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내가 2014년에 한국의 한 테크 기업의 사내 뉴스레터에 기고한 기사로, 당시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하던 인기 유튜버 마커스 브라운리를 소개하는 글이다. 따라서 모든 내용은 2014년 시점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사진도 당시 시점이기 때문에 브라운리의 얼굴도 아직 풋풋한 대학생의 얼굴이다.


마커스 브라운리(Marques Brownlee)는 미국 뉴저지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원반 던지기 경기를 즐기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깔끔한 헤어스타일과 말쑥한 차림을 하고 있고, 말에서 뉴저지 억양이나 흑인영어의 액센트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정도 외에는 별로 다를 게 없는 그냥 키 큰 남학생일 뿐이다. 적어도 길거리에서 그를 만났다면 그렇다.

하지만 온라인(유튜브 채널: MKBHD)에서 만나는 브라운리는 전혀 평범하지 않다. 구글의 부사장이었던 빅 군도트라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테크놀로지 리뷰어”라고 극찬한 젊은이. 15살에 첫 동영상을 올린 지 5년 만에 2백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에 있는 대형 테크 블로그들도 따라가기 힘들만큼 철저한 신뢰를 받고 있는 스타. 이것이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는 마커스 브라운리의 모습이다. 그가 자기 방 컴퓨터 앞에서 하는 말 한마디에 세계적인 전자회사들이 울고 웃는다. 그에게 인기와 명성을 가져다 준 리뷰 비디오들은 모두 그의 작은 방 책상 앞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게 제작되는 리뷰가 월스트리트저널의 리뷰보다 그 영향력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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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인터넷과 웹캠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유튜브 시대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유튜버들이 비디오를 올리고 시청자들에게 “내 채널의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라고 호소하지만, 관객들은 무료 비디오의 구독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렇다면 앳된 얼굴의 소년은 어떻게 해냈을까? 그가 5년 만에 ‘세계 최고의 리뷰어’라는 찬사를 받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브라운리의 성공 요인을 통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채 못 되는 유튜브가 대중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방식과 미디어 소비자의 기대치를 어떻게 바꾸어 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1. 유튜브 네이티브

마커스 브라운리가 태어난 1993년은 인터넷이 이미 상용화를 시작한 시점이다. 그가 처음으로 유튜브에 비디오를 업로드한 것은 그가 15살이던 2008년이다. 단순한 웹캠으로 찍었던 그의 비디오들은 어느덧 4K급의 고화질로 바뀌었다. 브라운리는 유튜브와 함께 자라난 1세대 유튜브 네이티브로, 그간 올린 700편의 비디오는 비디오그래퍼로서의 브라운리의 성장만이 아니라, 유튜브의 기술과 화질의 발전을 함께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

유튜브와 함께 자라, 매일매일 유튜브를 호흡하는 그의 세대는 카메라에 대한 친숙도가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다. 미리 써놓은 원고를 읽거나 암기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이야기하듯 편하게 말하는, 매체와 친숙한 세대인 것이다. 시청자들이 30, 40대의 리뷰어들을 ‘평론가’로 인식하는 반면, 브라운리는 ‘친구’ 혹은 ‘동료 소비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움은 그런 유튜브 네이티브들이 가진 큰 이점이다.  

2. 1만 시간의 법칙

브라운리의 비디오들은 총 1억 8천만 뷰를 자랑한다. 하지만,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지난 5년 동안 그가 업로드 한 비디오의 숫자이다(11월 22일 현재 702개). 이는 지난 5년 동안 2, 3일에 비디오를 하나씩 업로드를 했다는 뜻이다.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비틀즈가 다른 가수나 그룹들과 차별되는 이유를 그들의 엄청난 연습량으로 설명하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비틀즈 멤버들은 20살이 될 때까지 1만 시간이 넘는 연습을 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가수들의 평균 연습량인 4천 시간의 두 배가 넘는 양이다).

브라운리가 업로드한 최초의 리뷰 영상 (2009년 1월)
브라운리의 가장 최근 영상 (2022년 7월 12일 기준)

브라운리가 과거에 올린 비디오들을 훑어보면 그의 기술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카메라의 움직임, 조명, 색채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부터 그가 말하는 법, 비디오 편집, 심지어 카메라 앞에 서는 각도까지 모든 요소가 700번의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것이다. 지금도 새로운 아마추어, 프로페셔널 유튜버들이 꾸준히 등장하지만, 그들과 브라운리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연습시간이 존재한다.

3. 트렌드를 읽어내는 타이밍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브라운리를 다룬 기사에서 테크 소비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끄는 내용을 재빠르게 찍어서 올리는 그의 타이밍은 놀라운(uncanny) 수준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의 채널이 유명세를 타게 해 준 LG G플렉스 폰 리뷰에서 브라운리는 그 폰이 가진 “자체 복원”기능을 자세하고 이해하기 쉬운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최고의 리뷰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시의 적절하게 소비자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비디오들은 “바이럴(viral)”이 되어 인터넷에서 퍼지고, 새로운 구독자를 만들어내는 유입 효과를 낳아왔다.

4. “내가 보고 싶은 비디오를 만든다”

브라운리가 인터뷰에서 인기의 비결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빼놓지 않고 하는 대답이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비디오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원칙이면서, 동시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원칙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원칙은 그가 수 십 명의 기자들과 전문적인 스탭을 거느리고 작업하는 대형 테크 블로그들에 맞설 수 있는 중요한 무기이기도 하다.

“내가 보고 싶은 비디오를 만든다”는 말은 그런 기업형 블로그에 고용된 에디터들에게는 사치에 가까울 수도 있다. 양질의 리뷰 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스탭이 필요하지만, 블로그가 커지고, 광고주가 붙고, 회사의 이윤을 유지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면 ‘내가 좋아서’ 만들기보다는 정해놓은 기사의 할당량을 채우는 노동자로 전락을 하게 된다. 이는 CNET, Engadget 같은 회사들의 성장과정에 종종 목격하는 현상이다.

브라운리는 언제까지 리뷰 비디오를 만들고 싶으냐는 질문에, “내가 좋아서 하는 작업”이라며 “유튜브가 없어져서 더 이상 비디오를 업로드 할 수 없으면 비메오(Vimeo)에라도 올리겠다”라고 대답한다. 그런 브라운리에게 ‘내가 좋아서 만든다’는 말은 ‘내가 좋아할 수 없는 비디오를 내놓지 않겠다’는 장인정신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5. 편견 없고 균형 잡힌 시각

개인이 혼자 작업하는 유튜브 리뷰어들이 가장 빠지기 힘든 함정 중 하나가 바로 편견이다. 우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 리뷰어들은 ‘의견’과 ‘편견’을 가르는 선을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다. 게다가 유튜브에서 ‘균형’은 ‘지루함’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언제든지 다른 채널, 다른 비디오로 넘어갈 수 있는 유튜브에서 시청자들을 붙잡아 두려면 개성 있는 시각을,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전달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 제품의 단점을 집어내서 맹렬하게 공격하거나, 찬사에 집중하는 것이 단기간 안에 클릭수를 늘리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브라운리는 자신이 안드로이드 팬임을 숨기지 않는다. 리뷰어가 특정 제품의 선호를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프로들 사이에서는 금기에 가깝지만, 그의 안드로이드 사랑이 애플 제품의 리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적은 없다. 물론 브라운리처럼 특정 제품을 선호하는 이유를 타당하게 밝히면서도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취향과 필요로 하는 기능의 문제임을 잘 설명해내는 리뷰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자기 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녹화를 하는 청소년들에게서 그런 설득력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흔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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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풍부한 전문지식과 철저한 연구

제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팬들이 넘쳐나는 테크 업계에서 철저한 조사와 연구를 하지 않고 리뷰에 임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리뷰어나 블로그들이 도태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혼자 일하면서도 신뢰도 높은 리뷰를 제공하는 브라운리의 작업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브라운리의 모든 비디오가 그런 심층 리뷰들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가벼운 “박스 열기(unboxing)” 비디오나 간단한 신제품 소개도 자주 올라온다. 하지만, 진지한 리뷰에서 특정 제품의 단점을 지적하는 리뷰를 할 경우, 브라운리는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근거를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가 모토롤라의 스마트폰 Moto X의 카메라 소프트웨어에 문제를 제기했던 그의 리뷰이다. 그의 리뷰가 유튜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모토롤라사는 브라운리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어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겠냐”라고 물었고, 그 뒤로 수많은 이메일과 사진을 주고 받으며 브라운리가 지적하는 문제점을 모두 수정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7. 전문가와 초보자를 모두 고려한 리뷰

작년 12월, 모토롤라 모빌리티의 CEO 데니스 우드사이드는 브라운리와 구글 행아웃을 통한 인터뷰에서 자신에게는 13살, 11살짜리 아이들이 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당신의 팬”이라고 이야기한 사실은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대기업들이 왜 이런 어린 리뷰어들에게 공을 들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하지만 그런 어린아이들도 유튜브에 올라오는 리뷰를 챙겨본다는 사실은, 브라운리와 같은 리뷰어들이 초보자와 전문가, 두 집단을 모두 만족시키는 리뷰 비디오를 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과거 뉴욕타임즈에서 오랫동안 테크 칼럼을 썼던 데이비드 포그는 전자에만 집중한 경우에 해당한다. 뉴욕타임즈 독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모든 리뷰를 기술적인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그의 스타일 때문에 그는 독자들의 사랑과 (쉽게 쓴다는 명목으로 독자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한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브라운리의 경우는 하나의 그룹을 선택하는 대신, 전문가 집단과 초보자 집단의 관심사가 겹치는 교집합을 찾아내는 쪽으로 리뷰의 방향을 잡는다. 리뷰의 대부분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 설명하되, 반드시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대목이 있는 경우, 에둘러 피하는 대신 정확하지만 최대한 간결한 설명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브라운리의 리뷰 스타일이다.

8. 놀라운 비주얼

브라운리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카메라맨의 역할, (비디오) 에디터의 역할, 그리고 컬러리스트(colorist)의 역할을 모두 즐기고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침대와 책상이 있는 좁은 방에서 4K 비디오카메라에 제품의 모습을 완벽하게 잡아내는 그의 기술은 그가 단순한 리뷰어의 경지를 넘어, 전문적인 촬영, 편집 지식을 습득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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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제품을 구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 결정에 앞서 제품을 최대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그가 고화질 비디오와 완벽한 조명, 색채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소비자의 욕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9. 정확한 내용전달 능력

자신의 화법을 “뉴스 진행자의 말투와 친구에게 설명하는 말투의 중간쯤”이라고 설명하는 브라운리는 원고를 읽는 대신 중요한 포인트들을 정해놓고, 언제 누가 어떤 제품에 대해서 물어와도 딱 세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연습했다고 말한다.

브라운리의 화법은 화려하지 않다. 그의 말은 간결할 뿐 아니라, 조용하고, 심지어 얼굴의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편이다. 나이 든 유명 리뷰어들이 현란한 말솜씨와 쇼맨쉽을 자랑하는 반면 나이 어린 브라운리는 조용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야기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의 전달 능력은 그 어떤 리뷰어들 보다 뛰어나다. 설명에 빈틈이나 군더더기가 없고, 불필요한 반복이나 강조도 없는 담백한 그의 화법은 정작 제품보다 리뷰어 자신에게 눈길이 더 끌리게 하는 많은 리뷰어들의 과장된 말과 행동에 싫증이 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10.  퍼스낼리티

소셜블레이드의 제나 아놀드는 “유튜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튜버가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컨텐츠보다 퍼스낼리티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헐리우드의 영화배우들과 같은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팬들은 자신들이 보는 채널을 진행하는 유튜버들을 친구 같은 존재로 생각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비디오의 양이다. 관객들이 헐리우드 스타들을 2년에 한 번,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는 반면, 유튜브의 스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비디오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한 번 비디오를 올린다면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포장하거나 감출 수 있지만, 대부분의 유튜브 스타들처럼 아예 카메라 앞에서 살아야 한다면 자신의 참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모토롤라의 헤이즈는 브라운리가 “언제든지 팬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고, 겸손하며, 진지하다”라고 말한다. 유튜브 스타가 되기에 완벽한 퍼스낼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오히려 브라운리 그러한 진지함과 노력을 통해 모든 리뷰어들이 지켜야 할 조건,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미디어 세상에서 대중과 소통을 하는 기준을 새롭게 창조해내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