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 포어(Franklin Foer)라는 작가가 있다. 현재 '애틀랜틱(The Atlantic)'의 기자(staff writer)로 일하고 있고, 전에는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에서 편집장을 했다. 뉴리퍼블릭은 페이스북의 공동 창업자인 크리스 휴즈가 잠시 인수했던 적이 있는데, 포어는 그때 경험한 '빅테크식 사고방식'에 관해 책을 썼다. 'World Without Mind: The Existential Threat of Big Tech'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한국에서 '생각을 빼앗긴 세계: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공동 번역하면서 프랭클린 포어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 매체의 부탁으로 인터뷰를 하면서 줌을 통해서나마 얼굴을 보고 두 시간 가까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인터뷰는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프랭클린 포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잘 아실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 조슈아 포어(Joshua Foer)가 모두 프랭클린 포어의 동생들일만큼 잘 알려진 작가 집안이다. 나는 그의 집안이 유럽에서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계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프랭클린의 조부모가 살던 곳이 우크라이나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아래는 그가 The Experiment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들려준 내용으로, 그의 집안이 우크라이나와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설명하는 30분 정도의 짧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자체는 짧지만 수십 년의 가족사를 담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라 소개한다. 대화로 이루어진 팟캐스트를 글 형태로 요약했다.

원 내용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고, 같은 페이지 안에서 녹취록도 볼 수 있다. 팟캐스트(The Experiment) 구독도 추천한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에 앞서 긴 TV 연설을 통해 (그가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부르는) 이 전쟁을 시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동지들이여, 여러분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나치와 싸우셨다. 그분들은 나치가 우크라이나를 차지하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정부를 "탈나치화(de-Nazification)"하는 것이 목표라고 거듭 강조했다.

프랭클린 포어는 푸틴의 주장에 대해 "몇 년 전에 그 말을 들었으면 나도 푸틴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외할머니에게서 어릴 때부터 들어온 얘기 때문에 푸틴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는 거다. 프랭클린의 외할머니는 어떤 사람이고, 그분은 손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걸까?

1920년에 태어난 프랭클린의 외할머니 에설 카플란(Ethel Kaplan)은 2차 대전 중에 자신의 유대계 가족을 잃었고, 그 후 같은 유대계의 남성을 만나 결혼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딸(포어 형제의 어머니)이 아직 어린 아이일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외할머니 집안은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살았지만 자신들을 우크라이나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성은 유대인(Jewish)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구에서는 같은 나라에 살아도 유대계는 같은 국민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취급했기 때문에 유대인들 역시 스스로를 다르게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옮긴이) 그리고 외할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나치의 동조자로 생각했다. 포어 형제는 그런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에설(맨 왼쪽)의 어린시절 모습. 앉아있는 이는 에설의 할머니 (1920년대) 

물론 푸틴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네오나치 집단으로 부르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없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부터 잘 알려진 유대계이기 때문이다. 포어는 이를 잘 안다. 하지만 포어의 외할머니 에설이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 동조자"라로 이야기한 건 에설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왔기 때문에 쉽게 반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할머니 에설의 이야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에설은 평온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이지만, 과거에는 폴란드였다가 당시에는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던 지역이다. 에설은 그곳에서 전형적인 유대계 집안의 아이로 성장했고, 친구도 많았다.

그런데 에설이 21세가 되던 1941년에 모든 것 바뀌었다. 6월 어느 날 밖에 있던 에설은 하늘에서 독일군 비행기들이 날아오고 공수부대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봤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뛰기 시작했고, 온 마을이 공포에 휩싸였다.

에설은 살던 곳을 떠나 달아나기로 했다. 돌아보면 에설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이었다. 훗날 에설은 한 인터뷰에서 이를 두고 "본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에설의 가족은 왜 에설과 함께 떠나지 않았을까? 에설의 결정에 어머니는 놀랐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설의 어머니(포어의 외증조모)는 나치라고 해서 얼마나 더 나쁘겠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잠깐,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흔히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히틀러와 나치라고 알고 있지만,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공격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독일에 국한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 공격을 가리키는 말이 포그롬(pogrom)이라는 단어가 러시아어(погром)에서 왔다는 사실은 유대인 학살이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 얼마나 흔했는지 잘 보여준다. 흔히 지역민의 폭동의 형태로 일어나서 유대인 거주지를 습격, 약탈하고 유대인들을 학살하곤 했다.
에설의 어머니는 아마 키이우 포그롬을 기억했을 것이다. 에설이 태어나기 한 해 전에 일어난 이 포그롬은 기록된 것으로는 마지막에 일어난 포그롬으로, 이때 우크라이나 지역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이 죽고 다쳤다. 이런 포그롬은 러시아의 경찰이 부추기거나 방관할 만큼 그저 영토 내에 거주하는 타인들(outsiders)에 대한 공격이었다. 에설의 어머니와 가족들은 독일의 나치가 유대인들을 미워한다고 해도 러시아/우크라이나인들과 다를 게 뭐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1920년에 태어난 에설은 포그롬을 본 적이 없었고, 말로만 들었던 포그롬보다 당장 쳐들어오는 독일군이 더 현실적인 위협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The Ukraine"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크라이나는 '변방,' '국경지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고유명사로 Ukraine(Україна)이라고 하면 지금의 국가의 이름이지만, the Ukraine이라면 그저 소비에트 연방의 경계 지역이라는 의미였다. 그게 에설이 살던 우크라이나였다.

그곳에서 에설은 독일군이 몰려오는 반대쪽(동쪽)으로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달아났다. 그렇게 걷고 뛰어서 도착한 곳이 키이우. 그런데 이 도시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고, 그곳에서 에설은 동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계속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한 에설은 카자흐스탄에 도착한다.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의 위치는 여기에서 확인) 에설은 그곳에 있는 집단농장에서 일했다.

에설은 그 농장에 있던 라디오를 통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독일군을 서쪽으로 밀어내면서 자신이 살던 우크라이나의 마을도 나치의 손에서 풀려난 것을 알게 된 에셀은 스탈린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고향을 찾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달라고 했다. (아마도 여행허가서가 있어야만 이동이 가능했던 것 같다–옮긴이)

물론 스탈린에게서 직접 답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고향 마을의 상황을 알려주는 편지가 한 장 도착했다. 에설의 가족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에설은 고향으로 향했고, 마을에 도착한 에설은 전에 알던 마을의 우크라이나인에게서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들었다.

에설의 할아버지는 다른 노인들과 함께 유대인 회당(synagogue)에 기도하러 갔는데 독일군이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회당에 불을 질러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태워 죽였다. 에설보다 4년 아래인 여동생은 길 한복판에서 살해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차마 끔찍해서 말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에설의 언니와 어머니는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마을 밖 야산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독일군은 그곳에서 유대인들에게 땅을 파 구덩이를 만들게 했고, 구덩이가 만들어지자 일렬로 세우고 총으로 쏴 죽였다. "(유대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죽였다"라고 했다.  

프랭클린의 외할머니 에설에게 이 모든 얘기를 들려준 우크라이나인은 마지막으로 경고를 덧붙였다. "네 목숨도 여기에서 안전하지 않아. 나치는 물러났을지 몰라도 나치에 동조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하루 이상 머무르면 너도 죽임을 당할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에설은 날이 밝는대로 고향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포어 형제들이 들은 외할머니의 얘기,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 동조자들"이라는 말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외할아버지 루이스의 수수께끼

포어 형제들은 위의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트라우마를 겪은 그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면서 악령을 쫓는 푸닥거리(exorcism)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이야기에는 빠진 게 하나 있었다. 외할아버지도 우크라이나에서 자라고 그곳에서 에설을 만나 결혼했는데 외할머니는 정작 남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프랭클린 포어의 외할아버지는 루이스(Louis)였다. 그는 1974년생인 프랭클린과 그의 동생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54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우크라이나에서 만나 함께 탈출했다는 얘기 이상을 들려주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사연이 있었을 텐데, 집안에서는 할머니의 이야기만 남은 것이다.

집안에서 쉬쉬하는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무리 궁금해도 어른들이 말하지 않는 집안 사연은 물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직관적으로 배운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가 포어 집안에서는 그런 얘기였고, 포어 형제들에게 외할아버지의 사연은 커다란 물음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포어 형제들은 서서히 그 물음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그들 사이에 생겨났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 '모든 것이 밝혀졌다(Everything Is Illuminated)'는 그렇게 나온 책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일라이저 우드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이 책은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쓰인 소설이기 때문에 실화가 아니며, 단지 이들 집안에서 외할아버지의 존재가 얼마나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는지 보여줄 뿐이다. 포어 형제는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지도 듣지 못했다.

결국 가장 어린 조슈아가 사망 증명서와 신문에 난 부고 등을 뒤져가며 외할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찾아냈다. 외할아버지 루이스 사프란은 1954년에 워싱턴 D.C.에 있던 자신의 상점 안쪽 방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포어 형제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트라우마일 텐데 그 얘기를 꺼냈다가 어머니 가슴속에 묻힌 오래된 감정과 기억을 흔들어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직전의 에설과 그의 남편 루이스 (포어 형제의 외조부모)

그런데 사실은 그들의 어머니 에스터 포어(Esther Foer)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우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에스터가 아버지의 과거에 관해 들은 이야기는 하나였다. 에스터가 40세 생일을 갓 지났을 때 어머니 에설이 "네 아빠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전쟁 중에 죽었다고 들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즉, 포어의 어머니에게는 배다른 언니가 있었다는 거다.

에설이 무려 40년 동안 입을 열지 않다가 별것 아니라는 듯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에스터의 배다른 언니는 7살 때 일어난 홀로코스트 때 살해당했다. 그런데 에스터 자신은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이 사실은 에스터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포어 형제의 어머니 에스터는 자신의 배다른 언니가 어떻게 죽었고, 아버지는 어떻게 홀로코스트를 탈출한 건지 답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런 에스터가 가진 유일한 단서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에는 아버지(포어 형제의 외할아버지) 루이스가 세 명의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있었다.

프랭클린 포어의 외할아버지 루이스(뒷줄 왼쪽)와 세 명의 우크라이나인

그중 한 사람은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남성으로, 전쟁 중에 아버지를 구해준 사람일 거라는 얘기만 전해질뿐, 다른 배경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사람들은 외할아버지 루이스가 당시에 겪은 일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프랭클린 포어와 어머니는 '이 사람들을 찾아 만나보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계획을 들은 외할머니 에설은 기겁을 했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거기는 무서운 곳"이라며 제발 가지 말라고 했다. 딸과 손자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2009년, 프랭클린과 어머니 에스터는 우크라이나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외할아버지 루이스의 목숨을 구해줬을지 모르는 사진 속 인물들을 찾아서.

('생명의 은인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