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프랭클린 포어는 집안에서 수십 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찾아 어머니 에스터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을 찾는다. 외할아버지 루이스가 살던 이 마을은 지금도 아주 작은 마을로, 마을을 통과하는 길이 딱 하나 밖에 없고 그 길 양쪽으로 각각 십여 채의 집이 있는 게 전부다. 그리고 그 집들의 뒤로는 밭이 있고, 밭의 끝에는 숲이 있다.

프랭클린과 어머니가 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가려는데 마을 사람 세 명이 나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고, 어떤 사람들인지 몰랐기 때문에 모자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지만 그들은 두 사람을 아주 아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프랭클린과 에스터를 데리고 집 뒤로 가서 배나무를 보여주며 마을은 (2차 대전 이후로) 많이 변했지만 이 배나무는 그대로라고 했다. 자기네 할아버지도 이 나무에서 배를 따드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한 후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1915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오래된 집이었다.

집안에는 선반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선반 위에 사진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집주인인 여성은 그 사진을 집어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진 옆에 두고 둘을 비교했다.

프랭클린 포어의 외할아버지 루이스(뒷줄 왼쪽)와 세 명의 우크라이나인

집주인이 가지고 있는 사진 속 남성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외할아버지의 사진 속 남성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했다. 집주인 여성은 사진 속 남성의 손녀였다. 프랭클린과 어머니 에스터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외할아버지 루이스를 살려준 우크라이나인 가족을 찾게 된 것이다. 프랭클린과 에스터는 함께 앉아 이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도 저희 할아버지가 전쟁 중에 어떻게 살았는지 별로 들은 게 없어요. 하지만 제 삼촌이 가끔 취하면 그 때 얘기를 들려주실 때가 있었죠. 삼촌이 어릴 때였는데 가족이 레이벨(Leibel)이라는 남자를 집에 숨겨줬다고 하더라구요." 레이벨은 프랭클린의 외할아버지 루이스의 이디시(Yiddish, 히브리어와 독일어, 슬라브어가 섞인 언어로, 동유럽 출신 유대계가 사용하는 언어–옮긴이) 이름이었다. 한번은 나치가 집에 들이닥쳤다고 해요. 레이벨은 문 뒤에 급히 숨었는데, 만약 들켰다면 모두가 죽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얘기를 하는 중에 그 여성의 동생(사진 속 남성의 손자)이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 농부로 보이는 나이 많은 할머니를 모시고 돌아왔다.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그 할머니는 이빨이 많이 빠져 얼마 남아있지 않았고, 손가락이 아주 굵은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오자 프랭클린의 이마를 엄지 손가락으로 만지더니, "이마가 네 할아버지의 이마랑 똑같이 생겼구나"라고 말했다.

프랭클린이 "그럼 제 할아버지를 아세요?"라고 묻자 그 할머니는 "그럼 알지. 그분 아내 치포라(Tzipora)도 알고." (여기에서 말하는 아내는 루이스/레이벨이 프랭클린의 할머니 에셀과 재혼하기 전 아내를 말한다–옮긴이) 프랭클린이 "그분들은 어디에 살았나요?"라고 묻자 그 할머니는 "그동안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자네가 지금 앉아있는 데가 자네 할아버지네 집 거실이었을 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프랭클린은 이번에는 "제 어머니의 (배다른) 언니를 아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그럼. 난 그애랑 저기 보이는 저 들판에서 공차기도 하고 놀았지"라면서 창 밖 들판을 가리켰다.

"그분 이름을 아세요?"

"응. 아시야(Asya)"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여자아이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름도 모르고, 절대로 알 수도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 에스터의 언니, 그 언니의 기억을 구해낸 것이다. 프랭클린은 그 자리에서 그 우크라이나인 가족을 껴안고 울었다.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그 사람들에게 이미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알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프랭클린 포어는 이렇게 말한다. "제게 우크라이나는 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땅처럼 느껴집니다. 우리가 아주 먼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손만 뻗으면 여전히 닿을 수 있어요. 그 순간에 우크라이나에 관한 저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제 할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제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분들이죠. 그분들은 이웃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어요. 저는 그분들을 만난 후에 우크라이나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후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깊은 정서적 유대를 느낍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5년이 지난 2014년, 프랭클린 포어는 '뉴리퍼블릭'의 편집장이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서 시민들이 봉기해서 부패한 친러시아 정부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봤다. 그리고 이에 놀란 블라디미르 푸틴이 크림 반도를 침략하고 우크라이나 동부(돈바스) 지역을 침공하는 것을 지켜봤다.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었다.

포어가 일하던 뉴리퍼블릭은 2014년 5월 키이우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동부를 침략한 지 두 달만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2014년에 러시아가 벌인 두 침공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시작이었다. 유로마이단 혁명 직후였기 때문에 시내에는 아직도 그 때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남아있었고, 불에 탄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총알 자국이 보였고, 마이단 광장에는 아직도 천막을 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키이우의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여한 포어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그 사진 속 남성의 증손녀를 행사에 초대했다. 레시아(Lesya)라는 이름의 증손녀는 아직 학생이었고, 유로마이단 시위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하지만 레시아는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 자라면서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랭클린 포어는 바빈 야르(Бабин Яр, Babyn Yar, 혹은 Babi Yar)를 방문하면서 레시아를 데려가기로 했다. 키이우 외곽에 위치한 바빈 야르는 독일-소련 전쟁 중 최악의 유대인 학살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나치는 단 며칠 만에 3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죽였다.

바빈 야르 학살 장면
구덩이에 묻힌 유대인들의 시신

포어는 이 일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만 알고 갔지만, 레시아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설명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내용이 담긴 팟캐스트 후반에는 포어가 컨퍼런스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하는 대목이 녹음으로 등장하는데,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우크라이나 이웃을 이야기하며 그 이웃의 증손녀라며 청중에게 레시아를 소개한다. 청중은 큰 박수를 보냈고, 진행자는 수줍어하는 레시아를 단상 위로 초대했다. 녹음에서 포어가 감격에 겨워 목이 메이는 걸 들을 수 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레시아의 가족에게 진 큰 빚을 사람들 앞에 이야기할 기회에 감사했다.

그 순간을 회고하면서 포어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 때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깊은 연대감(sense of solidarity)를 느꼈습니다. 저는 이상주의자(idealist)인데, 이 기질은 인생에서 그렇게 끔찍한 일을 많이 겪고도 견뎌낸 제 외할머니에게서 왔을 거예요.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려고 애쓰는 모습, 부패를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 큰 이야기와 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어요."

그 컨퍼런스 후에 포어는 레시아를 미국으로 초대해서 자신의 어머니 에스터와 만나게 했고, 에스터는 다시 레시아를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 에설을 만나게 했다. 레시아를 만난 에설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 조력자들이라고 평생 믿었던 것에서 후퇴해서 좋은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레시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 팟캐스트는 3월 10일에 업로드 되었다.)

포어의 어머니 에스터는 레시아를 만난 이후로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나기 전인 2월 12일에 온 이메일에서는 "키이우에서는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외국인들과 일을 많이 하는데 외국인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를 떠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했고, 전쟁이 일어난 24일 이메일에서는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별 문제가 없었으면 하고 바랍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25일부터는 달라졌다. "미국에게 저희 좀 도와달라고 말해주세요.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키이우에 남아있던 레시아는 결국 27일, 키이우를 떠나 벨라루스 근처로 피신했다.

에스터에 따르면 레시아는 이메일을 반드시 “...from Lesya and your Ukrainian family"라는 인삿말로 끝낸다고 한다. 이에 감동한 에스터는 자신도 이메일 끝에 "Your American family"라고 적는다. 우크라이나인은 모두 나치 조력자로 믿었던 유대계 가정이 우크라이나 가정과 하나가 된 것이다.

뒷줄 왼쪽 첫번째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 세번째가 조슈아, 다섯번째가 이 이야기를 들려준 프랭클린. 가운데 앉아있는 이 형제들의 할머니가 아래 내용에 등장하는 에설 사프란, 그의 뒤에 파란옷을 입은 이가 포어 형제의 어머니인 에스터 사프란 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