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을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은 없다. 직장에서도, 군대에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우리는 "바닥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일에서 우리는 실수하고 때로는 큰 실패를 경험하면서 성장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미국인들이 훌륭한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러시모어산에 새겨진 네 명의 대통령 중 하나)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고, 내가 좋아하는 만화 '핀과 제이크의 어드벤처 타임'에 등장하는 제이크(Jake the Dog)은 이렇게 말했다.

"야, 일을 잘 못하는 건 제법 잘하는 단계로 가는 첫걸음이야. (Dude, sucking at something is the first step toward being sort of good at something.)

사회가 청소년이나 젊은 사람들의 실수에 너그러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일에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이 하는 실수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실수는 다르다. 나이 든 사람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은 그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들이 하는 실수는 훗날 뛰어난 실력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일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을 읽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은, 특히 20대를 멘토링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안다.

오늘 소개하려는 이야기는 실수를 하면서 성장한 사람이 직접 들려주는 경험담이다.


저는 자라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18살이 되었는데 어떤 일에서 경력을 쌓으면 좋을지 몰랐죠. 그러다가 누가 '채혈(採血, phlebotomy)'이라는 일이 있다고 얘기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 데다가, 주위에 그 직업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어서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죠. 채혈사(phlebotomist)는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위해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는 사람입니다. 이거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관련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봐서 병원에 취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신났죠.

그런데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제가 그 일을 너무나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냥 잘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리 애써도 환자의 혈관을 못 찾는 거예요. 그래도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그러지 말고 그냥 병원 로비에 앉아서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일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월마트에서 손님들에게 인사하는 직원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매장 입구에서 인사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그리터(greeter)라 부른다. (이미지 출처: Business-Time)

하지만 그런 일만 하고 있으면 제 기술이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해서 환자를 만나서 채혈을 하겠다고 했죠. 그렇게 해서 병실에서 만난 환자는 혈관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런데 바늘을 찌르자 혈관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비껴났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남자 환자였는데, 제게 화를 냈습니다. 그냥 불평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침대에서 일어나서 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너, 이 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이 너무나 뜻밖이라서 혹시 장난인가, 했어요. 하지만 화가 난 거였습니다. "일할 줄 아는 사람 데려와. 너처럼 못하는 인간 말고." 제가 채혈을 제대로 못 한 건 사실이지만, 너무나 무례한 폭언이었죠. 저는 "제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알아(I know, 그렇게 보인다는 뜻)" 였습니다.

완전히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제 일을 못한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서 고민하다가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죠. 그랬더니 엄마가 위로한답시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데서 고생하지 말고 공사장에서 일해라. 아빠를 통하면 건설 공사장에서 일자리 소개 받을 수 있을 거다."  

저는 건설노동자가 되기는 싫었어요. 건설 현장에 가면 전부 멕시칸들이잖아요.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 특히 건설일의 경우 히스패닉 노동자들이 많다—옮긴이) 그래서 엄마한테 그건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죠. 그래서 병원의 고참 채혈사를 찾아가서 제자가 될 테니 이 일을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죠. 그렇게 그분에게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점점 쌓였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정말 이 일을 잘하게 될까' 하는 의심이 완전히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저는 볼티모어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오스카 사베드라

그동안 저는 각종 훈련을 받고 여러 병원에서 경험을 쌓았고, 제가 일하는 병원에서 채혈을 가장 잘하는 채혈사 중 하나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일하는 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온 전화였죠. 현재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있어서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고 빨리 오라는 거예요. 원래 채혈사는 중환자실에 갈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는 필요하면 의사, 간호사들이 직접 채혈을 하기 때문에 채혈사가 필요 없어요.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지금 여기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전부 나서서 시도하는데 혈관이 잡히지 않아 채혈이 안 된다"라고 하더라고요. 다급한 상황이니 빨리 올라오라고요.

그래서 갔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층이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더군요. 잠시 헤매다가 병실을 찾아서 들어가니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었습니다. 방을 가득 채운 의사와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죠. 그걸 보고 환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긴장되면서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이 방에서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 방에 있는 의사, 간호사들이 찾지 못한 혈관을 내가 찾을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Washington Post)

저는 환자의 혈관을 놓칠 때마다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 제게 폭언을 했던 그 환자가 떠오릅니다. 그 환자가 나타나서 제게 "너, 이 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하고 다그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병원에서는 모든 게 실전입니다. '내가 이 환자의 혈관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왔죠.  그러더니 갑자기 방 안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제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천천히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 나는 소리 같았죠.

그 순간, 제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힘에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죠.

"채혈사입니다.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야 하니 비켜주세요."

"누구시라고요?"

"채혈사라고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야 하니 자리를 좀 내어주세요."

"아, 오셨네요. 이쪽으로 오세요."

저는 환자에게 다가가서 양팔을 샅샅이 훑었습니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결국 채혈할 때 거의 사용하지 않는, 아주 아주 특이한 곳을 찔렀습니다. 바늘이 가는 혈관을 정확하게 찔렀기 때문에 1분이 채 되지 않아 검사용 혈액을 세 개의 튜브에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가 찌른 지점(붉은 원)은 아주 노련한 채혈사만이 찾을 수 있는 가는 혈관이 지나는 곳이다. (이미지 출처: Harvard Health)

그 방에 있던 어떤 의사, 간호사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제가 혈액 채취에 성공하자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제게 고맙다고 했죠. 그렇게 제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제가 환자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에 들어가면서 환자의 팔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죠. 간호사들이 병상을 밀고 나가자 비로소 환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었습니다.

'어라? 왜 저 사람을 어디서 봤더라?'

그렇게 기억을 더듬다가 기억이 났습니다. 제가 일을 처음 시작했던 6년 전, 혈관도 못 찾는다고 저를 나무랐던 그 환자였어요. 그 사람을 다른 병원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출근했는데 다시 중환자실에서 저를 찾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한 번 더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고 다시 올라와 줄 수 있냐는 거예요. 그래서 그 환자가 있는 병실로 가서 다시 채혈을 했죠. 이번에는 환자도 정신을 차렸기 때문에 제가 채혈을 하는 동안 말을 걸더라고요. 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게 분명했지만, 저는 만난 적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채혈을 하고 방을 나서는데 그 환자가 제게 이러더군요. "고마워요. 이렇게 일을 잘하는 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말이죠." 그 말에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알아요(I kno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