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 심슨이 고용한 스타 변호사 조니 코크런은 미국 사회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인종 카드"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심슨의 재판은 1994년, 그가 체포된 후부터 약 1년 동안 미국의 뉴스 속보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심슨과 변호인에게는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유리했다. 그럴 경우 재판을 살인 사건이 아닌 인종 문제로 몰아가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코크런을 비롯한 변호팀은 배심원도 유리하게 선정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검찰의 잘못된 판단도 한 몫을 했다. 용의자가 흑인, 피해자들이 백인인 사건에서 배심원 12명 중 9명이 흑인으로 선정된 것이다. (히스패닉 1명, 백인 2명) 검찰은 왜 이런 선정에 동의했을까? 심슨의 변호사들과 일종의 거래를 한 셈이다. 우선 백인 경찰들이 흑인을 폭행한 1991년 로드니 킹의 사건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배심원은 백인 10명, 히스패닉 1명, 아시아계 1명으로 흑인이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재판에서 폭행에 가담한 백인 경찰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는 1992년 LA 인종 폭동의 원인이 된다)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판결의 정당성을 의심받고 싶지 않았다.

심슨 재판에 참여한 12명의 배심원 (이미지 출처: UMKC School of Law)

그게 전부가 아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O.J. 심슨은 백인들이 사랑하는 흑인 스타였다. 그런데 이런 호감은 일방적인 게 아니었다. 심슨도 흑인 커뮤니티보다 백인 커뮤니티를 선호했고, 흑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흑인이면서 성공했다고 백인들과 어울리고, 결혼도 백인 여성과 한 심슨에 대한 평판이 좋을 리 없었다. 검찰은 이를 이용해 유색인종 배심원을 10명이나 허용하는 대신, 남녀 성비에서는 완전히 뒤집어 여성 배심원 10명을 얻어낸 것이다. 이 사건은 흑인이 백인을 죽인 사건이기도 했지만, 남성이 전처를 죽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검찰은 흑인 여성이라면 인종을 넘어 전처 니콜 브라운에 동정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성공한 흑인 남성이 흑인이 아닌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행동에 대한 불만도 흑인 여성들 사이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검찰은 인종의 불리함과 성별의 유리함을 맞바꾼 셈이다.

무엇보다 증거가 너무 압도적이었다. 한 검사는 "내 검사 경력에서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많은 사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검찰은 승리를 확신했다.

문제와 실수들

하지만 심슨의 변호사들은 배심원이 그런 증거들을 모조리 의심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에서는 피해자와 심슨의 혈흔이 발견되었지만 (심지어 심슨이 경찰서에 처음 나타났을 때 손에 상처가 있었다) 경찰 과학수사대가 증거물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고, 어떤 경우는 뜨거운 차 안에 장시간 놔두는 바람에 증거물들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가져간 증거물을 냉동해서 보관하고 다시 꺼내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핵심 증거물인 장갑의 크기가 변했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검사들은 법정에서 심슨에게 장갑을 껴보라고 요구한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만, 심슨이 살인을 위해 장갑을 낀 모습을 배심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심슨이 장갑을 끼려고 하자 너무 작아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심슨은 "내 손에 맞지도 않는 장갑이 어떻게 내 것이겠느냐"며 이 모든 증거가 경찰의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본 심슨의 변호사가 "안 맞으면 무죄(If it doesn't fit, you must acquit)"라고 한 말은 심슨의 재판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이미지 출처: YouTube 캡처)

증거물을 의심하게 만드는 실수는 검찰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살인 사건 현장에 처음 출동한 경찰이었던 마크 퍼먼(Mark Fuhrman)은 평소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법정에 제출된 대화 녹음에서 퍼먼은 무려 40번의 인종차별적 표현을 쏟아냈다. 이 녹음은 흑인 배심원 9명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 중요한 건, 심슨의 집에 들어가 마당에서 다른 한 짝의 장갑을 찾아낸 사람도 퍼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혼자서 담을 넘어 들어가 장갑을 발견했다고 했기 때문에, 심슨의 변호팀은 그가 증거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파고들면서, 퍼먼이 정말로 그랬다면 양말이나 피 묻은 발자국도 모조리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의 장갑이 심슨의 손에 맞지 않는 것을 보여줬으니 배심원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배심원 12명은 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토의를 한 후에 심슨은 무죄라는 평결을 내린다. (이는 형사 재판이었고, 후에 벌어진 민사 소송에서는 심슨이 패소했다.)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미지 출처: Reddit)

무죄가 선고된 후 배심원 중 한 흑인 남성은 마치 자신이 이겼다는 듯 주먹을 쥔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걸 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과격 흑인 운동 단체인 블랙팬서(Black Panthers)에서 사용하는 제스처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가 흑인 배심원 중에서도 인종 문제에 가장 온건한 사람인 줄 알고 선정에 동의한 건데, 과거에 블랙팬서 멤버였음이 재판 후에야 밝혀졌다.

한 흑인 여성 배심원은 재판 후에 "나는 (처음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심슨에게 유죄 평결을 내릴 마음이 없었다. 이번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에 대한 보복이다"라는 말을 했다. 로드니 킹을 폭행한 백인 경찰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니, 니콜 브라운을 죽인 심슨도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심슨이 받은 무죄 판결이 미국 사회에 대한 유죄 판결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의 글에서 언급한 뉴욕타임즈의 기사(O.J., Made in America, Made by TV)는 심슨의 재판이 미국 사회, 특히 미국의 미디어에 남긴 유산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심슨의 재판은) 그 후에 찾아올 비슷한 사건/구경거리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미국 미디어가 전쟁, 실종 사건, 섹스 스캔들 같은 사건을 24시간 집중해서 보도하는 버릇은 심슨의 재판 때 생겼다. 1994년부터 1년 가까이 O.J. 심슨 사건만 보도한 미국의 뉴스 산업은 4년 후 빌 클린턴(Bill Clinton)의 성 추문을 1년 내내 보도하게 된다.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 (이미지 출처: Time)

심슨의 재판은 사람들을 한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미디어의 힘을 보여준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 세상,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똑같은 재판을 보고, 똑같은 증언을 들은 사람들이 평결은 물론, 사건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범인이 너무나 명백한 사건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증거 조작으로 만들어진 사건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여성을 상대로 벌어진 가정 폭력 사건이었고, 다른 이에게는 인종주의에 관한 사건이었다. 돈이 많고 유명하면 법 위에 살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법은 흑인에게만 가혹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는 개인이 저지른 범죄였고, 누구에게는 미국의 시스템이 저지른 범죄였다.

그 판결을 TV로 지켜보면서 일부는 환호했고, 일부는 분노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 후로 미국의 일상이 되었다. 선거, 전쟁, 팬데믹 등 큰 뉴스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편파적인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보며 자기만의 생태계에 살며, 자기가 원하는 전문가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의 팩트를 믿게 되었다. (중략)

뉴스의 미묘함과 복잡성을 파악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느리게 일어나고, 역사 속에서 인내심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매일 접하는 뉴스와 관련해서는? 우리는 여전히 심슨 재판이 만들어 낸 세상에서 살고 있다. 1994년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기 전, 심슨은 한 친구에게 자기는 이제 미디어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던 심슨은 30년이 지난 후에야 세상을 떠나면서 미디어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남은 우리는 모두 그 사건이 만들어 낸 미디어 세상에 갇혀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