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업계가 AI의 위협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23년 4월, 자신을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라고 소개한 어느 프로듀서가 AI 프로그램을 사용해 인기 가수 드레이크(Drake)와 위켄드(Weeknd)가 듀엣으로 부른 것처럼 들리는 노래를 발표했을 때다. (이 음악은 각종 플랫폼에 삭제되었지만 여기에서 일부를 들어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며 바이럴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기억하겠지만, 지난해 봄은 전 세계가 챗GPT를 비롯한 생성 AI에 폭발적으로 반응하고 있던 시점이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AI에 감탄하던 중에 이번에는 일반인은 구분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완벽한 노래가 나온 거다. 이렇게 AI가 저작권의 소재가 불분명한 음악, 하지만 충분히 즐길 만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음원, 저작권으로 돈을 버는 음반사들은 존재의 근거를 잃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다.

UMG의 주가는 20% 폭락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잃었던 것을 모두 회복하고 지금 UMG의 주가는 지금 사상 최고 수준에 있다.)

고스트라이터의 프로필 (이미지 출처: Music Week)

그렇게 AI가 유명 가수의 새로운 곡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깨닫기 약 한 달 전, 루시언 그레인지는 유튜브를 새롭게 이끌게 된 닐 모한(Neal Mohan)에게 축하한다고 전화해서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다. AI 이슈였다.

평생 새로운 음악과 가수를 발굴하는 일을 해온 그레인지에게 생성 AI는 새롭게 등장하는 "씬(scene)"이 분명했다. 새로운 음악이 각종 예술, 미디어, 정치와 만나서 주류 문화를 바꾸게 되는 과정 말이다. 그의 생각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생성 AI는 음악을 새로운 영역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게 하나고,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아무나 공짜로 기존 가수의 저작권을 침해하면서 음악을 만들 게 놔둘 수는 없다는 게 다른 하나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다가 사업의 기회를 잃으면 안 되고, AI는 가수와 음반 회사에 새로운 수익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AI가 가져올 변화가 어떤 변화인지 아직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레인지가 경험했던 LP레코드에서 카세트테이프, CD로의 이행처럼 음악을 소비하는 포맷의 변화일 것인지, 아니면 온라인 파일 공유처럼 비즈니스 자체를 위협하는 종류의 변화인지 아직 알 수 없다. AI는 새로운 창작의 도구가 될까, 아니면 새로운 소비의 형태가 될까? AI 도구의 등장은 아티스트의 창작력을 죽이게 될까, 아니면 더 큰 꽃을 피우게 도와줄까? 하지만 그 실체가 분명해질 때까지 손을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테크 플랫폼들은 과거에도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가령 유튜브의 경우 콘텐츠 아이디(Content ID)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자사의 플랫폼에 올라오는 영상 속 음악을 자동으로 파악해 내고 있다. 유튜브에 영상을 만들어 올려 본 사람이라면 배경음악을 넣는 순간, 이를 파악한 유튜브 측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 봤을 거다. 이렇게 허락 없이 음악을 올리는 것을 단속하고, 음악을 올릴 경우 광고 수익을 저작권자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만들어 낸 유튜브는 과거 불법 음원이 난무하던 장소에서 이제 수익을 창출하는 곳으로 변신했다.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일 년 동안 유튜브가 전 세계 콘텐츠 저작권자들에게 벌어준 돈은 60억 달러, 약 8조 원에 달한다.

콘텐트 아이디와 수익 배분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

루시언 그레인지의 특기는 이렇게 앞으로 대세가 될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등장하면 이를 사용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실험을 하되, 실험의 규모를 작게 유지해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핵심은 음반 업계의 의견 개진 없이 기업 혼자 기술을 개발하게 놔두지 않는 데 있다. 구글의 AI 연구소인 딥마인드(DeepMind)에서 리리아(Lyria)라는 생성 AI를 개발하고 있을 때도 그레인지를 초대해서 개발 중인 AI를 설명했다. 그 자리에서 그레인지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1) 음반 기업과 협업을 통해 "책임감 있게" AI를 사용할 것 2) 안전을 위한 프로토콜과 가드레일 개발을 지속할 것 3) 상표권과 저작권 침해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것.

하지만 그는 음반 업계가 권리의 침해 여부에만 몰두해서 테크놀로지를 바라보는 것을 경계한다. "변호사들은 우리의 이익을 지켜주지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살피는 태도로 접근한다면 비즈니스가 겁을 먹게 된다. 나는 겁을 내면서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다."

현재 스포티파이가 사용하는 수익금 배분 방식은 이렇다. 스트리밍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구독료+광고)에서 로열티의 총액을 계산한 후, 이를 스트리밍 시간을 기준으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가 100달러인데, A라는 가수가 전체 스트리밍 시간의 1/10을 차지했다면 10달러를 가져가고, 1/100을 차지한 B는 1달러를 가져가는 식이다. 루시언 그레인지는 스포티파이가 이 모델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이 방식으로 UMG 같은 음반사는 스트리밍 시대에 큰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극소수의 최고 인기 가수들에게 보상이 집중되고, 적지만 꾸준한 팬을 유지한 가수들은 음반을 팔 때보다 수익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미지 출처: The Music Network)

그레인지는 현재의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걸 인정한다. 스포티파이에서 물방울 소리, 청소기 소리 같은 백색 소음이 인기를 끈다고 해서—게다가 이런 사운드는 오래 반복해서 듣는다—가수와 똑같이 수익을 배분하는 것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스포티파이에 사용자를 끌어오는 건 결국 유명 가수들이라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생성 AI 시대에는 인간 아티스트 중심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방법은 테크 기업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찾아야지,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가서 판결을 통해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랬다가는 재판의 결과와 상관없이 게임은 테크 기업의 승리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오는 게 뭔지 못 보는 상황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항상 음악에 이득이 되어왔습니다. 악보, 직립형 피아노, 미국의 CBS 같은 거대한 라디오 네트워크, 1980년대 신디사이저... 나오는 기술마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구글과 같은 기업이 큰 투자를 하고 새로운 제품과 도구를 만든다면 음반 업계를 그 기술을 반기는 최고의 호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그레인지의 기대를 보여주는 예가 있다. UMG는 유튜브와 함께 AI를 사용한 "아티스트 인큐베이터"를 만들었다. 작곡가, 가수, 프로듀터, 저작권협회 등이 의견을 개진하고 구글이 이를 반영한 결과로 탄생한 일종의 실험실이다. 이를 테스트해 본 사람들 중에 유명한 프로듀서 돈 워스(Don Was)가 있다. 그는 구글의 AI 리리아에 자기가 과거에 함께 일했던 유명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프롬프트로 입력하면서 "돈 워스의 프로듀싱 스타일로" 곡을 만들라고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곡은 충격적이었다. 워스는 "감탄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자기가 만들었어도 그렇게 잘 만들지 못했을 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이걸 사용하면 최고의 컨디션에 있는 나 자신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AI 시대의 창작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