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민족 국가 ②
• 댓글 남기기이 글이 실린 페어러그래프의 논의는 Genesis–Response–Penultimate–Finale 순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후반부에 해당하는 두 편을 우리말로 옮기고 개념 설명을 위해 일부 표현에 링크를 넣었다. 한국어 웹사이트로 가는 링크는 내가, 영어 웹사이트로 가는 링크는 저자가 본문에 넣은 것이다.
"죽어가는 별도 한동안 빛을 발한다"
Tomas Pueyo, Uncharted Territories
아놀드 클링 씨는 내가 아주 존경하는 분이다. 내가 그분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렇다.
클링 씨의 첫 번째 우려는 정부 밖의 금융이다. 이건 아주 미국 중심적인 우려다. 비트코인과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 탈중앙화된 금융)는 해외, 특히 명목화폐(fiat currency)를 신뢰하기 힘들고 금융 시스템이 엉망인 지역에서는 게임체인저다. 그런 지역이 정부와 상관없이 디파이가 꽃이 피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미국이 2조 달러의 자산군(asset class)을 금지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의원들이 비트코인을 갖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가?
클링 씨는 또한 각국의 정부가 초국가적 단체들에 주권을 넘겨줄 것 같지 않다고 했지만,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그리스에 그들의 금융 주권에 관해 물어보라. 중국과 미국에 무역 주권에 관해 물어보고, 브렉싯주의자들에게 EU의 주권에 관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GDPR에 관해 물어보라.
하지만 클링 씨도 초국가적 기구들이 각국 정부의 지지 없이도 그들의 역할 중 일부를 인수할 것 같다는 데는 동의한다. 우리 둘 다 그 부분에 동의한다.
클링 씨는 탈중앙화의 힘을 부정하기 위해 플랫폼 기업들이 가진 규모의 경제를 언급한다. 맞다. 나는 거기에 네트워크 효과도 덧붙이고 싶다. 내 주장이 바로 그거다. 거대 기업들이 정부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 현상 너머에는 사용자들이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가령 인터넷을 사용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사토시 나카모토 같은 사람들이 그렇고, 음모론을 퍼뜨리고 수백만 명을 세뇌하고, 반란을 선동하는 큐어넌(QAnon) 같은 사람들이 그렇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내가 집에서 과학 논문 몇 개를 읽고 쓴 '망치와 댄스(The Hammer and the Dance)' 같은 에세이는 수십 개 국가가 전염병 정책을 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다. 20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런 추세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이 증가하고 (콘텐츠의) 유통이 더 용이해지면 개인은 더 큰 힘을 얻게 된다.
클링 씨는 반동적인(reactionary, 변화에 반대하는) "어딘가(Somewheres)"에 속한 사람들을 걱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1500년대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나간 시대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이후로 민족 국가가 교회를 대체하기 전까지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똑같은 일이 앞으로 올 수십 년 동안 민족 국가와 민족 국가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거다. 죽어가는 별도 한동안 빛을 발한다.
클링 씨와 나는 어떤 나라들에서는 독재(권위주의) 노선을 선택할 것이고 인터넷의 힘을 억제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분기(分岐, bifurcation)에 해당한다. 그런 길을 선택하는 나라들은 미래의 기회를 놓치고 역사의 도랑에 빠지는 거다.
더 중요한 건 클링 씨가 핵심적인 문제, 즉 정보기술은 정치 구조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도 일어났다. 연설, 글쓰기, 인쇄기술, 방송매체 등을 통해서 일어났고 이제 인터넷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민족 국가들은 (1) 인터넷을 통해 모든 사람과 연결된 개인들,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더 넓게 정보를 유통하고, 이 모든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어인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2) 대부분의 국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기업들, 그리고 (3) 국가를 초월한 기구들에 개별 정부의 동의와 상관없이 권력을 빼앗긴다. 그러는 동안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치솟고, 수입은 곤두박질친다.
1500년 당시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 국가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미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싸움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별은 죽어가고 있다. 대부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을 대체할 제도/기관은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중에도 등장하고 있다. 나는 낡은 제도를 지키려고 애쓰는 대신 이렇게 묻고 싶다. 무엇이 민족 국가를 대체할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걸 가장 좋게 만들 수 있을까?
디스토피아의 가능성
Arnold Kling, Cato Institute
현재 시점에서 세계는 강력한 민족 국가로서의 미국이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토머스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네 금융기관을 신뢰할 수 없고 그런 이유로 디지털 화폐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들은 달러에 의존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디지털 화폐로 인한 부(富)는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양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년 미국의 부동산을 사는 데 쓰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미국이 금융의 안전지대라는 평판을 잃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부가 관리를 잘못한 결과일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인플레이션이 가장 분명한 위협이고, 장기적으로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채무를 감당할 재원의 부족이 정치인들이 그런 사회보장 프로그램과 국채(공채) 사이에 어느 쪽의 채무를 불이행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미국에 그런 재정적 위기가 닥치지 않는다면 국민의 대다수는 자기 자산의 상당량을 달러화에서 디지털 자산으로 옮길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디지털 자산으로의 이동이) 수반하는 불확실성은 그렇게 해서 얻어질 이익보다 더 크다.
시선을 금융에서 실물(material)로 옮겨보자. 미국은 재화가 전 세계로 안전하게 운반될 수 있는 "세계 질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은 에너지, 혹은 식량을 (어떤 경우에는 둘 다를) 수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이 공해(公海)상의 안전을 담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은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내려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렇게 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는 홉스(Hobbes)의 생각과 비슷한 무질서다.
전통적인 민족 국가들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충격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에 관한 토머스의 주장은 대부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설명이 위안을 준다는 얘기는 아니다.
많은 민족 국가들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가? 그렇다. 인터넷이 개인과 기업들이 정부를 우회하기 쉽게 해주는가? 그렇다. 미국의 기관들이 쇠퇴일로에 있고, 따라서 다음 10년 동안 미국이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치게 될까? 그렇게 될 수도 있다(Perhaps).
그렇기 때문에 토머스 푸에요 같은 사람들이 최선의 세계 질서를 설계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보수적인 사람은 질문을 이렇게 뒤집어서 던져본다. 어떤 디스토피아적인 시나리오가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가?
테크놀로지는 국가들을 약화시켜서 (현행)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 결과 조직범죄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도 있다. 세계의 일부는 이미 그런 상황에 처했다.
반대쪽 극단에는 테크놀로지가 독재자들에게 막강한 감시의 도구를 제공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럴 경우 아무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만약 정말로 민족 국가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는 새로운(대안적인) 형태의 정부, 새로운 협력 방법, 그리고 다양한 기관들이 탄생하는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위협도 등장한다. 내가 아는 한 그 위협이 (기회보다)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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