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의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Periodical'을 발표한 리나 리테 플리오플리테(Lina Lyte Plioplyte)는 자기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동기를 설명하면서 미국의 많은 주에서 여전히 여성의 생리용품에 소비세를 과세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했다. 미국에서 흔히 "탐폰세(tampon tax)" 불리는 생리용품 과세는 21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생리용품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 플리오플리테는 이런 주에서도 남녀 모두가 사용하는 화장지에는 소비세가 붙지 않는 것을 지적하면서 화장지나 생리대나 똑같이 일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인데 왜 여성용품에만 세금이 부과되는지 궁금했단다. 팬데믹 초기에 대형 마트에서 제일 먼저 동이 난 제품이 화장지였던 것처럼,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서 화장지는 필수적이다. 그럼 똑같은 이유로 여성용품도 필수적인 물품인 건 당연하다. 그런데 왜 이런 주에서는 그 둘을 다르게 취급할까?

조사해보니 그런 주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었다. 공화당이 주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렇게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이 남성이고, 보수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들이 생리용품에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보수 기독교인으로 자란 나이든 보수 남성 의원들은 여성의 생리 현상에 무지하다는 게 문제였다. 플리오플리테가 만난 한 남성 의원은 생리대를 기저귀처럼 생각하고 있었단다. "여성의 생리는 소변과 같아서 참았다가 화장실에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생리대나 탐폰은 필수품이 아니라 사치품이라고 생각한 거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미국 남부의 정치계다.

연보라색이 여성용품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지역 (출처: Alliance for Period Products)

하지만 이를 단순히 보수 기독교의 문제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 혹은 전통 사회에서도 여성의 생리 현상에 대한 몰이해나 혐오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의 생리와 신체에 대한 몰이해라는 문제의 핵심은 많은 종교와 전통 사회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철저하게 배제되었다는 데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여자가 생리를 하는 동안은 불결하고, 부정(不淨)하다"는 사고방식이 한국의 무속신앙과 기독교의 율법에 모두 나타나는 것은 두 문화가 모두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전하고 계몽된 사회, 여성에게 참정권이 허락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사라지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다. 아니, 과거 전통사회가 가졌던 것과는 또 다른 형태의 비뚤어진 생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유는 똑같다. 여성들에 관한 인식이 여성의 참여가 배제된 남성들만의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확산하기 때문이다.

로라 베이츠(Laura Bates)의 '인셀 테러(Men Who Hate Women)'가 그 과정을 쉽게 잘 설명한다.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Men Who Hate Women)'이라는 원제를 한국의 출판사가 '인셀 테러'라고 번역한 데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런 결정에 수긍하게 된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단어가 된 인셀(incel)은 비자발적 금욕자(독신)’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 ‘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로, 지금은 여성과 사귀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지지지만,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여성이었다. 애인이 없는 여성이 만들어낸 단어가 (애인이 없는) 남성들의 전유물이 된 과정도 흥미롭지만, 내게 가장 신기했던 건 연애 시장에서 루저(loser, 패배자)를 의미하는 듯한 이 표현을 자신에게 부여하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내가 '인셀'이라는 표현을 미국의 온라인 어느 구석에서 처음 접했던 건 2010년 경이다. 그때만 해도 인셀은 연애를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 되서 못한다는 말을 반 농담으로,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가벼운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테러'라는 말과 함께 책 제목으로 등장할 만큼 무시무시한 단어로 변했다. 남성들은 왜 이렇게 부정적인 단어를 자기에게 부여하고 집단의 정체성으로 삼는 걸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나는 그 이유를 안다"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한국인 중에도 인셀의 정서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형성된 이 집단의 정체성은 쉽고 빠르게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셀 테러'는 인셀이라는 정체성과 그들의 행동 방식에 관해 잘 아는 사람부터 전혀 모르는 사람까지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말하자면 입문서인 동시에 종합서인 셈인데, 이렇게 다른 독자층을 모두 만족시키는 게 작가로서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저자 로라 베이츠는 잘 해냈고, 번역도 깔끔해서 (흔하지 않은) 쉽게 읽히는 번역서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은 원제(Men Who Hate Women)도, 한글판 제목(인셀 테러)도 아닌 '매노스피어(manosphere)'가 아닐까 싶다. 직역하면 '남성들의 공간, 남성계' 정도의 의미이고,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남초 커뮤니티'가 비슷한 개념일 텐데, 저자는 여성들을 왜곡해서 인식하는 남성들을 하나의 단일한 집단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다양한 (정확하게는 9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설명한다. 이런 꼼꼼한 분류가 이 책의 최대 강점이고, 이는 목차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목차 때문이다.

1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
2 여자를 사냥하는 남자들
3 여자를 피하는 남자들
4 여자를 탓하는 남자들
5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들
6 여자를 해치는 남자들
7 다른 남자를 착취하는 남자들
8 여자를 두려워하는 남자들
9 여자를 혐오하는 줄 모르는 남자들

10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를 혐오하는 남자들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

1장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은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인셀의 개괄에 해당한다. "여자들은 섹스에 굶주려 있지만, 가장 매력적인 남자와의 잠자리만을 선택"한다는 믿음 때문에 인셀들은 "상위 20%에 속하는 가장 매력적인 남성들이 우리 사회에서 섹스의 80%를 즐긴다"는 80 대 20 이론을 내세운다. 더 나아가 "여성이 성적 자율성을 누리는 통에 남성의 삶을 사악하고 압제적으로 통제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남성의 고통의 근원에는 여성해방이 있다"는 게 인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페미니즘 혐오의 진정한 이유다.

이 책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는 건 2장부터다. '여자를 사냥하는 남자들'은 여성을 데이트 상대로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픽업 아티스트(pickup artist)들의 이야기고, 3장은 여자와 일절 관계를 끊은 남자들을 다루기 때문에 언뜻 생각하면 여성에 해가 되지 않을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이들이 가진 여성에 관한 왜곡된 인식이 큰 틀에서 어떻게 여성에게 해가 되고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아주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통찰과 분석이 돋보이는 장은 4장 '여자를 탓하는 남자들'과 7장 '다른 남자를 착취하는 남자들'이다. "남성의 권익을 옹호한다"라는, 겉으로 보기에 무해해 보이는 단체들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해서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페미니즘을 공격하게 하는지, 그리고 "골방에서 게임을 하는" 십 대들을 매료시키는 수준의 유치한 담론이 어떻게 삼투압처럼 위로 스며들어 뉴욕타임즈 같은 매체나 백악관 같은 곳에서 사용되는지 설명한다.


'트릭 미러(Trick Mirror)'의 저자 지아 톨렌티노(Jia Tolentino)는 2018년, 'The Rage of the Incels(인셀들의 분노)'라는 글에서 인셀 남성들의 분노를 이렇게 설명했다.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사회화를 거치면서 남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게 자신의 탓이라고 교육을 받는 반면, 남자들은 여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그게 여자들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남성들에 대한 (남성중심) 사회의 온갖 동정과 우려는 바로 이렇게 주소를 잘못 찾은 분노에서 비롯된다. 로라 베이츠의 책은 톨렌티노의 짧은 글이 제기한 문제를 흥미롭게 발전시킨 작품이라고 봐도 좋다.

"그래도 인셀 테러라는 제목은 너무 나간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책에서 설명하는 인셀들의 사고방식, 행동방식, 그리고 범죄 유형은 여느 테러리스트 집단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테러를 테러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사회를 이끄는 남성들이 느끼는 연민, 혹은 이용 가치일 뿐이다.

이 책의 한국판을 낸 출판사(위즈덤하우스)에서 오터레터 독자들에게 책 10권을 선물해주시기로 했어요! 이 책을 받고 싶으신 분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댓글로 의사를 표해주시면 됩니다. 목요일(12월 14일) 자정까지 신청해주신 분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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