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든 문학이든 훌륭한 예술작품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아주 개인적으로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은 대개 시대와 장소를 넘어 큰 사랑을 받는다.

그런데 관객, 독자 개개인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느낀다는 건 달리 말하면 각 개인이 그 작품을 직접, 그리고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위대한 작품들이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만 뛰어난 게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 이는 추상회화나 시처럼 애초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의도하는 작품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처럼 분명한 비주얼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을 보면서도 관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감상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한다.

'반지의 제왕' 속 안전한 남자들

가령 최근 뉴욕타임즈에 등장한 'How ‘Lord of the Rings’ Became ‘Star Wars’ for Millennial Women(영화 '반지의 제왕'은 어떻게 밀레니얼 여성들의 '스타워즈'가 되었나)'라는 기사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알다시피 '반지의 제왕'은 남성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의 남성들이 10~20대에 열광했던 3부작 영화다. 물론 원작 소설은 1950년대에 나와서 이미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책의 경우도 주 독자층은 젊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지금은 대부분 30대에 들어선) 밀레니얼 여성들 중에 이 영화를 자신의 성장기에 중요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고 한다. 마법이 나오고, 기사와 칼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남성인 이 영화를 좋아했던 여성들은 작품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걸까?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관객에게 달려있다.

역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여성 관객에게 '안전'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영화 속에서 "좋은 쪽은 모두 정말로 좋은 사람들(good guys are all actually good)"일 뿐 아니라 3부작을 통틀어 성폭행 등 여성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는 것. 비록 전투 장면이 많고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지만, 소위 유해한 남성성(toxic masculinity)은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들 선한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동성애 코드로 읽은 사람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터넷에서 'gay Hobbit erotica'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여전사 리플리가 죽인 것

알고 보면 너무나 분명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하는 영화 속 상징 중 하나가 영화 '에일리언(Alien)' 시리즈에 등장하는 외계 생명체(에일리언)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에일리언은 남성의 성기를 닮은 긴 머리를 갖고 있고, 사람을 죽이는 대신 숙주(host)로 만들어 몸 속에 알을 낳아 키우게 만든다.

여기에서 성폭행의 이미지를 읽어내지 못했다면 시고니 위버가 연기하는 주인공 엘렌 리플리의 연기와 스토리가 분명하게 보여준다. '에일리언 2'에서 남자 동료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거나 숙주가 된 후 남은 리플리는 기지에 숨어있던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몰려드는 남성 성기들, 아니 에일리언들에 맞서 싸운다.

물론 그런 상징과 구도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에일리언' 시리즈를 페미니스트 영화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관객이 페미니스트 영화로 받아들이고 즐긴다고 해서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반지의 제왕'을 동성애 코드로 읽고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작품을 해석하고 즐길 권리가 관객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트랜스젠더가 본 '매트릭스'

이번에 4편이 나온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발음은 메이트릭스가 맞지만 이미 정착된 표기법이니 매트릭스로 쓰기로 한다. '워쇼스키'로 표기되는 감독들의 성도 사실은 '워차우스키'로 발음된다)'의 감독은 그냥 the Wachowskis(워쇼스키들)로 부르게 되었지만, 1999년에 첫 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이들은 로렌스 워쇼스키, 앤드류 워쇼스키였고 그냥 '워쇼스키 형제(Wachowski brothers)'라고 불렸다. 이후 이들은 각각 2010년, 2016년에 성확정 수술을 받고 라나와 릴리로 이름을 바꿨다. 관객들은 이 두 감독이 트랜스젠더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놀랐고, 이 사실이 언론에서 큰 화제가 되었지만, 그 사실 때문에 이 영화를 다르게 해석하지는 않았다. 이 영화가 젠더 정체성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분명하게 다른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다. 1999년에 그 영화를 처음 접한 트랜스젠더 십 대 아이들은 이 영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이야기임을 바로 '알아봤다'고 한다. 두 명의 감독이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기 전에 만든 영화였고, 아무도 그들의 젠더 정체성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는 관객은 있었던 거다. 어떤 대목이었을까?

가령 스미스 요원의 이 대사가 그렇다. "앤더슨 씨, 당신은 두 개의 삶을 살고 있소(Mr. Anderson, it seems that you've been living two lives)." 십 대가 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젠더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트렌스젠더 아이들에게 이 말은 아주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평범한 직원으로 일하는 앤더슨이 진정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네오'로 행동하는 곳은 온라인이다.

당시 트랜스젠더 아이들이 오프라인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관심사를 마음 놓고 밝힐 수 있었던 곳은 인터넷이었고,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지금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부족하지만 1999년에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몸에 관해, 성확정 수술에 관해 알 수 있는 곳은 인터넷이 유일했으니, 앤더슨/네오 캐릭터에 공감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가상 세계라고 생각했던 곳이 진짜 세계이고, 자신이 진짜라고 배운 곳은 가짜 세상이라는 메시지는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몸과 스스로 느끼는 젠더가 충돌하며 혼란을 겪는 트랜스젠더 아이들에게 후자가 진정한 자아임을 인정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런 대사도 있다. 앤더슨/네오에게 진정한 세상이 어느 쪽인지 알려주는 모피어스가 한 말이다. "당신은 알고 있지만 설명하지 못하죠. 하지만 당신은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뭔가 잘 맞지 않는 게 있다는 걸 평생 느껴왔습니다. 당신은 그게 뭔지 모르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하지만 마치 작은 가시처럼 당신 생각에 들어간 그걸 꺼내지 못해 미치겠죠 (What you know you can't explain, but you feel it. You've felt it your entire life, that there's something wrong with the world. You don't know what it is, but it's there, like a splinter in your mind, driving you mad)."

십 대 시절에 이 영화를 본 칼리스타 터미니는 이 대사에 크게 공감했다고 한다. 세상이 뭔가 틀린 것 같고, 항상 그렇게 느꼈는데 그게 정확하게 뭔지 몰라 답답했는데 모피어스가 정확하게 자신의 심정을 짚어낸 것이다. 이 영화를 볼 때만 해도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도록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십 대 트랜스젠더 아이들이 이 영화를 자신의 이야기로 이해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9년 온라인 매체 복스(Vox)에 실린 에밀리 밴더워프(Emily VanDerWerff)의 기사다. 본인이 트랜스젠더인 밴더워프는 트랜스젠더들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바로 에그(egg)다.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 깨닫지 못한 트랜스젠더를 가리키는 표현인 에그/알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깨진다."

'매트릭스'를 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 위의 장면은 네오가 태어난 후부터 사육되던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이다. 트랜스젠더의 내러티브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만 이를 모르는 다른 관객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감독의 의도

감독들(워쇼스키 자매)은 이걸 어느 정도나 의도했을까? 그들은 이 영화를 트랜스젠더의 영화로 만들려던 게 아니었고, 자신들의 '트랜스젠더성(transgenderness)'을 특별히 의식하면서 만든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느끼고 겪은 것들이 영화적 상상력의 근간으로 녹아들어 간 것이다. 그럼 왜 약간의 힌트라도 주지 않았을까?

감독들이 시도하지 않은 게 아니다. 영화 속 조연 중에 스위치(Switch)라는 인물이 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름에서 깨달았겠지만, 스위치는 원래 트랜스젠더 캐릭터였다고 한다. 진짜 세상에서는 남성이지만 가상 세계(=매트릭스) 내에서는 여성으로 등장하도록 고안된 인물이다. 하지만 1999년만 해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결국 양쪽 세상에서 모두 여성으로 나온다. (다만 짧은 머리의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차 안에서 네오에게 총을 겨누는 인물이 스위치 

그런데도 불구하고 트랜스젠더 관객들은 이 영화 속 '트랜스 내러티브'를 알아봤고, 감독들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기뻤다고 한다. 애초에 그런 의도를 갖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세상, 특히 기업(영화사)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감독 중 하나인 릴리 워쇼스키가 2020년에 넷플릭스 필름 클럽에서 했던 짧은 문답 형식의 인터뷰(아래 영상)는 꼭 한 번 볼 만하다.

위의 인터뷰에서 워쇼스키는 영화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공공의 영역(public art form)에 속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어떤 종류의 예술도 작가가 세상에 내놓으면서 풀어주는(letting go) 프로세스를 거치게 된다"라면서, 그렇게 공개된 작품은 대중의 대화 속에 들어가면서 일종의 진화를 겪는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예술작품을 비선형적(non-linear)인 방법으로 소화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법, 새로운 시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데, 자신은 그걸 바람직하게 생각한단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를 일삼는 남성우월주의 극우세력이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 약과 파란 약의 비유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복스의 기자 밴더워프에 따르면 그들은 (허위의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빨간 약을 먹으면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들에게만 유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믿는다.

릴리 워쇼스키는 2016년의 한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커밍아웃 후) 우리의 작품들을 트랜스적인 시각에서 다시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예술은 절대 (완성된 채로) 멈춰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좋은 신호(reminder)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작품에서 정체성과 변화(transformation, 변신)가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아이디어의 가장 근본에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