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홍보 ②
• 댓글 남기기로널드 레이건
'규제 없는 자본주의만이 자유를 가져다준다'라는 프로파간다는 라디오 방송으로만 확산된 게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1981~1989년 재임)의 중요성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모르고 있던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경제 근본주의를 주류(mainstream)의 내러티브로 바꿔놓은 데 있다. 레이건이 젊은 시절에 진행했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로널드 레이건이 정치인이 되기 전에 배우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1950년대에 이르면 레이건의 배우로서의 수명은 거의 끝난 상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레이건은 그렇게 배우 경력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 제네럴일렉트릭 극장(General Electric Theater)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을 맡게 된 이 프로그램은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청율 3위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제네럴일렉트릭 극장은 유명한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당시로서는 좋은 퀄리티의 프로그램이었는데 항상 레이건이 들려주는 교훈적인 말로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정부의 도움 없이 자립하는 굳건한 개인주의 정신에 대한 강조였다.
하지만 레이건의 역할은 단순히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제네럴일렉트릭(기업)을 대표해서 미국 전역에 있는 공장과 학교, 로터리클럽, 라이온스클럽 등을 돌아다니며 TV에서 하던 것처럼 노조에 반대하고, 정부의 개입에 반대하는 시장친화적인 이데올로기를 담은 강의를 했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이전의 레이건은 노조에 찬성하고, 루즈벨트의 경제 정책에 찬성하는 뉴딜 민주당 당원(New Deal Democrat)이었지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아는 노조와 중앙 정부에 반대하는 공화당원으로 바뀌었다.
이런 홍보를 주도한 미국 제조업 협회(NAM)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나오미 오레케스 교수에 따르면 NAM은 미국 의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아직도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강력한 로비를 통해 기후 변화에 대한 사법적 대응에 반대하거나 분쟁광물(conflic minerals)과 관련한 정부의 노력을 차단하고 있다.
분쟁광물이란 분쟁 지역에서 전쟁이나 범죄 행위를 통해 생산된 천연자원을 가리킨다. 많은 경우 아프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광물이고, 특히 콩고 민주 공화국(DRC)에서 채굴되는 광물이 이런 혐의를 받는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는 주말에 오터레터에서 별도의 글로 소개할 예정이다.
거짓 이분법
오케레스 교수에 따르면 이런 홍보는 '규제가 없는 자본주의' 아니면 '중국이나 소련 같은 공산주의 독재'라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위에서 설명한 프로파간다 활동과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가 했던 학술작업은 이런 거짓 이분법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 둘 외에도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하루 8시간 노동, 초과근무 시 수당 지급 등의 다양한 규제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규제 없는 자유시장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고 독재자의 총에 죽어야 한다는 식의 거짓 이분법 주장을 끊임없이 듣고 있다 보니 적절한 선택에 관한 논의조차 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다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독재, 전체주의에 무릎을 꿇지 않고도 중도를 찾았다. 그들은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갖고 있지만 사회 안전망은 미국 보다 든든하고, 노동자에 대한 보호도 철저하며, 환경 보호를 위한 규제도 강하다. 그리고 이런 모든 규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번영한 나라들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보다 더 민주적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여론 조사에서 드러나는 유권자들이 원하는 바가 실제 정책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를 보라. 미국의 정책들은 실제 국민의 대다수가 원하는 바를 반영하지 않는다. 아예 투표권을 억누르는 시도(voter suppression)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거자금에 관한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 다양한 형태의 부패가 발생한다. 하지만 프랑스를 보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기간까지 정해놓고 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국은 사실상 제한이 없고, 따라서 돈을 많이 써야 하는 구조로 되어있다–옮긴이)
'시장의 신화'가 나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정부가 개입하면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오레케스 교수는 하버드 대학에 부임하면서 메사추세츠주에는 아직도 주정부가 개인의 삶에 간섭하는 보모 국가(nanny state)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매사추세츠주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들 중 하나이고, 주민의 교육 수준은 아주 높으며, 다른 주들이 가진 사회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적다. 규제는 효과가 있다. 공교육은 효과가 있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도 이를 교육과 인프라에 투자하면 효과가 있다. 매사추세츠주가 그걸 하고 있다.
국제연합(UN)에서는 국민총생산(GDP)이라는 지표를 보완하기 위해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라는 것을 만들어서 건강과 교육, 수명, 삶의 질 등을 추적, 평가하는데, 매사추세츠는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HDI 지수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코네티컷과 미네소타, 뉴저지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반면 '큰 정부'에 반대하는 미시시피, 웨스트버지니아, 앨라배마, 아칸소, 켄터키, 루이지애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주 등은 이 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세금을 더 걷고, 일을 많이 하는 주 정부를 가진 주의 주민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최하위의 주들은 세율만 낮을 뿐 아니라, 주민 삶의 질도 낮다.
여기에 흥미로운 예외가 하나 있다. 유타주의 경우 공화당이 우세한 주이고, 세금을 적게 걷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번영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레케스 교수에 따르면 유타주의 경우 연방 정부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유타주의 경제적 성장은 실리콘슬로프(Silicon Slopes,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첨단 산업이 모여있는데, 로키산맥의 경사지에 있는 지형적 특징으로 붙인 이름–옮긴이)의 덕을 크게 봤다. 그런데 실리콘슬로프의 중심인 솔트레이크시티는 인터넷의 원형인 아르파넷(ARPAnet)의 네 개의 노드(UCLA, 캘리포니아 대학교 산타바바라, 스탠퍼드 연구소, 유타 대학교) 중 하나를 갖고 있었다. 아르파넷은 미군이 군 통신을 위해 개발한, 미국 정부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즉, 솔트레이크시티는 중앙 정부의 도움으로 상대적으로 일찍 테크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거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솔트레이크 주변은 뛰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매력적인 곳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스키장을 비롯해 야외 활동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곳들이 연방 정부가 소유, 보호하는 땅에 있다. 게다가 유타주가 농업주로 지정되는 바람에 많은 주민들이 농무부를 통해 연방정부의 주택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이런 모든 사례들을 보면 작은 정부가 경제적 번영이나 주민의 건강, 삶의 질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찾기 힘들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를 떠올려보면 정부의 규제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시카고학파로 돌아가 보자. 시카고 대학교의 법학 교수인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는 당시 금융시장의 자율규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유 시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포스너는 원래 정부의 규제를 철폐하고 시장이 스스로 작동하게 놔둬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카고 학파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처럼 경제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도록 정부가 설치해 두었던 '가드레일'을 제거한 결과로 2008년의 경제 위기가 발생했고, 구성원들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공동의 이익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은 항상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스너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용기 있는 책을 썼지만, 시카고학파의 이론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환경, 행복, 자유, 시장 근본주의
게다가 자유 시장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면서 우리가 희생하는 것들이 있다. 먼저 기후 변화를 보자.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닉 스턴(Nick Stern)은 기후 변화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크고 광범위한 시장의 실패라고 했다. 석유와 가스는 합법적인 생산물이었고, 사람들은 이를 합법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외부 비용을 안겨주었다. 화석연료를 사용한 사람, 사용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발생한 비용이다. 우리는 현재 기후 변화로 발생하는 수조 달러의 피해를 예상하고 있다.
이 비용을 누가 지불하는가? 우리 모두가 지불하게 된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도, 파키스탄에 사는 사람도 지불해야 한다. 이게 시장의 실패인 이유는 이 제품을 사용할 때 생기는 진정한 비용을 시장이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복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바, 그리고 많은 증거들이 보여주고 있는바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행복하지 않다(very unhappy).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 나라들은 중요한 사회 안전망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거나 실직할 경우 무슨 일이 닥칠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소득의 분배가 잘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에서 보는 것과 같은 울분과 불만을 발생시키기 않는다.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의료보험도 잘 갖춰져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가진 기관에 대한 신뢰다. 미국인들은 왜 기관(institution, 제도)을 신뢰하지 않을까? 지난 1백 년 동안 미국인들은 모든 기관, 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부를 불신하라는 오랜 프로파간다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유의 문제가 있다. 미국은 19세기에도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은 20세기에도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1918년까지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다. 미국은 지금도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수백만 명이 감옥에 갇혀 있다. 자유는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고, 정치 기관과 시민 단체를 사용해서 지켜내는 것이다. 그런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기업인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는 주장이 거짓임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따라서 그렇게 지키려는 게 누구의 자유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시장 근본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자유,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자기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다고 얘기한다면 아무도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를 (우리 모두의) 정치적인 자유를 지키는 문제로 포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에게 속아서 이용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은 시장 근본주의 내러티브에 이용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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