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바지와 재킷에 충분한 주머니를 가질 수 있었던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중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끈이 달린 주머니를 치마 속에 매달고 다녔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나빠진다. 18세기 중후반에 회화와 건축에서 일어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영향이 여성의 패션에 나타나기 시작한 거다. 1800년을 전후로 여자 옷은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의 조각에서 볼 법한 모습으로 바뀌어, 마치 기둥처럼 위에서 아래로 똑바로 떨어지는 얇은 천으로 만든 드레스가 유행했다.

1800년 전후의 여성 패션을 보여주는 그림들. 오른쪽 그림에서는 아이가 간식을 사달라고 하자 "엄마는 주머니를 달고 다니지 않는다며 몇 번을 말했니?"라고 말한다. 'Fashionable Convenience,' 즉, 패션이 돈을 쓰지 않기 위한 편리한 핑계라는 제목의 풍자다. (이미지 출처: TESSA, Pockets)

하지만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모양이 나오기 위해서는 과거와 달리 속치마를 많이 입을 수 없었고, 그렇게 해서 옷의 부피가 줄어들어 몸에 붙게 되자 치마 안쪽에 주머니를 매달 만한 공간이 사라지게 되었다. 현대 여성 핸드백의 효시라고 불리는 레티큘(reticule)이 등장한 게 바로 이 시점이다. 대개는 벨벳 등의 천으로 만들어진 레티큘은 프랑스어 réticule에서 온 이름이고, 어원이 되는 라틴어 reticulum은 작은 망, 그물(net)을 의미했다. (실제로 초창기 레티큘은 고대 로마의 여성들이 들고 다녔던 그물처럼 생긴 지갑의 형태였다고 한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들이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다르지 않았고, 레티큘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생겨났다.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유가 있다. 당시만 해도 주머니는 치마 안쪽에 묶어 매달고 다니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속옷과 같은 취급을 받았는데, 그걸 꺼내 들고 다니게 되니 마치 속옷을 내놓고 다니는 것처럼 점잖지 않게 본 거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여자들이 탱크톱(tanktop)을 입으면서 브라의 끈을 드러냈을 때 나왔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오죽했으면 치마에 묶는 주머니를 거부하고 레티큘을 들고 다니는 여자는 신부감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말도 했다.

레티큘을 들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 (이미지 출처: Jane Austen's World, Living with Jane, Glanmore National Historic Site)

하지만 그리스 여신 같은 드레스의 유행(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은 오래가지 않았고, 1830년대에 들어서면 다시 치마의 크기가 커지고 종 모양으로 변한다. 옷에 충분한 공간이 생기자, 과거처럼 주머니를 치마 안쪽에 다시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는 남자 옷처럼 주머니를 치마의 재봉선 안쪽에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새로운 실험도 잠시, 1870~1880년대에 이르면 종 모양의 치마가 사라지고, 앞은 직선으로 떨어지고 버슬(bustle, 치마받이 틀)을 이용해 뒷부분을 크게 키운 형태의 치마가 크게 유행했다. 재단사들은 치마 뒤의 넉넉한 공간을 활용해 주머니를 만들어 넣었다. 하지만 뒤에 숨어 있으니 손을 넣어 찾는 게 용이하지 않아 쓸모없는 경우가 흔했다. 한 여성은 오래 입어 낡은 치마의 옷감을 재활용하기 위해 뜯다가 비로소 그 치마에 주머니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버슬(오른쪽)이 들어간 치마를 입은 1880년대 여성들 (이미지 출처: Pockets,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899년 8월, 뉴욕타임즈에 등장한 기사는 "아담과 이브가 세상에 왔을 때는 둘 다 주머니가 없었을 텐데, 그 후로 남자와 여자는 주머니와 관련해서 완전히 다른 발전 양상을 보였다. 남자 옷의 주머니는 발전하고, 개선되고, 그 수도 늘어났는데, 요즘 여자 옷은 오히려 후퇴해서 두 세대 전 사람들이 입던 옷보다 오히려 주머니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라는 얘기로 시작한다.

1899년의 뉴욕타임즈 기사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 Times)

여성 참정권론과 주머니

19세기 말의 여자 옷에 주머니가 줄어든 상황을 개탄한 사람들이 당시 여성 참정권론자들(흔히 suffragettes라 부른다)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의 참정권만을 요구한 게 아니라, 여성의 전반적인 민권 향상을 요구한 여권론자였기에 남성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남자들은 주머니에 필요한 물건을 모두 넣고 자유롭게 길거리를 휘젓고 다닐 수 있는데, 여자들은 거대한 치마를 입고 각종 물건을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니 외부의 환경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빠르게 대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들은 여자 옷에 주머니가 없는 게 당연하게 여겨질 경우 이게 확고한 사회적 규범으로 고착될 것을 염려했다. 이는 지나친 우려가 아니었다.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으로 남녀를 구분하던 관습이 자연적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가 직업을 갖지 않는 것부터 여자 옷의 디자인까지 모든 것이 타고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것인 양 말하는 일은 그때부터 지금껏 끈질기게 이어진다.

여성 참정권론자였던 앨리스 듀어 밀러(Alice Duer Miller)가 1915년에 쓴 풍자글, "Why We Oppose Pockets for Women (우리가 여자 옷에 주머니가 들어가는 걸 반대하는 이유)"을 보면 이게 100년 전에 나온 글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통렬하다. 8가지 이유 중에는 "2. 대다수의 여성이 주머니를 원하지 않기 때문. 그들이 원했다면 옷에 주머니가 달려 있을 거니까." "3. 주머니를 달아줘도 사용하지 않으니까," "6. 남자가 여자의 물건을 자기 주머니에 넣어 주는 기사도를 발휘할 수 없으니까," "7.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해야 하니까," "8. 남자들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건 담배, 담뱃대, 술병, 껌, 남들이 보면 안 되는 편지 따위인데, 여자들이라고 그보다 나은 물건을 들고 다니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 같은 것들이 있다.

이건 분명히 풍자글이었지만,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자들은 그 풍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앨리스 듀어 밀러의 글은 "Are Women People? (여자는 사람인가?)"라는 책에 실렸다. (이미지 출처: Pockets)

그런 당시 여성 참정권론자들을 보는 보수주의자들의 시각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들은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타고난 젠더를 따르지 않는(gender-nonconforming)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런 시각을 뒷받침할 만한 성소수자를 골라내 공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게일 러플린(Gail Laughlin)이다. 당시 언론은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러플린이 당시 여성들이 입던 주머니 없는 드레스를 거부하고, 남자 옷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비난하면서 "러플린은 주머니가 없는 옷은 입지 않는다"고 조롱했다. 여자 옷에는 주머니가 없는 게 정상이라는 생각이 이미 확고하게 박혀있었던 거다.

여성이 드레스나 치마가 아닌 옷을 입는 것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저항은 아주 오래 지속되어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미국 의회에서 여성 의원들은 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세 명의 여성 의원이 이를 거부하면서 바지 정장(pants suit)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바지 정장은 두고두고 얘깃거리와 조롱감이 되었다.
1919년의 게일 러플린과 2016년의 힐러리 클린턴 (이미지 출처: NFBPWC)

남자들의 공격은 성소수자 여성에 그치지 않았다. 여성 참정권론은 못생긴 여자들이 하는 주장이라면서, 이들이 남자들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는 "보기 흉한 버릇"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페미는 못생긴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공격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외모와 행동을 조롱하는 희극(A Contented Woman)의 포스터 (이미지 출처: Pockets)

'여자 옷과 주머니 ④'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