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 대법관 ⑤
• 댓글 2개 보기"더 이상의 수터는 없다"고 외친 공화당은 색깔이 분명한 대법관 후보를 골랐다. 현재 연방 대법원에서 가장 꾸준하게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새뮤얼 알리토(Samuel Alito)가 그 사람이다. 그런 보수적인 판사라면 로버트 보크 판사와 비슷한 자세로 인사청문회에 임했을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가 청문회 모범사례로 삼은 것은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이었다.
알리토는 임신 중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그건 선례구속 원칙(Stare Decisis)의 문제"라고 대답했다.
알리토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공화당이 밀었던 보수 대법관 후보 닐 고서치(Neil Gorsuch)도 인사 청문회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고 "선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답했고,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도 마치 짜고 나온 것처럼 "대법원이 내놓은 중요한 선례"를 이야기했다.
공화당 사람들은 데이비드 수터가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렸지만, 그의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은 듯했다. 수터의 재판연구원이었던 커미트 루즈벨트(Kermit Roosevelt III)는 수터의 청문회가 이후에 등장한 대법관 후보들의 모델이 되었다고 말한다. 수터가 청문회에서 한 발언은 겸손하고 상식적인 중도 후보자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재 심각한 윤리 위반 논란에 휩싸인 보수 대법관 클래런스 토머스(Clarence Thomas), 트럼프가 임명을 강행하면서 자격 논란을 불러온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대법관도 여성의 임신 중지와 관련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들은 아무런 어젠다가 없으며,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법원이 보수 우위로 돌아서는 순간 일제히 나서서 49년 된 판결을 뒤집었다. 공화당과 보수 기독교인들이 수십 년 동안 준비해온 작업이 완성된 것이다.
루즈벨트는 이 보수 판사들이 청문회 때 마음에 없는 말(혹은 거짓말)을 한 것이고, 수터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수터를 추천했다가 후회한 공화당의 존 스누누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대법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먼저 깨달은 것은 민주당 사람들이죠. 공화당은 그 중요성을 뒤늦게 알게 되고 훨씬 더 공격적으로 보수 대법관 임명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여해서 의회 인준을 얻어내는 데 총력을 다했습니다. 페더럴리스트 소사이어티(Federalist Society) 같은 단체가 만들어져서 트럼프가 대법원에 넣을 보수 판사의 리스트를 만들어 준 게 그렇죠."
데이비드 수터는 대법관으로 일하는 내내 보수층의 기대를 벗어나는 판결을 했고, 공화당을 실망시켰다. 보수층이 싫어하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를 합헌이라고 판결했고, 공화당에서 없애려고 하는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 1960년대 만들어진 대표적인 민권법으로, 유색인종의 투표를 막기 위한 관행을 없애는 데 초점이 있다)도 합헌으로 지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법원이 내린 부시 대 고어(Bush v. Gore) 판결에 반대하는 통렬한 소수의견을 썼지만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 고어 사건은 2000년 대선 때 대법원이 개입해 정치적 결정을 내린 사례다. 이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가 민주당 후보 앨 고어를 상대로 전국 득표수에선 패배했으나, 선거인단에서 5표 차로 당선되었다. 하지만 승부를 가른 플로리다에서 부시는 단 537표 앞섰고, 투표용지의 문제도 불거져 수작업 재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연방 대법원이 재검표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수터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두고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법원이 정치적인 결정을 내린 것에 실망한 수터가 사임을 고려했다거나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실망은 대법관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가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그의 재판연구원을 지내고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피터 루빈은 수터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커미트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한다. "대법원이 부시 대 고어 판결로 수터를 화나게 한 것은 맞아요. 제가 알기로 수터는 대법관들이 정치인들처럼 당파적으로 행동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게 수터 대법관이 가장 단호하게 반대하는 거니까요. 따라서 그 판결이 나온 후에 수터가 대법원에 가졌던 신뢰가 흔들린 것 같아요. 'No More Souter(더 이상의 수터는 없다)'라는 구호는 처음 나왔을 때는 수터 같은 사람을 뽑지 말자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수터같은 대법관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대법관은 수터 같은 분입니다. 요즘 대법원의 판결은 점점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당파적 갈등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하고 있습니다. 수터 대법관은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대법원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지금은 정말 찾기 힘든 분이죠."
헤더 거켄은 이렇게 평가한다. "수터 대법관이 은퇴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슬펐습니다. 연방 대법원이 그렇게 훌륭한 분, 그렇게 위대한 대법관을 잃는다는 게 안타까웠죠. 그분은 분명한 북극성(기준점)을 갖고 있었고, 거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항상 윤리적으로 행동하셨고, 지금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아무리 복잡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셨어요. 그리고 뉴햄프셔주와 미국을 위해 봉사하셨죠. 이제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지내실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위의 내용을 전한 More Perfect의 에피소드는 여기에서 끝난다. 이 에피소드가 방송된 건 지난 7월이었다. 뉴요커는 9월 5일, New Yorker Radio Hour를 통해 이 에피소드를 가져와 소개하면서 방송 끝에 에필로그를 추가했다. More Perfect의 에피소드가 나간 후 진행자인 줄리아 롱고리아(Julia Longoria)가 데이비드 수터에게서 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롱고리아와 제작팀은 위의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수터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수터는–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방송이 나간 후 그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이다. 이를 읽는 롱고리아의 목소리는 흥분한 듯 떨린다.
롱고리아씨께. 제가 답장을 너무나 늦게 드리는 바람에 제가 롱고리아씨에게서 받은 인터뷰 요청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하기 힘들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저는 롱고리아씨의 친절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판사 생활 초기부터 법관은 자신의 결정은 판결문을 통해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판결문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의견을 발표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죠. 그 결과, 저는 법관으로 일하면서 판결문 외에 제 견해를 밝힌 적은 두 번밖에 없습니다.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명예학위를 받으며 연설한 것과 몇 달 전,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에서 졸업생들을 기념하는 명패 제막식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그러니 제가 입을 열지 않는 것에 대해서 롱고리아씨께서 보내신 편지에서 보여주신 것과 같은 너그러운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Yours sincerely,
David So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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