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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텔의 고민, 마텔의 선택
오터레터의 독자 여러분 중에 영화 '바비(Barbie)'를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나요? 미국의 완구업체 마텔(Mattel)에서 만든 장난감 캐릭터 바비가 주인공인 실사영화로, 올여름 흥행작 중 하나가 될 거라고들 하죠. 인기 배우 마고 로비(Margot Robbie)가 주인공 바비를 연기합니다.
물론 저는 이 영화의 타깃 오디언스가 아닙니다. 제 딸아이가 어렸을 때도 바비 인형이나 소꿉놀이 장난감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이 문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제가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6개월 전에 나온 영화 예고편(안 보셨다면 꼭 보세요! 아니, 보셨더라도 또 보세요!) 때문이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패러디한 이 예고편은 바비를 영화로 만들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 뻔하지 않냐는(즉, '금발이 너무해' 정도의 줄거리일 거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린 예고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영화들이 예고편 정도는 다 잘 만들죠. 더 중요한 건 작가와 감독이었습니다. 바로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프란시스 하,'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과 그의 파트너(!)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함께 각본을 쓰고 거윅이 감독한 작품입니다. 이 크레딧을 보는 순간, '금발이 너무해' 같은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죠.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배너티페어(Vanity Fair)에서 이 뒷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사실은 내일 오터레터에서 장난감 회사가 실사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 배경을 먼저 알려드리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아 소개합니다.
바비라는 캐릭터로 처음 영화를 계획한 건 2009년이었습니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마텔과 판권 계약을 맺고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인데, 결국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헐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이 "엎어지는" 일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다시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는 마텔이 스튜디오를 바꿔 소니 픽처스와 계약을 했죠.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작가와 영화 '주노'(2007)로 오스카상을 받은 작가까지 불러들여 제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배우는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Amy Schumer)가 맡기로 했었고요.
네, 에이미 슈머가 우리가 아는 "바비 몸매"가 아닌 건 맞습니다. 소니 픽처스가 계획한 건 바비가 몸매 관리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바비 세상에서 쫓겨난다는 스토리였다고 해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줄거리가 대충 짐작되죠? 그런데 이 대본에서는 바비를 머리가 나쁜 여성으로 그렸답니다. 이런 설정에 불만이었던 슈머는 다른 핑계를 대고 프로젝트에서 하차했고, 제작진은 주인공 배우를 다시 물색해서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를 합류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잦은 계획 차질로 제작이 계속 미뤄지다가 소니 픽처스가 마텔사와 계약한 2018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상황을 모르지 않을 마텔은 계약을 연장해 줄 수도 있었는데, 생각을 바꾸고 거절합니다. 그래서 소니 픽처스도 바비 제작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나오는 영화는 세 번째 시도인 셈입니다. 마텔은 왜 생각을 바꿨을까요? 2018년에 새 CEO가 부임하면서 마텔의 비즈니스를 새롭게 정의하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신임 CEO가 이스라엘 출신의 이논 크라이즈(Ynon Kreiz)입니다. 이 사람의 결정은 요즘 콘텐츠, 미디어 산업의 지형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비의 성공 여부는 그 지형 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요. 그런 중요한 순간에 그레타 거윅 감독을 잡은 건 신의 한 수였다고 평가하는데요, 이 과정이 또 재미있습니다. 이건 내일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어제 보내드린 내용입니다.

그럼 오늘의 글을 시작해보죠! 이 글은 뉴요커에서 발행한 'After “Barbie,” Mattel Is Raiding Its Entire Toybox (영화 '바비' 이후, 마텔은 자기네가 가진 장난감 상자를 뒤지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뽑아 설명을 붙인 것입니다.


2019년, 디즈니가 선보인 '알라딘'의 실사 영화는 평이 좋지 않았다. 잘 만든 원작 만화를 굳이 실사판으로 만들어 망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고 (디즈니는 지식재산권의 소유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과거의 히트작들을 실사판으로 제작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 개봉 후에도 특별히 새로울 게 없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좋았다. 1억 8,300만 달러의 예산으로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면서 그해 나온 영화 흥행 수익 9위를 기록했다.

디즈니가 인수해서 이제는 같은 지붕 아래에 있는 픽사(Pixar)가지난 6월에 개봉한 영화 '엘리멘탈(Elemental)'은 그 반대였다. 좋은 평을 받았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픽사에서 나온 가장 인기 없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 극장에서 버티며 조용한 흥행을 노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2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은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 같다.

이 두 영화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가 뭘까? 바로 프랜차이즈 여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잠재적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사전인지(pre-awareness)를 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두 영화의 흥행 여부를 결정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디즈니와 마블이 극장 스크린을 지배하는 2020년대의 극장가에서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세계관, 익숙한 주인공을 가진 영화만 찾는다.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엘리멘탈'을 디즈니가 만들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사전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증명이다.

마텔의 CEO 이논 크라이즈는 2018년에 취임했다. (이미지 출처: Fortune)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마고 로비 주연의 '바비(Barbie)'는 장난감 회사인 마텔(Mattel)이 직접 제작한 영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마텔이 유니버설과 소니를 통해 바비 영화를 만들려고 10년 넘게 애쓰다가 포기하고 직접 만들기로 해서 나오게 된 작품. 마텔이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한 배경에는 2018년에 취임한 이논 크라이즈(Ynon Kreiz)가 있다.

크라이즈는 출발부터 장난감 기업인 마텔이 디즈니에 버금가는 "어린이용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판매량이 계속해서 줄고 있는 (미국 최대의 장난감 매장 Toys R Us가 문을 닫은 것은 이런 추세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마텔의 매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장난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마텔은 "I.P. (intellectual properties, 지식재산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게 디즈니가 만화책을 만들다 파산 위기에 놓인 마블(Marvel)을 인수해서 영화계의 작동 방식을 바꿔놓은 플레이북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헐리우드를 조금이라도 아는 CEO라면 당연한 결론이다. 문제는 마텔이 가야할 방향을 아느냐가 아니라, 그런 엄청난 변신을 해낼 수 있느냐다.  

마텔의 경쟁 기업 해즈브로가 지식재산권을 가진 '트랜스포머' (이미지 출처: Collider)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마텔과 경쟁하는 장난감 기업 해즈브로(Hasbro)다. 해즈브로라는 회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이 회사가 만든 최고의 인기 상품은 잘 안다. 바로 트랜스포머(Transformers). 해즈브로는 디즈니가 마블을 인수하기도 전에 자사의 장난감을 영화화해서 큰 재미를 봤다. 2007년에 나온 이 영화의 성공이 디즈니가 인기가 시들고 있던 마블 인수를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마텔의 장난감 상자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