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엘리슨(Mark Ellison)에 관해서는 작년 여름 오터레터를 통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뉴욕 목수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그 글은 당시 엘리슨이 책을 출간한 후에 언론과 인터뷰를 한 내용을 옮긴 것이었다. 그 책, 'Building: A Carpenter's Notes on Life & the Art of Good Work'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터뷰에서 들은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는 나이 든—그리고 성공한—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털어놓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억은 왜곡되었어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비록 모두가 사실이어도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다. 무모한 시도나 실수가 용인되던 시절을 살면서 얻어낸 기회를 잘 활용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 그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의미 외에 무슨 특별한 도움이 될까? 하지만 그런 삶을 산 사람 중에도 예외는 있다. 자기가 살아온 삶을 합리화하거나, 문화적 영웅으로 등극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 솔직하고 겸손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마크 엘리슨이 그런 사람에 속한다.

'뉴욕 목수의 생각'을 아직 읽어 보지 않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엘리슨은 뉴욕의 고급 주택을 짓거나 개조(리노베이션)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뉴욕에서 그 일을 하면서 "20년 이상 버티는 회사는 열 군데 남짓"이고, 그런 기업에 근무하며 프로젝트 매니저와 감독 일을 하면서 10년 이상 근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세계적인 부자들이 모인 뉴욕에서 액수에 신경 쓰지 않고 최고의 인테리어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선택지가 많지 않다. 엘리슨이 그런 부자들이 찾는 마스터 목수(master carpenter), 즉 목공의 달인이다.

엘리슨이 만들어 낸 인테리어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우리가 읽는 책들은 대개 글을 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졌어도 이런저런 원고를 기고했거나, 전문적인 작가들이 쓰는 게 우리가 서점에서 접하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엘리슨의 책, '완벽에 관하여: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뉴욕 목수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책이다. 뉴욕의 공사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한 장인이 자기 경험을—때로는 깜짝 놀랄 만큼—솔직하게 적은 책이다.

몇 년 전,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을 둘러 볼 기회가 생겼다. 한국 근대 건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오래된 건물의 내부를 모두 뜯어 고쳐 새로운 사무실로 만들고 있었는데, 완공 후에 그 건물에 입주하게 된 우리가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현장 책임자의 배려였다. 나는 그곳에 다녀온 후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가 1월이었는데, 건물의 뼈대를 빼고는 거의 다 뜯어낸 공사장이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난방이 되지 않았고,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둘러보는데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인부와 설계 책임자는 그런 장소에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공사장은 춥고, 덥고, 위험하다. 마크 엘리슨이 하는 일이 그거다. 지금은 뉴욕의 부자들이 고용하기 위해 줄을 선다고 하지만, 뉴욕 파크 애비뉴의 최고급 아파트 주민이 작업 중인 그를 마주치면 더러운 게 묻을까 봐 피할, 작업복을 입고 공사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는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관심을 끄는 이야기는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도 부자들이 많이 있고, 천문학적인 돈을 써서 집을 만들고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하지만, 대개는 비싼 설계자, 건축가를 만나 가장 비싼 가구와 재료를 동원해서 집안을 꾸미는 정도다. 하지만 마크 엘리슨이 상대하는 부자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부자들이 아니다. 수억 원이 들어간 인테리어가 완성되었는데 그걸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 뜯어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왕이나 귀족을 떠올리는 게 빠르다. 그들이 자기 성을 꾸밀 때 비싼 가구점을 찾거나, 유명한 설계자의 샘플집을 찾았을까?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없는 디자인을 원했다.

맨해튼에 사는 최고의 부자들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원하는 건 단순히 예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아니라, 집에 찾아온 손님의 입이 딱 벌어지는 인테리어, 손님이 다른 곳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테리어다. 문제는 그런 인테리어를 설계할 수 있는 설계사는 많아도, 실현할 수 있는 장인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회사가 "불가능하다"라고 포기한 설계들이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마크 엘리슨이다.

이 책에도 등장하는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저택들은 19세기 미국의 부자들이 유럽 귀족을 흉내 냈음을 보여 준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도대체 얼마나 힘든 작업이길래 그럴까 싶다면 책에 좋은 예가 있다. 한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를 개조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설계를 맡은 젊은 건축가가 황당한 도면을 만들어 냈다. 아파트 바깥으로 튀어나온 데크 바닥에 불규칙한 패턴으로 격자무늬(grid)를 만들어 틈에 잔디를 심고, 시냇물이 거기를 가로지르는 디자인이었다. 그 "시냇물"은 펌프를 동원해 흐르게 했고, 그 바닥에는 멀리 콜로라도주에서 가져온 조약돌을 까는 공사였다.

문제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 잔디가 모두 죽고, 시냇물 아래 조약돌에는 녹조가 가득 낀 것이다. 부자를 상대로 "이런 상황이니 설계를 변경하자"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하라고 돈을 아끼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들을 부른 거니까. 결국 작업자가 돌을 일일이 씻어 소독하고, 수영장과 야외 연못 작업을 하는 업체를 불러 녹조가 생기지 않는 법을 찾아내게 했다. 그 업체는 물의 pH 균형을 맞추고 염소 약품을동원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설치했다.

하지만 다음날 현장을 보니 다시 녹조가 가득했다. 콜로라도의 조약돌은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에 작업자는 돌을 도로 전부 꺼내어 닦고 소독했다. 수영장 전문업체도 녹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설계를 바꿔야겠지만, 부자가 원한다면 설계를 실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녹조를 없애는 방법을 찾기 위해 엔지니어, 식물학자, 생태학자까지 불러 회의를 했다. 그렇게 몇 시간 후에 내린 결론은 멕시코에서 갈색 달팽이를 수입하자는 것이었다. 그 달팽이가 있으면 녹조를 모두 먹어 치울 거라는 것.

'완벽에 관하여: 훌륭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한 뉴욕 목수의 이야기'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그렇게 해서 2주 후에 멕시코에서 공수된 달팽이들이 도착한다. 데크에 물을 다시 넣고, 콜로라도 조약돌을 다시 깔고, 수많은 달팽이를 풀었다.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현장을 나섰다. 주말을 지나고 돌아오면 펜트하우스의 데크에는 녹조가 사라진 시냇물이 흐르고 있으리라 기대하며.

월요일에 공사 현장에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건 시체 썩는 냄새였다. 물은 계속 흘렀지만 달팽이들은 뜨겁게 달궈진 데크의 시냇물에서 모두 죽었고, 주말 내내—64시간 동안—썩은 것이다. 심각한 문제여서 공사장 전체를 소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방진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표백제와 탈취제, 공기청정기를 동원해 하루 종일 아파트를 청소하고 소독한다.  

청소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최악의 사태가 터졌다. 13층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은 죽은 달팽이가 든 9kg짜리 포대 10개를 아파트 내 수직 쓰레기 통로(chute)로 던졌는데, 그게 맨 아래에 도착해 터지면서 악취가 건물과 건물 주변에 퍼진 것이다. 경찰차와 소방차들이 몰려와서 건물에 사는 주민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책에서 읽을 수 있겠지만, 이 모든 일이 남들이 감탄할 만한 기발한 디자인을 원하는 맨해튼 고객들의 고집에서 비롯된 거다.

돈이 많다고 부자들이 작업자들에게 돈을 많이 쓴다는 게 아니다. 많은 경우 그런 변덕과 고집으로 문제가 생기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물어내야 한다. 책에는 집주인의 지시에 다 완성된 차고를 모조리 갈아엎고 그 자리에 앉아 이제는 망했다며 우는 작업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마크 엘리슨이 부자들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니다. '완벽에 관하여'는 그가 좌충우돌 끝에 발견하고 도달하게 된 자신의 업과 직업윤리에 관한 이야기이고, 부자들의 이야기는 그걸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조연에 가깝다. 엘리슨이 뉴욕 최고의 목수라고 알고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은 그가 멋모르던 초기에, 공사를 시작한 집의 작업 규모가 자신의 역량과 예산을 넘어서자 겁을 먹고 도주한 이야기를 읽게 된다. "두려움과 무력감에 압도되어 집주인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집주인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솔직히 그 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마스터 목수가 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수십 년 전에 비하면 목공 기술은 매우 숙련되었지만 사업 수완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작업에 투자한 시간만큼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만 겨우 지킬 뿐이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낼 배짱이 있다. 예전처럼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문제를 숨기거나 외면하지는 않는다." 이 글을,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이 위안과 용기를 얻을 거다.

이 책은 현대 건축(과 건축주)에 대한 비평이기도 하다. 그렇게 마크 엘리슨이 만든 뛰어난 인테리어는 대개 10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한다. 수십억이 들어간 인테리어도 10년이면 유행이 지나고, 새로운 스타일을 원하는 주인들이 모두 뜯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독자들은 무엇보다 그의 인생관, 직업관에서 큰 감명과 위로를 받을 거다. 이 부분 만큼은 이 글에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책으로 꼭 읽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

"넘어져서 얼굴을 다치면 통증이 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차 나아진다. 하지만 완벽하게 치유되는 건 없다. 나는 인생의 모든 고통을 내 걸음걸이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누군가 너무 가까이 오면 두 눈에는 금세 두려움이 나타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리려고 거짓말을 할 때도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준 일이 떠올라 마음이 힘들 때도 있다." 🦦


이 책을 출간한 북스톤 출판사에서 오터레터 독자 열 분에게 책을 선물하시기로 했어요.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토요일 오전에 추첨해서 발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