엄 해밀튼이라는 교수가 이 표현을 사용한 예를 보면 사람이 자신의 정신을 분석하는 것은 "사람이 부트스트랩으로 스스로를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이게 가능한 일처럼 묘사된다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부트스트랩은 우리가 깨야 하는 신화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U.C. Davis)의 경제학과 교수인 그레고리 클라크(Gregory Clark)는 "인생의 절반 이상이 이미 태어나는 시점에 정해진다(More than half of your outcome in life is already determined at the point that you’re born)"라고 말한다. 그는 전 세계의 사회 이동(social mobility, 개인이나 집단의 계층적 위치가 변화하는 과정)을 조사한 결과,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그 사회의 평균 수준으로 이동하는 데는 몇 세대가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물론 예외의 경우는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계층이 변화하는 데는 몇 세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중력이 지구 어디에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살펴본 모든 사회에서 사회 이동은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도 결국 신화일까? 클라크 교수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한다. 계층이 고착된 사회는 아니지만, 지금의 미국은 계층 이동에 관해서는 중세 시대의 영국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실 누군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가능성은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더 크다. 하지만 같은 미국 내에서도 한 아이가 인생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그 아이가 어느 동네(카운티)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라지 체티(Raj Chetty) 교수는 수백만 가정을 추적한 결과, 캘리포니아의 산호세(San Jose, 실리콘밸리의 일부)에서 태어난 아이는 소득 수준 하위 5%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최상위 수준으로 계층 상승할 가능성이 무려 13%나 된다. 이 정도의 가능성은 지구상에서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이에 반해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자라는 아이는 3%의 확률을 갖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 가족이 사회 이동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그 집 아이의 사회 이동 가능성이 커지고, 아이가 어릴 때 이사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체티 교수는 이를 나이가 다른 형제들을 연도별로 추적해서 알아냈다. "일 년이라도 먼저 좋은 환경으로 이사하면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십 대 임신 가능성은 줄어들고, 성인이 되어서 벌어들일 소득은 늘어나고, 안정된 가정을 갖게 될 확률 역시 커진다."
사회 이동 가능성과 관련해서 가장 좋지 않은 환경은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소득 격차가 크고, 한부모 가정이 많고, 학교가 좋지 않고, 사회적 결속이 낮은 지역이다. 이런 지역들은 대부분 흑인이 모여 사는 지역이고, 지역에서 예산을 편성할 때 쉽게 무시된다. 따라서 체티는 정부가 이런 지역에 투자할 경우 사회 이동을 효과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더 확실한 방법은 나쁜 환경에서 사는 가정, 특히 아이를 그런 환경 밖으로 꺼내오는 일이다. "흑인과 백인 사이의 소득 격차 중 25%는 단지 흑인이 백인보다 나쁜 환경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돕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가난한 가정에 주택 바우처(housing voucher)를 주어 좋은 지역으로 이사할 수 있게 하지만, 이 바우처를 받는 게 쉽지 않아 때로는 몇 년이 걸리고, 받았다고 해도 좋은 동네의 집주인이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없는 주가 대부분이라 결국 가난한 집들은 슬럼가의 악덕 집주인들에게 비슷한 돈을 내고 계속 나쁜 환경에 남게 된다.
미국에서 흑인 노예가 해방된 것은 1863년이지만, 소득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땅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얻은 자유가 별 의미 없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1868년에 워싱턴 D.C.에서 했던 연설이 바로 그 얘기다.
"(해방된 흑인들에게 땅을 주지 않은 것은) 사람을 몇 년 동안 감옥에 넣었다가 그가 무죄인 것이 드러나자, 출옥시키면서 '자유의 몸이니 나가도 된다'라며 집으로 돌아갈 차비조차 주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정부가 노예로 살아온 흑인에게는 아무런 땅도 주지 않았던 그때 유럽에서 온 백인들에게는 서부와 중서부의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나눠줬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경제적 자립의 기반을 만들어 준 겁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주마다 주립대를 세웠습니다. (이를 미국에서는 '토지공여 대학교'라 부른다. 우리가 아는 많은 주립대가 노예 해방과 비슷한 시점에 연방 정부의 토지 공여로 만들어졌다–옮긴이) 그게 또 전부가 아닙니다. 영농 기계화를 하라고 낮은 이율로 융자까지 해줬습니다.
이제 미국 정부는 백인 농부들에게 이제는 농사를 짓지 말라며 연방 보조금을 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부의 지원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흑인들에게 자립("부트스트랩")하라고 설교하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부트스트랩을 끌어 올려 자립하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신발이 없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닙니다."
2003년 미국의 전국경제연구소(NBER)에서는 미국 시카고와 보스턴의 유명 신문에 난 사무직과 고객 응대 서비스 구인 광고를 보고 다른 이름들을 사용해서 지원해 보고 기업에서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소에서는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 흔한 이름 중에서 그레그(Greg)와 같은 백인 이름과 자말(Jamal) 같은 흑인 이름들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백인 이름을 사용해서 지원한 경우 기업에서 지원자에게 연락해 올 가능성이 무려 50% 더 높았고, 흑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지원 과정에서 백인 이름을 가진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기 위해서는 8년의 경력이 더 필요했다. 뉴욕에서 진행한 비슷한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범죄 이력이 있는 백인이 없는 흑인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흑인들이 게을러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자들일수록 성공은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말한다고 한다.
코넬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는 재능과 성실함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걸로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성공은 부모의 재력과 태어난 지역, 심지어 태어난 달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프랭크 교수가 보수적인 폭스뉴스(FoxNews)의 비즈니스 뉴스 진행자인 스튜어트 바니(Stuart Varney)와 대담을 하다가 그에게서 아래와 같은 말을 들었다. 참고로, 이 대담 영상은 폭스뉴스 웹사이트에서 사라졌지만, 진행자인 바니는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영국 억양이 강하다.
"제가 운이 좋다고요? 말도 안됩니다. 제가 큰 위험(risk)을 감수했는지 아세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이 미국으로 건너오는 게 얼마나 큰 위험인지 아세요? 미국 방송에서 영국 억양을 가진 사람이, 완전히 외국인이 일하는 게 어떤 위험인지 아세요?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알기나 하세요?"
그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프랭크 교수에게 당신이 테뉴어(정년 보장)를 받은 것도 운이냐고 물었다. 프랭크 교수가 그렇다고 하자 "말도 안 됩니다! 이건 모욕이에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아메리칸 드림을 무시하는 거냐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미국에 건너와서 룰을 따라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게 되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하게 되는 거예요. 룰을 따르면 미국에서는 성공해요. 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랭크 교수는 생방송 때 자신이 진행자 스튜어트 바니의 주장에 충분히 반박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한다. 그는 바니가 아무것도 없이 미국에 왔다고 하지만, 그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SE)에서 받은 학위가 있었다. 그걸 가지고 오면서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말한다는 거다. 그리고 미국에서 영국 억양을 가진 건 핸디캡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영국 억양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똑똑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그가 위험을 감수해서 성공했다면 그거야말로 운이라는 얘기가 아니고 뭐겠는가.
프랭크 교수는 좀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할 때 낯선 사람들에게 더 너그러워지고 타인을 도우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의 운을 과소평가할까? 애매하게 다가온 기회와 운보다 자신이 고생했던 일을 훨씬 더 잘 기억하기 때문이고, 운을 강조하면 자신의 자유의지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랬듯, 자서전에는 노력을 적는 게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이야기하는 '온더미디어(On the Media)'는 브룩 글래드스톤(Brooke Gladstone)이 진행한다. 글래드스톤은 '미디어 씹어먹기(The Influencing Media)'라는 책으로 한국에도 알려진 인물. 그는 이 보도를 마치면서 드물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럼 저는 어떨까요. 제 부모님은 한두 번 파산한 적이 있습니다. 집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꺼내 놓고 경매를 한 적도 있어요. 저는 학자금 융자를 받아 대학을 마쳤지만, 제가 대학에 가지 못한다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제가 알바를 하던 KFC에서 남은 치킨을 가져와서 온 가족이 저녁식사를 하면서도 대학 진학은 의심하지 않았죠. 가난했어도 그거 일시적인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는 제가 자수성가(self-made)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는 제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는 있었지만, 이번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운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트스트랩은 허구이고 사회 이동은 신화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그런 이동이 가능한 인프라를 만들고, 사람들이 계층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지금 있는 곳에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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