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코트킨(Stephen Kotkin) 교수는 프린스턴 대학교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러시아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다. 그의 아버지 집안은 한때 러시아 제국이었고, 지금은 벨라루스에 속한 비쳅스크(화가 마르크 샤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해서 유명한 '비텝스크'가 이곳이다)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다. 박사 과정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 역사를 연구할 생각이었지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를 만난 후 그의 설득으로 스탈린 연구로 방향을 바꿨다고 전해진다. (주제와 무관한 얘기지만, 지난달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의 관장에 선임된 미술사학자 이소영 박사가 그의 아내다.)

내가 코트킨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다. 뉴요커의 편집장 데이비드 렘닉(David Remnick)은 워싱턴포스트의 특파원으로 러시아에 머물던 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코트킨과 교류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연락한 사람이 코트킨이었다고 한다. 렘닉은 푸틴과 트럼프에 아주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만, 코트킨은 렘닉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러시아와 미국을 바라본다. 물론 코트킨도 푸틴과 트럼프에 비판적이지만, 렘닉이 이상주의적인데 반해 코트킨은 상당히 현실주의적이다. 그리고 렘닉이 미국 민주주의의 현재 상황에 비관적이라면, 코트킨은—장기적으로, 그리고 렘닉에 비해 상대적으로—낙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스티븐 코트킨(왼쪽)과 데이비드 렘닉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SZ-Magazin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나 낙관적 태도는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 특히 러시아 출신 이민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코트킨은 미국에서 태어났음에도 그런 태도가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미국 정치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안이한 낭만주의적 시각에서 그런 접근을 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좀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그리고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가지는 조심스러운, 희망적 접근에 가깝다.

전면전이 시작된 후로 코트킨과 두 번의 대담을 한 적이 있는 렘닉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대한 자리에서 그를 조롱에 가까운 질타를 한 이후로 현재 진행되는, 혹은 난관에 빠진 정전 협상에 관해 또 한 번 코트킨과 대화를 나눴다. 이 대화는 뉴요커 라디오 아워(New Yorker Radio Hour) 팟캐스트에서 들을 수 있고, 이를 정리한 뉴요커 기사도 나왔다. 팟캐스트의 제목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무엇을 잘못 이해한 것, 그리고 제대로 이해한 것"이고, 뉴요커 기사의 제목은 "우크라이나는—그리고 미국은—트럼프 이후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이다.

그 내용의 일부를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특히 팟캐스트는 이 문제를 오래 얘기해 온 두 사람의 대화라서 적절한 해석과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미지 출처: Axios, PNG All

백악관에서 벌어진 일

렘닉은 코트킨에게 가장 먼저 백악관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물었다. 질문을 받은 코트킨은 흥미로운 설명을 들려줬다. 우선 코트킨은 평화협정을 광물 계약과 연계한 건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트럼프가 아니라, 보좌관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우크라이나는 정전협정에 서명하기 전에 미국이나 서방 국가들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협정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푸틴에게서 우크라이나를 보호해 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코트킨은 이 상황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광물을 가져가는 계약을 하면 트럼프는 미국의 상업적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행동할 거라는 게 보좌관들의 계산이었다고 믿는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푸틴이 곧이곧대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우크라이나와 미국을 밀어붙일 게 분명한데, 우크라이나 광물을 차지하는 계약을 마친다면 트럼프는 그 상황에서 광물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에 더 큰 투자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푸틴은 욕심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광물이라는 이익을 놓치지 않으려는 트럼프가 하게 될 선택은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지키는 쪽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거다. 그게 트럼프를 잘 아는 보좌관들이 만들어 둔 틀이었다.

하지만 부통령 J.D. 밴스가 끼어들어 산통을 깼다. (아래 영상의 42:15 지점)

과거에도 평화조약을 무시했던 푸틴의 말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젤렌스키에게 밴스는 "백악관에 와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무례하게 군다"는 거친 언사로 공격한다. 밴스는 이렇게 열심히 우리가 노력하는데 "당신은 미국에 감사한다는 말도 안 한다" 주장(사실이 아니다)하며 트럼프와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말을 했고, 회담의 분위기는 곧바로 얼어붙었다. 언성이 높은 말이 오고 간 후, 백악관은 사실상 젤렌스키를 쫓아냈고, 코트킨의 말대로라면 보좌관들이 애써 준비한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코트킨은 밴스가 다음번(2028년) 대선 출마용으로 한 발언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를 아끼고,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밴스는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졌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언론을 타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밴스가 젤렌스키를 화나게 할 목적으로 심한 말을 퍼부었고, 젤렌스키는 밴스의 미끼를 무는 바람에 광물 계약이 날아간 것이다.

트럼프의 목표

그럼 코트킨은 트럼프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어쨌거나 트럼프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보좌관들은 트럼프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광물 계약 같은 것으로 트럼프의 결정을 유도할 수 있지만, 트럼프가 그쪽으로 가지 않겠다면 그만이다.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언행을 아주 거슬리게(very off-putting) 하는 스타일이라서 미국의 소프트 파워(군사력, 경제력 등의 경성권력과 구별되는 연성권력)가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트럼프가 원하는 목표는 미국과 세계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massive rebalancing)하는 것이다.

코트킨은 한 대통령이 임기 4년 동안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의 방향을 바꾸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트럼프는 미국의 힘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진실, 그리고 유럽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진실을 그만의 방식으로 보여준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 말은 (러시아가 다시 침공할 경우) 우크라이나 군인들만 죽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돕는) 다른 나라의 군인들도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로 어떤 유럽 국가도 병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를 가장 열심히 지원한 폴란드는 전쟁이 끝난 후에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어요. 유럽 국가들이 그렇게 가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걸 본 트럼프는 '병력을 보낼 생각이 없으면 입 닥치라(put up or shut up)'고 한 겁니다."  

"트럼프가 잘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없앤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트럼프가 우리가 가진 대통령이고, 지금의 유럽이 우리가 가진 유럽입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치가 원래 그렇듯, 트럼프의 행동은 엉뚱하고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하지만 상황은 이미 나빴습니다. 바이든의 정책은 바이든 정권이 끝나기 한참 전에 이미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그 방향으로 가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뭐라도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현실주의자의 견해 ②'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