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써클

마코폴로스의 생각과 달리 브리지워터는 폰지사기(다단계금융사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이 달리오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은 아니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한 감독 기관들은 마코폴로스와 그의 팀을 만났고, 그렇게 얻은 정보를 내부에서 공유하고 자체 조사팀을 꾸려 이 문제를 살폈다. SEC는 공식적 언급을 회피했지만, 이 조사에 관해 알고 있는 사람에 따르면 브리지워터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투자를 할 때도—추적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거래 수단을 포함하는—일련의 복잡한 거래 방법을 사용했다는 게 증권거래위원회의 결론이었다. 경쟁사들이 파악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그거였다는 것.

이런 결론에 만족한 SEC는 마코폴로스가 조사와 관련한 업데이트를 해달라는 요청에 더 이상 응하지 않았다. 다른 감독기관들도 브리지워터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마코폴로스도 조사를 중단했다.

브리지워터 본사 건물 (이미지 출처: Bridgewater Associates)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마코폴로스가 SEC에 제보한 시점은 이미 SEC에서 브리지워터를 깊이 살펴본 후였다. 메이도프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있었을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임에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SEC 직원들은 브리지워터 펀드 운용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하지만 SEC의 관심은 브리지워터가 어떻게 수익을 내느냐가 아니라, 투자자들에게서 받은 돈을 정말로 투자하느냐에 있었다. (메이도프와 같은 사기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게 중요했던 거다—옮긴이)

사실 브리지워터의 직원 중에서 회사가 수익을 내는 활동에 관여하는 사람은 깜짝 놀랄 만큼 소수에 불과하다. 한때 2,000명에 달했던 직원들—외에도 수백 명의 용역직이 근무한다—중에서 투자나 투자 관련 리서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 직원들은 회사의 운영 업무에 배정되어 있고, 여기에는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확대하는 업무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렇게 투자 업무를 하는 직원 중에서도 상당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정도의 상대적으로 쉬운 일을 한다. 이들이 경제사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글을 쓰면 달리오가 이를 읽고 고친다.  

그럼 그런 연구로 얻어진 인사이트가 브리지워터의 투자에 사용될까? 전현직 직원들에 따르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브리지워터의 투자를 자세하게 알고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이 넘지 않는다. 레이 달리오와 그의 오른팔인 그레그 젠슨(Greg Jensen)은 그 안에 포함될 사람들을 브리지워터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직원 중에 직접 고른다. 그렇게 기업 내 초핵심 그룹에 들어오는 사람은 다른 투자기업으로 옮기지 않고 평생 브리지워터에서만 일한다는 종신 계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이 사람들만이 브리지워터의 투자 비밀을 알게 된다.

이 그룹을 '신뢰의 써클(Circle of Trust)'라 부른다.

브리지워터의 핵심 3인 (왼쪽부터) 밥 프린스, 레이 달리오, 그레그 젠슨 (이미지 출처: Bridgewater Associates)

브리지워터가 수천억 달러의 돈을 투자 시장에서 어떻게 운용하는지에 관해서는 두 가지 버전의 설명이 있다. 하나는 레이 달리오가 고객과 대중에게 하는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전현직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커튼 뒤에서 비밀리에 일어나는 버전이다.

첫 버전에 따르면 브리지워터의 헤지펀드는 '아이디어의 성과주의(meritocracy of ideas)'에 기반한다. 투자에 관여하는 직원이나 연구원들 각자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브리지워터의 팀은 그 아이디어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역사에 관한 연구를 광범위하게 받아들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한 예측을 많이 하는 직원들의 아이디어에는 그렇지 못한 직원들의 아이디어보다 더 무게가 실리게 되고, 더 많은 투자금이 그 아이디어에 투여된다. 투자자들은 브리지워터가 설립자의 예측이나 한 번의 트레이드 때문에 펀드의 실적이 좌우되는 다른 헤지펀드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끌린다. 궁극적으로 좋은 투자 아이디어가 살아남는, 월스트리트의 다윈주의인 셈이다. 지갑이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브리지워터의 직원들이 작성한 연구 논문을 모아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레이 달리오의 저택으로 배달한다. 그렇게 모은 논문들은 브리지워터에서 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What's Going On in the World (세계의 현 상황)"라는 회의의 자료로 사용된다.

강 옆에 세워진, 중세 분위기가 나는 브리지워터 캠퍼스에서 가장 큰 방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서 달리오는 그레그 젠슨, 그리고 공동투자수석인 밥 프린스(Bob Prince)와 함께 제일 앞자리에 앉는다. 그들 앞에는 직원들이 줄지어 앉고, 사무실을 방문한 클라이언트(투자자)들이 초대되기도 한다. 참석하지 못한 다른 직원들이 나중에 볼 수 있도록 전부 녹화되는 이 회의에서는 그 시점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몇 시간동안 토론이 이어진다.

이 회의는 보는 사람의 눈에는 정말 대단하지만, 사실 브리지워터가 투자하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레이 달리오가 참석하는 회의 (이미지 출처: Bridgewater Associates)

이 회의가 끝나면 '신뢰의 써클' 멤버들만 따로 모여 소수의 직원만 들어갈 수 있는 다른 사무실로 이동하는데, 진짜 투자 논의는 여기에서 이뤄진다.

변화를 꺼리는 설립자

결론부터 말하면, 레이 달리오는 브리지워터이고, 브리지워터의 투자는 달리오가 결정한다. 물론 신뢰의 써클이 존재하고, 이들의 의견도 들어가는 게 사실이지만, 브리지워터의 플래그십 펀드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는 달리오 한 사람의 의견만 중요하다는 게 직원들의 이야기다. 무슨 대단한 시스템이 있는 것도, 인공지능이 동원되는 것도 아니다. 성배(holy grail)라는 건 없다. 달리오가 직접—사무실에서, 집이나 요트, 여름에는 스페인에 있는 별장에서 전화로—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다.

달리오와 브리지워터의 변호사들은 "시스템이 98%의 투자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한 사람이 지배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브리지워터의 투자 결정을 달리오 씨가 혼자 내린다는 건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레이 달리오는 브리지워터의 주력 펀드인 퓨어 알파를 '만약에-그렇다면(if-then)'이라는 룰(투자 규칙)에 따라 운영해 왔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그 결과로 다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로, 가령 특정 국가의 금리가 내려가면 그 국가의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퓨어 알파는 거기에 베팅하는 식이다. 이런 많은 룰들이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것으로, 단기간의 변화는 장기적인 변화를 의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시장에서 모멘텀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이런 룰은 펀드 설립 초기였던 1980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브리지워터에게 엄청난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당시만 해도 월스트리트에서는 주니어 트레이더부터 억만장자 트레이더까지 대부분 자신의 감(intuition)에 따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달리오의 브리지워터가 가졌던 이점은 줄어들었고,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면 그런 이점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누구나 투자 규칙을 프로그래밍하고 따를 수 있게 되었고, 경쟁 펀드들은 달리오의 비결을 따라잡기 시작했고, 초단타매매(high-frequency trading)와 같은 분야에서는 브리지워터를 추월하기도 했다. 레이 달리오는 한 인터뷰에서 "(나의 투자 규칙들은) 영원하고 보편적"이라고 자랑했지만, 그는 과거의 유산에 묶여있다.

1980년대 초의 레이 달리오 (이미지 출처: Bridgewater Associates)

팬데믹이 끝나면서 브리지워터가 운용하는 액수는 1,300억 달러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경쟁 상대가 없을 만큼 거대한 헤지펀드다. 돈을 긁어모을 수 있다면 지구상 어디에도 찾아가는 브리지워터는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브리지워터의 퓨어 알파는 글로벌 시장에서 몇 년째 수익률이 경쟁 상품보다 뒤떨어지지만, 손실은 잘 피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고객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펀드다. 이 펀드의 성장은 트레이더의 입김보다 룰에 기반한 접근으로 수익을 낸다는 신비감과 브리지워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똑똑하고 야심 찬 직원들—여기에는 신뢰의 써클에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은 브리지워터가 더 현대화되기를 바라지만, 브리지워터가 가진 투자 규칙의 리스트에 새로운 룰을 추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달리오와 프린스, 젠슨 세 사람 모두의 동의를 얻는 것뿐이다. 게다가 비밀 투표도 아니다. 프린스와 젠슨은 달리오에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이 거의 없고, 달리오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2018년에 브리지워터에 입사한 한 직원은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가 트레이딩에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브리지워터가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또 있다. 사내에서 열리는 "트레이딩 게임"이다. 실제 세상과 똑같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투자 담당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달리오의 아이디어를 대결시키는 이 게임에서 직원이 이길 경우 달리오에게서 상금을 받게 된다. 브리지워터의 투자 담당 직원들에게는 이런 게임이 자신의 투자 아이디어를 기업의 투자 규칙에 포함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레이 달리오도 상황이 예전만 못하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2008년의 경제 침체 후 주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11년부터 2016년 사이, 퓨어 알파의 수익율은 별 볼 일 없었다는 게 투자자들의 말이다. 브리지워터가 잘나가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5년 동안의 실적도 특별히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브리지워터를 다른 헤지펀드와 차별화해 주는 하나의 요소가 있다. 이 경쟁력 하나만큼은 달리오도 절대 놓칠 수 없다.


'리얼 달리오 ③'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