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로 모셔 와"

월스트리트에서 "정보 우위(information advantage)"라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내부자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사용하는 '내부자 거래'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 달리오가 가진 정보 우위는 합법적일 뿐 아니라 방대하다.

브리지워터가 노리는 정보는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 단위의 정보다. 이에 대해 잘 아는 직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달리오는 각 국가 정부 요직에 있는 공무원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을 통해 그 나라가 앞으로 어떤 경제 정책을 펴려고 하는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브리지워터는 이렇게 얻어낸 정보를 활용해 수익을 낸다. 여기에는 어떤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카자흐스탄의 예를 보자. 중앙아시아에 있는 카자흐스탄은 독재 정부가 지배하고 있고,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나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토 면적을 자랑하지만, 인구는 적다. 이 나라에서는 2013년에 대규모의 석유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770억 달러의 국부 펀드가 조성되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이 돈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었고, 브리지워터는 이 펀드의 총책임자인 베릭 오테무라트(Berik Otemurat)와 달리오의 미팅 일정을 잡아 두었다. 오테무라트는 투자 일을 시작한 지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은 사람으로 중책을 맡고 있었다.

달리오는 직원들에게 오테무라트 일행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우리와 만나기 전에는 어디에서 출발하지?" 직원들은 그 일행이 뉴욕을 출발해 브리지워터가 위치한 코네티컷주 브리지워터로 오게 된다고 했다. (자동차로 한 시간이 좀 넘는 거리다—옮긴이)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지?" 운전기사가 딸린 벤츠를 보냈다고 했다.

"차 말고 헬리콥터로 모셔 와."

(이미지 출처: Aviation International News)

뉴욕에서 출발하는 헬리콥터 서비스로 브리지워터에 도착한 카자흐스탄의 대표단을 기다리는 건 레이 달리오의 독특한—적어도 그들이 뉴욕에서 봤던 것과는 다른—발표였다. KRR의 헨리 크래비스(Henry Kravis)나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월츠먼(Stephen Schwarzman) 같은 뉴욕의 유명한 헤지펀드의 대표들은 고급 음식을 대접하며 투자를 권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달리오는 회의실에서 화이트보드에 알 수 없는 표를 그려가며 시장을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브리지워터의 구체적인 투자 방법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게 이런 미팅에 참석했던 직원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런 친밀한 접근법은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갖고 있다. 브리지워터의 마케팅 직원들은 달리오가 사용하는 방법이 통하는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달리오에게 더 중요한 건 투자 유치가 아니다. 오테무라트가 브리지워터의 펀드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음을 언급하자 펀드 담당자들은 그 제안을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당장 카자흐스탄의 투자를 받으려는 게 아닙니다. 오래 지속될 관계를 형성하는 게 저희가 바라는 겁니다."

브리지워터에게 '관계'는 정보 접근성(access)을 의미한다. 카자흐스탄의 석유 개발은 지연을 거듭해 10년이 넘게 걸리고 있었다. 따라서 그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면 석유에 대한 투자를 유리하게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브리지워터의 담당자들은 오테무라트 일행에게 무료로 투자 자문을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그 대가로 카자흐스탄의 현지 전문가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어볼 기회를 얻기 바란다고 했다. 오테무라트와 일행은 그런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결과는? 브리지워터는 카자흐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트게 되었을 뿐 아니라, 몇 달 후에는 애초에 제안했던 1,500만 달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투자도 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는 브리지워터도 기꺼이 응했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레이 달리오의 대변인은 국가 공무원들과의 관계는 모두 적법하다고 밝혔다.

EU, 스위스, 중국

미국에서 레이 달리오의 영향력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때 시작된 그의 인기는 이후로도 이어져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Ben Bernanke)와도 쉽게 연락할 수 있었던 반면, 버냉키의 후임인 재닛 옐런(Janet Yellen)은 달리오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달리오는 회사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옐런이 자기 전화도 받지 않고 만나지도 않는다는 불만을 자주 털어놓는다고 전해졌다.

브리지워터의 수익은 꾸준히 해외에서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의 전 총리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중앙은행의 총재를 지냈고, 달리오와 자주 대화하며 그의 조언을 구한다. 달리오는 2010년대 중반까지 드라기에게 조언을 하며 유럽연합(EU)이 경기부양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할 경우 유럽 기업들의 주가는 올라가겠지만 유로화의 가치는 떨어질 것이었다. 그 시기 브리지워터는 유로화 가치 하락에 베팅하고 있었다.

달리오는 취리히에서 스위스 국립은행에도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스위스 은행과 달리오의 만남을 주선한 전직 브리지워터 직원에 따르면 달리오는 스위스가 스위스 프랑과 유로화의 연동을 폐기하는 게 좋다고 했고, 2015년 초, 스위스가 돌연 유로화 연동을 폐기하면서 브리지워터의 펀드들은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달리오가 가장 장기적으로 가꾸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을 자주 방문하는 달리오는 중국투자공사(中国投资有限责任公司, CIC) 전임 총재에게 자신이 중국에 세운 자선단체 대표직을 맡겼다. 그리고 중국의 권력 서열 2위이자 훗날 국가부주석이 된 왕치산(王岐山)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는 중국의 정부 대표들에게 자기가 브리지워터를 통해 중국에서 올리는 수익은 미국으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자기가 받는 수수료는 개인적으로 중국에 다시 기부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다.

레이 달리오는 1990년대 중반, 자기 아들을 중국의 가난한 동네에서 교육받게 했다고 설명한다. (출처: LinkedIn)

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는 중국의 지도자들에 관해서는 항상 똑같은 표현—"아주 유능하다"—을 사용하고, 심지어 한 인터뷰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의 칭찬을 받는 중국의 관료들은 달리오에게 쉽게 조언을 구한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그리고 중국인들의 눈에도—달리오는 전형적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을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달리오의 눈에는 중국을 활용할 수 있는 구석이 더 있었다. 그는 신뢰의 써클 멤버들에게 중국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데 베팅을 하는 펀드를 중국 정부가 추적하지 못하도록 해외에 만들게 했다. 그렇게 해서 중국 경제가 추락할 때도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한 거다.

동전 던지기

레이 달리오가 '투자 엔진'이라 부르는 자동화된 투자 시스템은 사실 그가 자랑하는 것만큼 자동화되지도, 기계적이지도 않다. 만약 그가 미국 달러에 대해 숏 포지션을 잡고 싶으면 브리지워터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트레이드가 진행된다. (달리오는 2008년 경제 위기 후 약 10년 동안 그렇게 숏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지만 예측이 빗나가 성공하지 못했다.) 달리오가 원하는 한 어떤 룰도 막지 못한다.

2017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해 퓨어 알파는 고작 2% 상승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다른 헤지펀드들에 비해 아주 초라한 실적이었다. 브리지워터의 투자 부문 고위급 직원 몇 명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투자 성적을 높여야 한다고 판단한 신뢰의 써클 멤버들이 달리오의 투자 방법을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브리지워터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에서 달리오의 투자 아이디어들을 찾아 실적을 샅샅이 검토했다. 직원들이 설립자의 투자 결정을 평가하는 것인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되었기에 몇 번이고 재검토해서 오류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렇게 얻은 결과를 갖고 달리오와 미팅을 가졌다. (이는 브리지워터의 전현직 직원들의 증언에 따른 것으로, 달리오와 브리지워터의 변호사들은 달리오의 투자와 관련한 내부 연구는 없었으며, 그걸 논의하는 미팅도 없었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 젊은 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달리오에게 결과를 전달했다. 이에 따르면 달리오의 예측은 절반 정도 맞았고, 특히 근래 들어 그의 결정은 그냥 동전을 던져 선택하는 것보다 나을 게 없는 수준이었다. 직원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앉아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달리오는 결과가 적힌 종이를 구겨서 공으로 만들더니 던져버렸다.


'리얼 달리오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