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민족 국가의 시대가 저물고 국가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라는 말은 20세기에도 익히 들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소셜미디어가 국경을 허물고 소수의 테크기업들이 인터넷을 점령하고 각국의 정부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민족 국가에 미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일부 기업들이 앞장서서 홍보하고 있는 메타버스가 실현되고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될 경우 궁극적으로 지리적 경계에 기반한 개별 국가의 정부가 지금 수준의 통제권을 계속 유지할 거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특정 이슈에 관한 찬반 의견을 함께 게재하는 페어러그래프(Pairagraph)에 바로 이 이슈가 등장했다. 서브스택에서 '언차티트 테리토리'를 운영하는 토머스 푸에요와 케이토 인스티튜트의 아놀드 클링이 민족 국가 약화론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둘 다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주장들이라 여기에 소개한다. (오늘은 현재 올라온 네 편의 글 중 첫 두 편을 소개하고 이어지는 다른 두 편은 내일 업로드할 예정이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은 민족 국가를 약화시킨다"

Tomas Pueyo, Uncharted Territories

인터넷은 21세기를 지나면서 민족 국가(nation-states)를 약화시킬 것이다.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일어났었다.

가톨릭교회는 1천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유럽을 지배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정보였다. 유럽 전역에 존재하던 요원들(agents, 즉 성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이 독점한 국제언어인 라틴어를 통해 교육과 책, 그리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 독점이 1500년 이전에 나타난 수십 개의 원시적 프로테스탄트 운동들(proto-protestant movements)을 억눌렀다.

이를 끝낸 것은 인쇄기술이다. 갑자기 콘텐츠의 가격은 낮아졌고 양은 늘어났으며, 각 지역의 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해졌다. 정보의 독점이 끝난 것이다. 인쇄기술이 확산되는 순간 마르틴 루터의 지휘하에 진정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가톨릭교회(의 지배)를 끝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은 또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들을 탄생시켰다. 각 문화의 중심지에서 인쇄된 언어를 사람들이 배웠기 때문이다.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공유했고, 연대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민족(nations)과 국가(states) 사이의 공존이 나타났다. 민족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서로를 위해 희생할 용의가 있는 시민들을 통해 국가를 강화했다. 국가는 국가(國歌)와 국기, 교육과 방송, 그리고 게이트키퍼(gatekeepers, 국경수비대와 같은 물리적인 게이트키퍼 외에도 국적 관리와 같은 제도가 이 역할을 했을 거다–옮긴이)를 통해 민족을 강화했다. 그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정보를 통제했다.

새로운 정보 네트워크인 인터넷이 이 모든 것들을 죽였다. 국가는 새로운 (대안) 플레이어들에게 권력을 내주게 되었다.

1. 가치가 수천조 원으로 성장한 디지털 기업들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한때 국가가 통제했던 지역 기업들을 무너뜨린다. 소셜네트워크가 관여의 규칙(rules of engagement, "교전수칙")을 지배하고 그들의 원칙을 위협하는 메가폰은 꺼버린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통령도 포함된다.

2. 우리가 당면하게 되는 문제들이 국제화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초국가적인(supra-national) 단체들이 커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UN과 EU부터 WHO(세계보건기구), WTO(세계무역기구), IMF(국제통화기금), WB(세계은행)를 비롯한 국제 협력 기구들이 개별 국가의 주권을 흡수한다.

3. 블록체인의 기술과 철학이 이끄는 탈중앙화(decentralization)가 금융산업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통해 운영되는 국가의 게이트키퍼들을 없앤다.

푸에요의 서브스택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는 사이, 국가들은 수익(income, 소득)을 잃는다. 자산이 디지털화되면서 기업과 자산가, 노동자들은 점점 더 이동성이 커지고, 가장 비용을 적게 지불할 수 있는 사법권(jurisdiction)을 찾아간다. 이는 기업들이 지브롤터(Gibraltar)로 회사를 설립하고 암호화폐 갑부들이 푸에르토리코에 정착하는 것과 같다. 세금에 굶주린 국가들은 원격근무를 하는 부유한 노동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율을 낮추는 입찰 전쟁에 뛰어든다.

자동화는 이동성이 높은 억만장자들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세금을 걷기 힘든 저숙련(low-skilled), 저임금, 불완전고용 노동자들을 창출한다.

출산율이 급감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수당이 국고를 바닥내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약속을 무효화 시킨다.

인터넷은 영어를 국제어(lingua franca,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쓰이는 공통언어)로 만든다. 인류는 생각을 서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가르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대안 정체성이 등장한다. 이 대안 정체성은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 근거한다. 기후 변화, 암호화폐,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대안 우파 같은 것들이 국가보다 더 강력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문제는 민족 국가들이 권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가 아니라, 누가 그들을 대체할 것이냐이다.


"가능하지만 필연적인 미래는 아니다"

Arnold Kling, Cato Institute

민족 국가는 인터넷 시대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지만 불가피한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특히 금융 부문이 국가에서 분리된다는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다. 나는 공적 금융 부문은 정부와 가깝다는 사실을 익히 보아왔다. 정부는 은행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높여준다. 은행은 그 대가로 정부의 규제를 받아들이고, 그렇게 수용한 규제는 은행이 국채(government securities)를 보유할 것임을 보장해준다.

금융기관이 정부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게 싫다면 그 대안은 범죄조직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정부가 규제하는 은행을 선호한다.

나는 푸에요씨가 언급한 UN, WHO 같은 세계 정부 기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나는 개별 국가의 정부가 초국가조직의 관료들에게 권한을 이양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초국가조직의 관료들이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된다고 해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일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특히 국제 표준과 관련한–초국가적인 기구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지만 각국 정부가 이를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이 사회의 탈중앙화를 이끌 것이라고 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1995년만 해도 나는 소수의 거대기업들이 주식시장과 인터넷을 지배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인터넷은 개인용 컴퓨터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권한을 부여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알고보니 플랫폼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했고, 그것이 (개인에 대한 권한 부여보다) 더 중요했다.

데이비드 굿하트, "어디나 vs. 어딘가"

데이비드 굿하트(David Goodhart)는 "어디나(anywheres)"와 "어딘가(somewheres)" 사이의 구분을 처음 만들어냈다. "어디나"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코스모폴리탄(범세계적) 전문 직군으로 테크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전 세계 도시에 편하게 정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어딘가"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을 자신의 출생지에서 반경 몇 마일 내를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어딘가"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 정서적 애착이 있지만, "어디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어디나"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증가가 국가를 약화시키는 것 같다는 푸에요씨의 말은 맞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오는 백래시(backlash)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며, 테크놀로지를 통제에 사용하려는 국가들의 확고한 태도 역시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거버넌스의 문제들이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의 콘텐츠 관리(moderation, 조정) 문제를 생각해보라. 어쩌면 현재의 혼란이 정리되고 난 후 대부분의 거버넌스는 사기업(private entities)에 의해 이뤄지고 탈중앙화도 큰 몫을 차지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이 그렇듯 민족 국가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해지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민족 국가의 중요성이 특별히 더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지금과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