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월즈에 관한 이야기는 두 편으로 끝내려고 계획했었지만, 두 글을 마친 후에 월즈에 관한 옛날 기사 한 편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기사가 갑자기 "발굴"되어 온라인에 퍼지게 된 건 월즈가 미국의 부통령 후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선출직 고위 공직에 출마하면 누구나 과거의 기록이 드러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유권자들에게—대개의 경우에는—좋은 일이다. 그런데 뉴욕타임즈가 2008년에 발행한 이 글이 눈길을 끈 건, 정치면이 아니라 교육면에 실린 기사이기 때문이다.

2008년은 팀 월즈가 연방 하원의원의 첫 임기 2년을 마치고 재선을 준비하던 시점이다. (월즈는 공화당이 우세한 보수적인 지역구에서 6선 의원이었고, 그 후에 주지사가 되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미네소타주 밖에서는 아무도 월즈 주지사를 몰랐기 때문에, 2008년에 뉴욕타임즈가 무명의 초선 하원의원에 관심을 가진 건 좀 특이한 일이다. 이 기사를 쓴 새뮤얼 프리드먼(Samuel G. Freedman)은 뉴욕타임즈에 교육과 종교에 관한 기사와 칼럼을 쓰는 사람이고, 지금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저널리즘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이 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먼저 훌륭한 기자와 언론사는 당장 화제가 되는 인물이나 사건만 쫓아가는 게 아니라, 작아 보여도 중요한 인물, 사건을 살펴본다는 것. 그 결과, 이렇게 미래를 예측하거나, 훗날 사용할 중요한 자료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글은 팀 월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 이름 없는 작은 동네에서 교사를 하면서, 단순히 지리적 사실만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 있는 시선을 길러 주려는 선생님의 노력과 재능이 드러난다. 이 글이 어떻게 다시 빛을 보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사람들이 구글 검색을 통해 찾아냈을 수도 있고, 해리스-월즈 선거운동본부에서 준비한 자료를 조금씩 흘렸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게 실제로 2008년에 나온 기사이고, 당시 월즈는 미네소타주 한 선거구 유권자들과 (그가 교사로 일했던) 네브래스카주 고등학교 졸업생들만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링크에서 기사를 읽을 수 있고, 아래 이미지로 읽을 수도 있다. 이미지 아래 이어지는 내용은 이 기사를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요약한 것이다.

(출처: X)

1989년에 대학교(Chadron State College)를 졸업한 팀 월즈는 월드티치(WorldTeach)라는 NGO 프로그램을 통해 1년동안 중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해였다. 중국에서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월즈는 네브라스카주의 얼라이언스(Alliance)라는 인구 9,000명의 소도시(지금은 8,000명으로 줄었다)에 하나밖에 없는 공립 고등학교의 사회과목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세계 지리를 가르쳤다.

월즈의 지리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기사는 그중 한 아이를 이렇게 소개한다. "15살의 트래비스는 자기가 태어난 얼라이언스 경계 밖으로는 거의 나가 본 적이 없었다. 철도 엔지니어의 아들인 트래비스는 학교 마칭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고, 수업이 끝나면 마을에 있는 극장에서 간판의 제목을 바꾸고 영상기를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게 그 학교 아이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네브라스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나마 마칭 밴드에 속한 아이들은 전국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가보기도 했고, 몇몇 아이는 새로 나온 너바나(Nirvana) 앨범 CD를 사기 위해 네 시간을 운전해 가장 가까운 큰 도시인 콜로라도주 덴버까지 운전해서 다녀온 정도다.

2010년의 네브라스카주 얼라이언스 (이미지 출처: Wikipedia)

팀 월즈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아프리카몽골의 악기를 소개하는 교사였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세계 지리라는 게 대부분 각 나라의 수도와 큰 강과 산맥 정도를 가르치는 정도에 그치지만, 그가 가르친 지리와 사회는 달랐다.

가령, 유대인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의 경우, 많은 주의 교과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치게 되어있지만, 월즈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홀로코스트는 순전히 역사 속의 사건으로 다뤄졌고, 인류 역사에 일어난 특이한(anomaly, 예외적인) 사건으로 취급되었다는 게 그의 불만이었다. 학생들은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만 배우고 나면 그걸 자행한 사람들은 괴물이라고 생각하고 만다는 것이다.

세계 지리 수업 시간에 앉아 있던 학생들—레슬링을 하는 브랜든, 치어리더였던 베스, 엘리자베스 여왕에 관한 책만 열심히 읽는 조용한 성격의 라네이를 비롯한 마을 아이들—은 월즈 선생님에게서 집단학살(genocide, 인종학살)이 일어나게 되는 요인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받았다. 독일인들은 왜 유대인을 학살했고, 터키인들은 왜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학살했고, 크메르 루주는 왜 캄보디아인들을 학살하게 되었느냐는 거였다.

사회가 왜 그렇게 사람들을 집단으로 학살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는지를 밝히라는 건, 몇 시간을 운전해야만 도시다운 도시에 갈 수 있을 만큼 외딴 농촌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분명히 생뚱맞은 과제였다. 하지만 팀 월즈는 "홀로코스트 같은 일을 주도한 사람들이 소시오패스이고, 괴물이라고 치부하고 끝내면 우리가 해야 할 일,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끔찍한 일을 하겠다고 결정하게 된 요인을 알기 위해서는 지적인 작업이 필요했고, 그는 아이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기사가 나온 2008년 당시 31살이 된 트래비스(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는 팀 월즈 선생님의 수업을 회상하면서, 학교에서 흔히 보는 수업과 다른 특이한 수업이었던 건 맞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주제가 아니라 "모르는 것들을 탐구할 수 있게 자유를 줬다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이상하고, 지나친 생각이라고 해도 누구나 자기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월즈의 태도였고, 내용을 던져주고 암기하라고 한 다음에 시험을 보는 대신, "자, 이런 견해가 있으니,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봐(Here’s an idea, run with it)"라는 게 그가 학생들에게 준 메시지였다.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왼쪽),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가 남긴 유골들 (이미지: The Intercept, WSJ)

그렇게 해서 얼라이언스의 고등학생들은 눈보라가 휘날리던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9주 동안 경제와 자연 자원, 지역의 민족 구성과 같은 자료를 뒤졌고, 내전과 식민주의(colonialism), 전체주의(totalitarianism)에 관해 읽었다. 지금처럼 쉽게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을 수 없던 시절이라 자료집과 학술 논문을 뒤져야 했다.

학기 말이 되자 월즈 선생님은 기말시험을 대신해서 하나의 문제를 냈다. 유고슬라비아, 콩고,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처럼 당시 심각한 갈등이나 분쟁을 겪고 있던 나라들 중에서 집단학살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어디인지 추론해 보라는 것.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르완다였다. 이 나라는 인종이 후투족과 투치족으로 나뉘어 있고, 이곳을 식민지배했던 벨기에는 투치족에게만 우호적이었고, 과거 부족간 갈등이 폭력으로 비화한 사례들도 있었다는 게 아이들이 제시한 이유였다. 월즈는 그 답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학기가 끝나 여름 방학이 되었고 학생들은 동네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거나 마을 거리를 돌아다니며 전형적인 십 대 아이들처럼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게 1993년이었다.


이듬해인 1994년, 팀 월즈는 르완다의 쥐베날 하뱌리마나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격추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좋게 끝날 것 같지 않네"라는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그때부터 3개월 동안 후투족의 민병대는 투치족과 온건파 후투족 80만 명을 죽이는 학살을 자행했다.

르완다 학살로 최소 50만 명, 인권 단체들에 따르면 80~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3개월)에 벌어진 학살이었다. (이미지 출처: Reuters)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얼라이언스 지역 신문에도 실렸고, 월즈 선생님에게서 세계 지리를 배우고 3학년이 된 그 학생들도 뉴스를 봤다. 자기들이 1년 전에 예측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지만, 완전히 놀랍지는 않았어요. 수업 시간에 토론했던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예측이 맞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죠." "우리가 얼마 전에 이야기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이상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일이었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일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팀 월즈는 아내가 태어난 미네소타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도 교사 생활을 하다가 훗날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가 얼라이언스 고등학교에서 가르친 학생들은 이제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뉴욕으로 흩어져 살고 있고, 치어리더였던 베스는 한동안 폴란드에서 살기도 했단다. 팀 월즈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량 학살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일어날 겁니다."


팀 월즈가 오래 교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기자들이 그가 가르친 옛날 학생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를 하고 있다. 폴리티코의 기자는 월즈가 미네소타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르친—지금은 교사가 된—학생을 만나 인터뷰했다.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는데, 기자가 인터뷰 마지막에 네브래스카주 학생들이 르완다 학살을 예견한 유명한 수업 얘기를 꺼내면서 혹시 그렇게 독특한 수업이나 프로젝트가 미네소타의 고등학교에서도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 주제를 다루면서 정치인, 독재자들의 머리에 들어가서 생각해 보게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열대여섯 살에 불과했고, 워낙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보니 폴 포트(크메르 루주의 지도자)에 대해 찾아 읽어보기도 했죠. 월즈 선생님은 그렇게 선을 넘는 독재자, 정치 지도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게 되는지 이해하게 했어요." 🦦

2014년 연방의회 소위원회에서 활동하던 당시의 팀 월즈 (이미지 출처: The Wall Stre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