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미국 대선이 치러지기 하루 전, 팟캐스트의 황제 조 로건이 트럼프에 대한 공개 지지를 밝혔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트럼프의 승리를 짐작했던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짐작했던 건 로건이 과거에 승자를 맞췄거나, 그가 지지를 밝힌 후보가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 로건은 2020년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를 공개 지지했다. 앤드류 마란츠 기자는 그 사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민주당에서는 좌파의 조 로건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좌파 쪽에도 조 로건이 있었다. 바로 조 로건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출발한 로건은 이런저런 코미디나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고, UFC(종합격투기)에도 관여하면서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팬덤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2009년에 팟캐스트를 시작했고,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봄,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와 2억 달러의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세계 최고의 팟캐스터"로 불리게 되었다.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팟캐스트답게 UFC는 물론이고, 마약과 섹스 등의 주제가 자주 등장했지만, 특별한 정치적 색깔이 없었다. 그의 팟캐스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던 2010년대의 로건을 굳이 정치적으로 분류하자면 진보, 혹은 민주당 지지자에 가까웠다. 그랬던 그가 2024년에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미국의 이대남이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원인일까, 아니면 결과일까?

트럼프가 출연한 조 로건의 팟캐스트 'Joe Rogan Experience'

앤드류 마란츠 기자는 뉴요커 기사에서 미국의 젊은 백인 남성들이 겪는 문제를 소개한 책 몇 권을 소개한다. 경제학자인 앤 케이스(Anne Case)와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2015년에 내놓은 책 'Deaths of Despair(좌절로 인한 죽음)'은 대학교 학위가 없는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아편계 마약과 술, 자살로 인한 사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유를 다뤘고, 지금은 부통령이 된 J.D. 밴스의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는 잘 알려진 것처럼 애팔래치아 지역에 사는 백인들의 좌절을 자전적으로 쓴 책이다. 저널리스트인 해나 로진(Hanna Rosin)이 쓴 'The End of Men(남성의 종말)'의 부제는 'And the Rise of Women(그리고 여성의 부상浮上)'이다. 21세기 남성은 부모 세대의 남성이나 또래의 여성보다 학교 성적이 나쁘고, 대학을 중퇴할 가능성이 높으며, 직장에서도 뒤처지고, 마약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높다는 게 이 책의 설명이다.

이런 책들에서 설명하는 미국의 젊은 백인 남성들이 좌절하는 이유가 트럼프가 그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을 얼마나 정당화할 수 있을까?

'Of Boys and Men (소년과 남성)'을 쓴 브루킹스 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즈(Richard Reeves)는 공화당이 길잃은 젊은 남성들을 이용했고, 그들의 여성혐오를 여성의 권리를 빼앗는 데 사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하지만, 민주당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진보세력은 남성성(masculinity) 자체를 해로운 것으로 공격하면서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라는 딱지를 함부로 남발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령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또래 여자아이들의 매력도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일은 미성숙하고, 나쁜 행동이지만, 그게 세계적인 뉴스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잘못은 적절하게 야단치고 고쳐야 하는데, 진보 쪽에서는 그런 남학생들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몰아붙이고, 보수 쪽에서는 "너희들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며 감싸면서 진보는 젊은 남성을 놓쳤고, 보수는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부추겼다. "민주당은 '남성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대신, '남성들이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는 게 리브즈의 주장이다.

2010년대 이후로 미국 내 젊은 남성의 좌절을 다룬 책들
이미지 출처: Amazon

현재 미국의 패러소셜미디어를 살피는 마란츠의 기사는 트위치에서 젊은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진보적 성향의 인플루언서 하산 파이커(Hasan Piker)를 취재하면서 시작한다. 파이커는 어떤 면에서 전형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지만 (이스라엘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고, 침대 옆에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꽂혀있다), 일반적인 미국의 20, 30대와 문화적인 공감대가 강하다. 그런 파이커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리처드 리브즈의 지적과 아주 흡사하다.

"많은 미국인이 그렇지만 특히 젊은 남성들은 점점 더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갈 학비도 없고, 월세를 낼 돈도 없고, 데이트를 할 능력도, 안정된 미래에 대한 꿈도 없어요. 우익에서는 그들에게 '너희들은 화가 나는 게 당연해. 이 모든 문제가 이민자들 때문에 생긴 거고, 트랜스젠더가 여자팀에서 경기해서 생긴 거야'라고 말하죠. 그런데 민주당에서는 '네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 입 닥쳐'라고 말하죠."

그럼 하산 파이커가 청취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 "화가 나면 화를 내도 돼.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불법 이민자가 아냐. 분노를 엉뚱한 데로 돌리지는 마."

진보적 성향의 인플루언서 하산 파이커
이미지 출처: NBC News

문제는 이와 같은 구도에서 "남성-희생자(man-victim)의 수호성인" 트럼프가 그들의 표를 긁어모으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그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저항과 반문화(counterculture)는 전통적으로 리버럴의 상징이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21세기에 진보적인 사람들은 제도(institution)과 민주주의 전통을 "지키는(保守)" 쪽에 서게 되었고,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젊은 남성들이 현재의 체제를 흔들고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2024년에 트럼프를 지지한 조 로건 같은 사람이 2020년에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구분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트럼프와 샌더스가 둘 다 미국 사회의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두 선택은 모순이 아니다.

정부에 대한 저항과 반문화는 전통적으로 진보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남성 청취자 중심의 패러소셜미디어에서 중요한 건 급진적인 변화만이 아니다. 2010년대 라이브로 진행되는 트위치나 팟캐스트 커뮤니티에서 유행한 영어 단어에 'hang(행)'이라는 게 있다. 이 단어는 친구들끼리 가볍게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는 'hang out(행아웃)'이라는 표현에서 왔다. 이 문화에서는 팟캐스트에서 손님으로 초대한 사람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a good hang")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그럼 어떤 초대 손님이 좋은 평가를 받을까? 너무 계산하지 않고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 환영받는다. 문제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계산된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예외적인 정치인들이 있다.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서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트럼프, 빌 클린턴 같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인기 정치인들은 어떨까? 피트 부테지지(Pete Buttigieg),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 같은 사람들은 말을 잘하기로 유명하고, 토론에도 능하지만, 너무나 깔끔하고 인간적인 빈틈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멀라 해리스가 패러소셜미디어에 열심히 출연하고, 홍보 영상도 많은 바이럴이 일었지만, 계산되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건 극히 드물다. 그의 러닝메이트였던 팀 월즈(Tim Walz)도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지만, 아슬아슬한 농담이 오가는 매노스피어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는 힘들다.

문제는 그들이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때로는 선을 넘는 지나친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줄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다.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진보는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그들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할 수 있는 정도의 농담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정치인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보수 팟캐스터인 앤드류 슐츠는 "민주당 사람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당위)에 관심이 있지만, 트럼프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하산 파이커도 같은 지적을 한다. "공화당은—민주당과 달리—적어도 젊은 남성들이 화가 나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는 것.

앤드류 슐츠와 대화하는 트럼프

앤드류 슐츠는 자기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나왔을 때 있었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트럼프 대화 중에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 도중에 일어난 암살 시도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 직후 가장 가까운 작은 병원에 가서 총알이 스친 귀를 "시골 의사들(country doctors)"이 치료해 줬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슐츠는 "시골 의사"라는 트럼프의 표현에 웃음을 터뜨렸는데, 트럼프가 그 반응을 눈치채더니 곧바로 "시골 의사"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슐츠가 다시 웃는지 확인했단다.

궁극의 엔터테이너 도널드 트럼프가 "방 안의 분위기"를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