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이어지는 글은 어제의 글과는 다른 프로그램(Fresh Air)에서 진행한 인터뷰다. 길이로는 긴 것 같지만 워낙 깊이와 강도가 높은 대화라서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인터뷰는 록산 게이의 책 '헝거: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이 나온 후에 진행된 것으로,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진행자는 테리 그로스(Terry Gross)다.


진행자: 오늘의 초대손님은 이번에 새로운 회고록을 출간하신 록산 게이씨입니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몇 파운드, 혹은 40파운드(18kg) 정도 과체중이 아닌, 300~400파운드(180kg) 과체중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체중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저자가 마른 체형이던 12살 때 집단 성폭행을 당한 후 일어난 결과들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록산 게이씨는 그의 체중이 그 결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이티에서 이민 온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딸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가 (미국에서) 흑인이라는 내러티브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며,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남성에게 끌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그런 상호모순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록산 게이씨는 자신의 에세이를 모은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장단편 소설가이면서 뉴욕타임즈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죠. 현재는 퍼듀 대학교(Purdue University)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나온 회고록의 제목은 '헝거(Hunger, 배고픔)'입니다.

어서 오세요, 록산 게이 씨. 먼저 회고록 앞부분에서 한 구절을 읽어주시고 인터뷰를 시작하면 어떻겠습니까?

록산 게이: 좋습니다. (읽기 시작)

"내 몸에 대한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체중 감량으로 인한 눈부신 변화를 그린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날씬한 버전의 내가 과거 뚱뚱했던 시절에 입었던 청바지의 다리 한쪽에 들어가 새 삶을 얻은 듯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실리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동기 부여를 해주는 책도 아니다. 또한 이 책에는 내가 잘 다루지 못한 내 몸과 내 식욕을 드디어 극복하면서 얻게 된 통찰과 해법 같은 건 없다. 말하자면 내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니다. 그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만 해두자.

나도 간절히 쓰고 싶다. 다이어트 성공 후기와 함께 내 안의 악마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물리쳤는지 마음껏 자랑하는 책을, 아니면 내 몸의 크기가 어떠하건 간에 내 몸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책을 쓰지 못하고 대신 이런 책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글쓰기였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막막한 작업이었다. 처음 '헝거'라는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평소 다른 글쓰기들이 그렇듯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언어들이 스스로 깨어나 지면 위로 펼쳐질 줄 알았다. 40년이 넘게 동고동락해온 이 몸에 대해 쓰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얼마 후 나는 단지 내 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몸이 견뎌온 그 무수한 사연들, 늘어난 몸무게와 정신적 짐들, 이 무게를 지고 살면서 그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관한 일들을 강제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비밀들을 억지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심장 한가운데를 갈라서 펼쳐놓아야 했다. 나를 벗겨버려 실체를 드러내야 했다. 그건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결코 쉽지 않다."

록산 게이가 낭독한 부분은 한국의 사이행성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책(노지양 옮김)의 서문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 책의 전체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번역문이 깔끔하고 원문에 충실해서 한국어판으로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미지 출처: 저자의 페이스북 계정)

진행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에 대해 쓰셨는데요, 그럼 왜 이 책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록산 게이: 제가 가장 쓰고 싶지 않은 (쓰고 싶은 마음이 가장 적게 드는) 책이었기 때문에 써야 한다고 느꼈어요. 저의 '나쁜 페미니스트'가 출간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 다음 논픽션은 어떤 주제로 쓸까, 하고 생각하면서 나의 뚱뚱함(fatness)에 대해서는 절대 쓰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바로 그 순간, 그건 제가 써야 하는 주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진행자: 본인이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갔을 때 577파운드(261kg)였다고 쓰셨어요. 키는 6피트 3인치(190cm)이고요. (이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몸과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될 테니 제가 선생님의 몸 사이즈를 이야기할 때 어떤 표현(형용사)을 사용하면 좋을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몸의 이미지와 관련해서 사용되는 표현들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담겨있어서 말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할 때 사용하고 싶은 단어가 다르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테리 그로스의 섬세한 진행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그로스는 록산 게이가 책에서 자신을 서술할 때 뚱뚱한(fat)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모를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걸 안다고 해도 먼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섬세한 배려는 어쩌면 그로스 본인이 자기 몸과 젠더 정체성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로스의 키는 150cm로 미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게다가 그의 짧은 머리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레즈비언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이 "smaller than life"라는 농담(중요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끄는 사람을 larger than life라고 하는 영어 표현을 뒤집은 것)을 한다. 이런 자신을 향한 농담은 자신이 익히 들어온 말을 누가 말하기 전에 미리 언급해서 지뢰를 없애는 작업인 경우가 많다. 배려는 많은 경우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테리 그로스는 사회적으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강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테리 그로스와 버락 오바마 (이미지 출처: Current)

록산 게이: '뚱뚱한(fat)'을 사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진행자: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체중이 그렇게 많이 나가면 왜 배리아트릭 수술(bariatric surgery, 위나 소장의 크기를 줄이는 수술)을 받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보면 20대 후반에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찾아가서 그 수술을 알아보는 아주 흥미로운 챕터가 있어요. 그런데 두 분 모두 그 수술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 수술이 동반하는 위험이나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어떤 것인가요?

록산 게이: 배리아트릭 수술은 위험한 수술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몸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고, 위를 작게 만드는 거죠. 경우에 따라서는 소장의 일부를 떼어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양분 섭취가 평생 제한됩니다. 게다가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아요. 즉각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체중 감량 효과를 가져오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게 얼마나 성공적인 수술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진행자: 책에서 몸을 바꾸기 위해 먹기 시작한 것이 12살 때 집단 성폭행을 당하신 후였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남자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계획한 일이었다고요.

그 아이와 자전거를 타고 숲으로 갔고, 한 오두막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그 아이의 친구들이 기다렸다가 공격을 했죠. 그리고 남자 친구가 그 일을 함께 계획했다고 생각하신다고요. 그때만 해도 강간이 뭔지 몰랐다고 쓰셨어요. 본인에게 일어난 일이 뭐였다고 이해하셨나요?

록산 게이: 저는 제게 일어난 일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섹스를 한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저는 강간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제가 경험한 그 일을 가리키는 어휘가 있고,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충분히 저항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달아나지 않았고, 그래서 저도 그 일에 동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진행자: 왜 나를 골랐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12살이던 그때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셨나요?

록산 게이: 12살 때의 머리로는 '아, 내가 초래한 일인 게 분명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걸 요청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제가 힘이 없었고, 연약해서, 아니 정확하게는 제가 남의 말에 쉽게 속는 아이여서 아무 남자애에게 조종당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할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저는 그게 이유인 줄 알았습니다.

플레이보이의 록산 게이 프로파일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Sorry, I ain’t sorry. Sorry, I ain’t sorry. I ain’t sorry. No no, hell nah." (이미지 출처: Playboy)

진행자: 그리고 집으로 가셨죠. 부모님께는 말하지 않으셨다고요. 감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입으셨을 게 분명한데요. 심지어 옷도 엉망이 되었을 텐데, 어떻게 그 일을 숨길 수 있었죠?

록산 게이: 저는 오늘날까지도 그때 제가 그 일을 어떻게 숨길 수 있었는지 몰라요. 식구들 몰래 제 방으로 간 기억, 제 옷을 최대한 숨겼던 기억, 가능한 한 오랫동안 숨어서 침착을 되찾으려고 애썼던 기억만 납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제가 아주 착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 저는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죠. 그렇게 착한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리고 잘못은 어떻게 숨겨야 하는지도 알죠.

진행자: 부모님께 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걸로 걱정하셨습니까?

록산 게이: 아시다시피 12살이었잖아요. 그러니 저는 부모님께 혼날 거라는 공포가 있었어요. 그리고 혼전 성관계를 한 거니까 지옥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죠. 가톨릭 집안이었고 가족이 아주 독실한 신자였거든요. 제 부모님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으로 저희를 기르셨지만 그래도 저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어요.

진행자: 하지만 성폭행을 저지른 남자아이들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죠.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 얘기를 했고, 그건 말씀하신 내용과는 달랐죠. 그 얘기를 남자아이들이 학교에 퍼뜨렸고, 그로 인해서 친구들 사이에 슬럿(slut, 성적으로 헤픈 여자, 비속어)이라는 평판이 퍼졌다고 하셨어요.

남자아이들이 자신들의 버전으로–그 아이들의 버전이 뭔지는 모르지만, 자기네들의 버전으로 이야기했으니까요–이야기를 하고 다니는데 이 일을 얼마나 숨길 수 있었나요? 아마도 학교 아이들은 그걸 믿었을 것 같은데요...

록산 게이: 네, 다른 학생들은 그 애들의 말을 믿었어요.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가 제 자리에 앉았는데 제 뒤에 있던 애가 제 어깨를 톡톡 치더니 "너는 슬럿이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로 사실상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그 얘기를 들었다는 걸 깨달았죠. 물론 그 남자아이들이 퍼뜨린 버전이었죠. 그때 저는 이제는 정말로 집에는 얘기할 수 없다고 깨달았어요. 저희 가족에게 큰 수치를 가져올 것이었니까요.  

진행자: 남자아이들은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거라고 했나요?

록산 게이: 남자아이들은 제가 선택한 거라고 했죠. 제가 원했고, 제가 시작했다고요.

진행자: 학교에서 그런 얘기에 반박하셨나요, 아니면 그런 논쟁에 참여하는 게 너무 두려웠나요?  

록산 게이: 저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그냥 수업에 들어가서 뒷자리에 최대한 숨어 지냈어요. 놀리면 참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중학생들이 그렇듯 아이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제 평판은 끝까지 바뀌지 않았어요. 저는 여전히 따돌림을 받았고, 루저였죠.

진행자: 음식을 많이 먹게 된 것과 강간 이야기와 어떻게 관련이 되나요?

록산 게이: 성폭행을 당한 후 저는 위안(comfort)이 필요했어요. 게다가 제 자신이 너무나 약하다고, 힘이 없다고 느꼈어요. 저는 제 체구를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과식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먹으면 상당한 위안을 얻었죠. 그리고 교외지역 중산층 가정에서 부모의 (과)보호를 받고 자라는 12~15세 아이들에게는 음식 말고는 저지를 만한 비행(vice, 술, 마약, 섹스 등의 행위)이랄 게 없어요. 그래서 먹는 걸 택한 거죠.

진행자: 본인의 몸을 혐오스럽게 만들면 남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쓰셨어요.

록산 게이: 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비만 혐오(fat phobia)가 흔한 세상에서 자랐죠. 그래서 남자애들은 뚱뚱한 여자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러니 내가 뚱뚱하면 나를 원하지 않을 거고, 저를 해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도 저는 제 체구가 더 커져서 더 잘 싸울 수 있기를 바랐어요.

록산 게이의 가족 (이미지 출처: TIME)

'록산 게이 이야기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