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의 발전사에서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었던 이유로 "자연의 순리" 다음으로 많이 등장한—그리고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건 여자들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유행에 순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여자들이 원하지 않았을 뿐이지, 주머니가 달린 옷을 만들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면 해결되었을 문제라는 얘기다. 사실일까?

당시 여자 옷은 양재사(dressmaker)들이 만들었다. 남자 옷은 이미 한 세기 전부터 산업화를 거쳐 기성복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여자 옷은 몸에 딱 붙는 디자인에 정교한 스타일을 따르고 있어서 일일이 재단해서 만들어야 했다. 여성 참정권론자였던 엘리자베스 스탠턴(Elizabeth Stanton)이 1895년에 쓴 글은 이들 양재사와 고객 사이에 벌어진 실랑이를 잘 보여준다. 스탠턴이 양재사에게 원하는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하자 옷에 주머니를 넣을 공간이 없다며, 주머니를 붙이면 "보기 흉하게 툭 튀어나올 것"이라고 반대했다. 주머니를 요구하는 스탠턴과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 말고 전문가의 충고를 따르라는 양재사 사이에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주머니를 넣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나중에 완성된 옷을 받고 보니 주머니를 넣지 않았다는 것.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무시당한 스탠턴의 이야기는 "여자는 좀처럼 임금 협상을 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을 연상시킨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회사와 임금 협상을 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고, 그 결과 더 유능한 직원처럼 보이게 되는데 여자들은 회사가 주는 대로 받기 때문에 남녀의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절반만 진실이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더 적은 건 사실이지만, 실제로 임금 협상에 나서도 여자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요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했다는 건 편리한 핑계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