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의 어느 언론인과 대화하던 중에 미국의 유명한 방송 언론인 바바라 월터스의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에게 월터스는 하나의 롤 모델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장이 그랬지만 언론계는 특히 남자들의 세상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잃지 않는 여성 방송인은 한국에서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29년생인 바바라 월터스는 언론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모든 젊은 여성들의 롤 모델로 생각할 만한 경력을 가졌다. 미국에서 여성 인권운동이 본격적인 힘을 얻기 전인 1960년대 초부터 NBC 방송국에서 일했고, 1974년에는 미국 방송사상 여성 최초로 주요 뉴스 프로그램의 공동진행자가 된 인물이다. 바바라 월터스의 경력 자체가 여성 언론인의 역사인 셈이니 '살아있는 역사'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월터스의 인터뷰 스타일을 좋아했다. 당시 여성들에게 기대되었던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질문이 아닌, 인터뷰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날카로운 질문을 미소 없이 던지는 걸 보면 언론 커리어를 꿈꾸는 여성들이 그를 좋아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으로서는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이 아직 가정주부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70년대에 '미국 여성'의 이미지와 그들의 힘(empowerment)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기회도 되었을 거다. (미국은 20세기 중후반에 비슷한 시도를 많이 했다. 일종의 체제 홍보였다.)

1977년 바바라 월터스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인터뷰했다.

그렇게 존경을 받던 바바라 월터스이지만 근래 들어 그에 대한 비판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가 과연 미국 여성 언론인의 대모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냐는, 일종의 재평가다. 내가 기억이 맞는다면 그 발단은 2017년, 월터스가 공동 진행자/패널로 출연하는 아침방송 '더 뷰(The View)'에서 진행한 코리 펠드먼의 인터뷰였다.

피해자 비난

코리 펠드먼(50)은 아역 배우 시절부터 헐리우드 쇼비즈니스에서 자란 배우이자 뮤지션이다.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수많은 여성들을 성폭행한 것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미투운동이 촉발된 2017년, 펠드먼은 헐리우드가 성인 배우들에게만 위험한 곳이 아니라며 자신이 어릴 때 받았던 성적 학대(sexual abuse)를 폭로했다. 더 뷰에 출연한 펠드먼은 그 얘기를 하면서 자식을 헐리우드에서 성공시키려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헐리우드 곳곳에 숨어있는 소아성애자들(pedophiles)로부터 무작정 안전할 거라 믿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40대 후반의 남성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은 피해를 이야기하는 동안 바바라 월터스는 펠드먼에 공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그럼 그 사람들이 소아성애자라는 말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아직도 (헐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다고요?"라며 질문을 반복하는 월터스의 태도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언론인, 전형적인 인터뷰어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뒤이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You're damaging an entire industry(당신은 지금 업계 전체를 훼손하고 있잖아요)!" 월터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치 꾸짖듯 이렇게 말했고,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를 고백하는 피해자는 오히려 "죄송합니다. 그런(업계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게 아주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라는 걸 얘기하려는 거예요"라고 사과, 해명하는 모양새였다. 시청자들은 이 모습에 분개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사회가 나무라고 비난하는 행동이야말로 미투운동이 막으려고 하는 것인데 언론인이 나서서 피해자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월터스는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인이 아닌 자신이 평생 일했던 미디어 산업을 보호하는 업계의 이해관계자, 권력자로 보인다.

물론 이 일로 바바라 월터스에 대한 "캔슬" 움직임이 나타난 건 아니지만 이후의 전개는 미투운동에서 흔히 보는 공식을 따른다. 즉 문제가 되는 행동이 공개되면 비슷한 일을 겪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입을 여는 것이다. 코리 펠드먼을 나무라는 월터스의 모습이 방송에 나간 후 월터스가 했던 과거의 인터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월터스의 인터뷰가 원래 그렇게 잔인했다면서 과거의 영상을 찾아내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찾아낸 영상 중 하나가 영화배우 브룩 쉴즈가 16세 때인 1981년에 월터스와 했던 인터뷰다.

아역배우로 커리어를 시작한 쉴즈는 15세 때 선정적인 문구가 사용된 광고에 출연해서 큰 논란이 되었는데, 아직 미성년자라서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인터뷰에서 월터스는 소름 끼치는 질문을 퍼부었다. 가령 "What are your measurements(신체 사이즈는)?" 같은 질문이다. 쉴즈는 키와 몸무게 만을 말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성차별적인 질문이었다. 이어지는 "자라면 당신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도 질문이라기 보다는 딸을 선정적인 미디어 산업에서 일하게 한다는 일부의 비난을 돌려서 표현한 것이었다.

최근 브룩 쉴즈는 '너는 성적인 대상'이라는 노골적인 메시지, 엄마와 딸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듯한 질문으로 가득했던 1981년의 이 인터뷰를 두고 "(월터스의 질문들은) 사실상의 범죄행위였고, 저널리즘이 아니었다(It's practically criminal. It's not journalism)"고 회상했다. 하지만 굳이 그의 회상이 아니더라도 당시 영상 속 쉴즈와 어머니의 표정이 많은 걸 얘기해준다.

물론 1980년대 초 언론인의 감수성이 2020년대와 같을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지난 몇 년 동안 미투운동으로 줄줄이 사퇴하고 있는 유명하고 나이든 남성 언론인들을 생각하면 바바라 월터스가 특별히 더 나쁜 언론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월터스는 남성들로 가득한 남성중심적인 산업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한 여성 언론인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의 커리어가 후배 언론인의 롤 모델이 되는 것도, 그의 인터뷰가 모범적인 취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바라 월터스가 본 돌리 파튼

바바라 월터스 같은 인물을 비판할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그들을 '나쁜 여성'이라는 틀로 들여다 보는 것이다. 그는 여성이지만 그의 문제는 그가 여성인 것과는 무관하다. 그에 대한 비판은 그가 대표하는 미국 언론계, 미디어업계에 대한 비판이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월터스가 남성중심의 언론계에서 여성의 자리를 개척한 인물이라는 사실과 그 공로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무비판적으로 그를 후배 언론인의 롤 모델로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과거 미국 미디어가 여성, 특히 쇼비즈니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는지는 앞서 소개한 브룩 쉴즈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했지만, 쉴즈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그나마 많이 절제된 버전에 불과하다. 더 적나라한 시선은 월터스가 1977년, 가수 돌리 파튼(Dolly Parton)과 했던 인터뷰에 드러난다.

컨트리뮤직 가수로 유명한 돌리 파튼은 흔히 자신의 팬들이 좋아하는 "볼륨 있는 몸매를 가진 금발의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게 성차별적인 시각일 수는 있지만 최소한 그걸 상품화한 건 사실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는 돌리 파튼에 대한 일종의 재평가가 일어났다. 가령 한 평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를 이야기한다. 컨트리뮤직과 팝의 크로스오버를 유행시켰을 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컨트리뮤직에서 여성 뮤지션의 자리를 마련했고, 다른 여성 뮤지션들과 경쟁하기 보다 그들의 커리어를 키워주는 '언니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직업인으로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재평가 작업의 결정판은 아마 2020년 뉴요커의 피처 기사가 아닐까 싶다. "일하는 여성(working-class women)은 물론 모든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돌리 파튼 인생의 단계와 정치적인 환경 변화 속에서 자신의 스타파워를 지켰다"는 이 기사 요약이 잘 보여주듯, 최근 나오는 파튼의 재평가는 대부분 그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보수적인 남부 남성 팬을 거느린 컨트리뮤직 가수가 그런 주장을 하면서 진보와 보수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77년 바바라 월터스의 인터뷰에서는 이런 시각을 찾을 수 없다. 엘리트 언론인이 한 여자가수를 '성적 매력을 상품화하는 가난하고 무식한 남부 출신의 가수'라는 틀 속에 넣고 그 시각을 강조하는 질문을 퍼부을 뿐이다. 개인과 집단에 대한 비하와 저널리즘의 선을 오가는 월터스의 질문들은 지금 들으면 거의 끔찍한 수준이다.

인터뷰는 "Let's start at the beginning (태어나 자란 얘기부터 시작하죠)"라는 월터스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파튼은 자신이 작은 오두막에서 12명의 형제자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한다. (1940년대라고 해도 미국에서 방 하나뿐인 오두막에서 열 명이 넘는 식구가 살았다는 건 얼마나 가난한 집안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마자 월터스는 "돌리, 제가 자란 환경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을 힐빌리(hillbilly, 가난한 백인을 가리키는 비하적인 표현)라고 불렀어요"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런 무례한 표현에 익숙한 파튼은 웃으면서 "그렇게 부르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실지는 모르지만, 저를 그렇게 불렀으면 정강이를 걷어 찼을 거예요"라고 소리내어 웃는다. 농담으로 받았다는 신호를 분명하게 보내는 파튼에게 월터스는 이렇게 '정정'한다: "아뇨, 저는 힐빌리라는 표현을 들으면 당신네들(your kind of people)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난 파튼과 달리 바바라 월터스는 성공한 쇼비즈니스를 운영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나중에 사업의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어쨌든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의 펜트하우스에서 살았던 집안이고, 바바라는 어릴 때부터 뉴욕의 셀럽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고 뉴욕주의 사립 리버럴 칼리지를 나온 바바라 월터스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돌리 파튼과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한 거다.

이런 질문은 월터스가 브룩 쉴즈에게 했던 질문과 비슷한, "대중은 이렇게 생각/비판하는데 당신은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건 기자들이 인터뷰에서 흔히 사용하는 질문으로, 인터뷰이에게 반론할 기회를 주는 방법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월터스의 태도는 대중의 이런 생각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들려달라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그렇게 편견에 찬 대중을 자임(自任)하는 듯하다.

그런 무례한 질문에 파튼은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다양한 비속어로) 부르지만, 우리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교육을 받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똑똑한 사람들이며,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차분하게 반박한다.  

('돌리 파튼과 바바라 월터스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