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 파튼과 바바라 월터스 ②
• 댓글 남기기바바라 월터스는 돌리 파튼에게 "당신은 어릴 때부터 (주위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라며 성장 시절 이야기로 넘어가는 듯 했다. 돌리 파튼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노랫말과 곡을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 12명이나 되는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외삼촌이 가지고 있던 기타를 받은 건 돌리였다. 9, 10세 때부터 각종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며 십 대에 이미 지역에서 잘 알려진 뮤지션이었고, 19세에 첫 앨범을 냈다. 따라서 파튼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스타가 되고 싶었다는 말로 대답을 했다.
하지만 월터스는 파튼이 얼마나 어린 시절부터 뮤지션으로 자랐는지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자신이 가졌던 꿈을 이야기하는 파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어릴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어요?"라고 물어본다. 파튼이 "(당연히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죠"라고 답하자, "금발의 가발을 어릴 때부터 썼다는 얘기가 아니라, 11, 12, 13세 때 이런 모습이었냐구요"라고 정정한다. 그제야 파튼은 월터스가 '가슴이 언제부터 그렇게 컸느냐'라고 묻는 것임을 깨닫는다.
전국 방송에서조차 자신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파튼은 예의 있게 대답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월터스는 더 심한 질문을 한다. 성형수술로 가슴을 키운 거냐는 질문이었다. 당연히 월터스 본인이 궁금했던 것이고, 모욕적인 질문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월터스는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저희 직원이 궁금해 해서 물어보는 것이고, (당신이 기분 나쁘면) 그 직원 탓"이라며 비겁한 핑계를 댄다.
월터스가 계속해서 자신의 외모에 집중한 질문을 하자 파튼은 자신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우스운(ridiculous) 치장을 하고 있지만, 외모를 넘어서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진실한 내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로 성숙한 답을 한다. 월터스가 "그래도 사람들이 당신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하자, 파튼은 "아주 잘 알고 있다"라면서 하지만 "저는 제 스스로가 누구인지, 제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상관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런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because I'm secure with myself) 요란한 화장을 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일은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파튼은 "이렇게 싸게 보이려면 많은 돈이 든다(It costs a lot of money to look this cheap)"라는 말을 종종 한다. 자신의 외모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게 오디언스 때문에 의도된 것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월터스가 보는 돌리 파튼의 결혼
월터스는 파튼의 남편 얘기도 꺼냈다. 파튼은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기 직전인 20세에 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하던 칼 딘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지금도 거의 알려진 게 없을 정도로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야말로 "일반인"이었다. 물론 대중은 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지만 파튼은 남편은 전적으로 자신의 사생활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파튼이 자신의 남편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을 안 월터스는 인터뷰에서 결혼 후에 수퍼 스타가 되어 항상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하는데, 떨어져 있는 동안에 유혹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는다. 파튼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만 알고 있으면 떨어져 있을 때 상대방이 뭘 하느냐는 중요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하지만 월터스의 질문은 또 다시 선을 넘는다. 이 결혼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물은 거다.
이 인터뷰가 이뤄진 미국의 1970년대는 여성 운동의 영향으로 불행한 결혼을 끝내려는 여성이 많았고 실제로 이혼율이 1960년대에 이어 아주 높았던 시점이다. 그래서 월터스가 파튼의 결혼이 쉽게 끝날 거로 생각했을 수도 있고, 부부 사이에 경제력이 크게 차이가 날 경우, 특히 여성이 남편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많은 돈을 버는 파튼 커플의 경우 결혼 생활이 어렵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면 어디까지나 월터스의 편견이다. 파튼은 1966년에 결혼한 남편과 현재 55년 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월터스는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을 했고, 1992년 이후로는 배우자 없이 살고 있다.
오랜 결혼 생활과 잦은 이혼 중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고,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 분명한 건 월터스가 파튼에게 던진 질문은 월터스 자신의 가치관을 개입시킨 것이었고 자신이 낮춰보는 남부 출신 가수의 배우자 선택에 대한 불필요한 판단이었다.
9 to 5
돌리 파튼의 인기는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고, 1980년에는 유명한 영화 '나인 투 파이브(9 to 5)'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지금 보면 당시 여성들이 회사에서 어떤 지위에 있었고, 어떤 취급(그리고 성추행)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역사 자료처럼 느껴지는 이 영화에서 파튼은 동명의 주제가도 불렀다.
그리고 이 노래(아래 영상)는 같은 해 앨범으로도 발표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직장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주제곡이 되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파튼의 대표곡이 되었지만, '나인 투 파이브'라는 곡을 컨트리 뮤지션이 직접 쓰고 불렀다는 사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2021년에도 컨트리 뮤직은 블루칼라 남성 노동자와 픽업트럭, 청바지와 여자 친구에 대한 얘기만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1980년에 컨트리 뮤지션이 발표한 노래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고단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1977년의 월터스는 몰랐을) 돌리 파튼의 참모습이다.
그러나 돌리 파튼은 진보적으로 보이는 행보를 할 때도 정치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자신은 "진보적인 여성(women's lib)"이 아니고, 정치는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다고 꾸준히 얘기해왔다. 심지어 영화 '나인 투 파이브'에 출연한 두 명의 다른 주연 배우들과 함께 2017년 에미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왔을 때도 세 명이 나눠 입은 청색, 백색, 적색의 의상 중에서 (민주당, 공화당의 상징색을 피해) 흰색을 선택한 사람이 돌리 파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돌리 파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진보, 보수 어디에나 있다. 앞서 말한 뉴요커 기사에 등장하는 돌리 파튼 전기를 쓴 따르면 파튼을 특히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중상류층의 도시 여성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여성성과 섹스 어필을 강조하는 파튼의 외모와 취향을 경멸했다. 바바라 월터스의 인터뷰 내용이 왜 그토록 사납고 적대적인 질문으로 가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파튼은 당시 일어나고 있던 제2세대 페미니즘과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직업인 돌리 파튼
파튼이 일찍부터 재능을 보이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당시 컨트리 뮤직계에서 젊은 여성이 처음부터 독립적인 활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파튼의 초기 음악은 포터 왜거너(Porter Wagoner)라는, 나이가 20년이나 많은 컨트리 뮤지션과의 듀엣으로 시작했다. 무려 7년 동안 이어진 이들의 관계는 직업적 동업이었지만 대등한 위치라고 보기 힘들었다. 2018년 영화 '스타 이즈 본,' 혹은 원작인 1976년 작 '스타 탄생'에서 성공한 남자 뮤지션이 젊은 신인 여성과 공연하는 장면은 파튼과 왜거너의 사이의 '동업'이라는 것이 어땠을지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준다.
왜거너가 돌리 파튼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가정폭력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왜거너는 자신의 힘으로 키웠다고 생각하는 젊은 파튼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했고, 파튼의 몫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자 가수의 태도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구도의 반영이었던 것 같다. 파튼은 결국 왜거너를 떠나 독립하기로 결정했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왜거너의 사무실에 들어가 자신이 며칠 전에 작곡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독립할 것임을 알렸다고 한다.
그 노래가 바로 사람들이 (휘트니 휴스턴의 버전으로 기억하는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 'I Will Always Love You'다. "Bittersweet memories, that's all I have, and all I'm taking with me"이라는 가사는 이 영화 속 여자 가수와 남자 보디가드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노래처럼 들리지만, 자신과 오래 함께 일한,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는 남성 동업자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말로도 완벽하다. 왜거너는 파튼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 뒤에는 소송을 걸어 지독한 법정 싸움을 했다고 한다).
돌리 파튼이 왜거너에게 동업의 종료를 알린 시점은 미국 대법원에서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때다. 돌리 파튼은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주류 페미니즘은 파튼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튼의 인생은 미국 여성이 남성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페미니즘의 우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많은 여성이 파튼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한 1977년의 인터뷰에서 거듭해서 외모를 지적하는 바바라 월터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I'm very real where it counts. That's inside (저는 중요한 부분에서는 꾸밈이 없습니다. 그 중요한 부분은 바로 제 내면이죠). 그리고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월터스에게 "당신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저는 당신과 동질감을 느낍니다"라고 말한다. 2020년대를 사는 여성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바바라 월터스와 돌리 파튼 중 누구의 말에 더 공감할까? 당시 시청자들은 어떤 평가를 했을지 모르지만 40여 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유튜브의 댓글이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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