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언 그레인지의 아버지 세실(Cecil)은 1950년대 런던에서 레코드와 가전제품을 파는 일을 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비틀즈의 '헤이 주드(Hey Jude)'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이 루시언이 아버지에 관해 가진 첫 기억이다. 아버지뿐 아니라, 형 나이절(Nigel)도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 일을 했고 시네이드 오코너(Sinéad O'Connor), 워터보이즈(Wterboys) 같은 뮤지션들의 음반을 녹음했다. 십 대의 루시언을 대중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인 사람이 나이절이다.
그는 17살이 되던 해에 학교를 떠났다. 음반 업계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굳이 대학에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14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던 아버지는 루시언의 결정에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루시언의 아들 엘리엇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루시언은 헛소리하지 말라며 아들을 대학에 가게 했다. 대학을 졸업한 엘리엇은 음반 업계에서 자기만의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고, 인기 가수 라이오널 리치의 딸 소피아 리치와 결혼했다.)
그렇게 음반 업계의 바닥에서 시작한 루시언 그레인지는 퍼블리싱(publishing)과 레이블(label)로 구분되는 음반 업계의 전반을 모두 경험하며 차근차근 성장했고, 1982년에는 RCA 레코드의 퍼블리싱을 이끌며 유리드믹스(Eurythmics) 같은 유명한 뮤지션과의 계약을 따냈다. 그는 공원에서 워크맨으로 신인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에 들면 계약금을 들고 가서 계약을 따내는 일이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그렇게 작곡가, 작사가와 함께 일하는 것이야말로 창작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