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자 중에서도 극단적인 그룹에 속하는 큐어넌 음모론자들은 상식 밖의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사람들로 치부되기 쉽다. 평범한 이메일에서 아무런 증거나 개연성도 없이 아이들을 죽여 피를 마시는 사탄 숭배를 읽어낸다면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들인 건 맞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에 아무런 논리도 없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판단이다. 이들 세계관에는 나름의 일관된 내러티브가 존재하고, 비록 일반인은 동의하기 힘들어도 그 내러티브 안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많은 세상사가 나름의 논리에 따라 해석된다.

큐어넌을 연구해 책으로 펴낸 윌 소머(Will Sommer) 기자는 그들이 세상을 보는 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악한 엘리트가 지배하고 있는데, 그 엘리트들은 심지어 날씨까지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의 피를 마신다. 이들 중에는 정치인, 은행가, 토크쇼 호스트, 그리고 톰 행크스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헐리우드 유명 인사들까지 포함된다. (참고로, 이들이 빨간색 신발을 신었다면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는 신호라는 게 음모론자들의 생각이다.)

윌 소머와 큐어넌 음모론을 설명한 그의 책 'Trus the Plan'
소머도 언급하지만, 아이들을 죽여 그 피를 마신다는 얘기는 유럽의 중세 시대부터 내려오는 반유대주의 정서에서 출발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에 따라 유월절(Passover)이 되면 자정에 포도주를 마시는데, 유대인들을 배척하던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죽여 피를 마신다는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렸다. 우스운 건, 기독교가 처음 유럽에 퍼지던 때,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먹는 '성찬식'을 두고 비기독교인들이 똑같은 내용의 소문을 퍼뜨리며 박해했다는 사실이다.
큐어넌 음모론 자체는 반유대적인 메시지가 없다고 해도, 큐어넌 신봉자들은 대개 반유대주의적인 정서가 있기 때문에 "엘리트들이 모여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는 이야기에서 말하는 '엘리트'에는 유대계가 많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이자, 큐어넌 신봉자로 유명한 마조리 테일러 그린(Marjorie Taylor Greene)은 2011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유대계가 '우주 레이저'를 쏘아서 미국 전역에 산불을 내고 있다고 주장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일반인들에게는 황당해 보여도 큐어넌 음모론자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주장이다.
바이든의 의회 연설을 방해하는 로렌 보버트(왼쪽)와 마조리 테일러 그린(오른쪽). 두 사람은 연방 하원에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큐어넌 신봉자로 유명하다.

큐어넌 신봉자들은 엘리트들이 그렇게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이 추진하는 정치적 어젠다도 나쁘게 생각한다. 그중에는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정책(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추진했다)도 있고, 세금을 높게 유지하는 정책이나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개발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정책도 있다. 이들은 이런 정책들이 일반 미국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자기 삶에 존재하는 모든 어려움이 사악한 엘리트 때문에 생겼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신앙 체계가 그런 것처럼, 큐어넌의 음모론은 세상의 문제를 보는 눈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가 해결되고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한다. 메시아적인 존재가 등장해 사악한 엘리트를 체포하고, 그들의 정책 이행를 막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게 그들이 믿는 '폭풍'(The Storm)이다. 앞의 글에서 익명의 Q가 남긴 글 '폭풍 전의 고요'(Calm Before the Storm)에 등장하는 그 폭풍 말이다.

짐작했겠지만, 그 폭풍을 몰고 올 메시아적인 존재는 트럼프다.

소머가 들려주는 사례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새 차를 빚을 내어 사고 나서 "그거 어떻게 다 갚으려고 그러느냐"는 주위 사람들에게 "괜찮아, 폭풍이 곧 닥칠 테니까"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사악한 엘리트가 경제 시스템을 통제하고 있어서이기 때문에 그들이 체포되면 경제적 어려움도 해결된다고 믿는 것이다. 심지어 폭풍이 닥치면 자기 병이 나을 거라고 믿는 말기 암 환자도 있었다. 이미 개발된 암 치료법을 숨기고 있는 엘리트들에게서 트럼프가 암 치료제를 되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건 엘리트들이 자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여성도 있다.

2021년 1월 6일, 바이든의 선거 승리를 인증하는 절차를 막기 위해 연방 의회 건물에 침입한 폭도 중에는 그날이 바로 '폭풍'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낸시 펠로시를 비롯한 의원들을 "체포"하려고 한 이유는, 자신들이 믿는 큐어넌 내러티브에 따르면 펠로시 같은 엘리트를 체포해야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당 건물에 침입하는 트럼프 지지자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큐어넌 신봉자들은 모두 사납고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들을 많이 만나 본 소머에 따르면 이들은 평범하고, 심지어 상냥하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피자 가게 지하실에서 아이들이 살해당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틀이 있다. 그들이 가진 문제는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이다. 공장이 사라져서 직장을 잃었고, 월세를 내기도 힘들고, 말기 암을 앓고 있는 건 모두 현실의 문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 모든 문제의 근원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럼, 아이들의 피를 마신다는 주장은 어떨까? 뉴욕타임즈의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은 이렇게 설명한다.

"과거 몇십 년을 돌아보면 정말 심각한 성범죄 스캔들이 있었고, 그걸 (권력을 이용해) 덮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하비 와인스틴(Harvey Weinstein), 빌 코스비(Bill Cosby) 같은 힘 있는 사람들과 가톨릭교회, 그리고 최근에는 숀 존 콤즈(Sean John Combs, "퍼프 대디")의 재판도 있었다. 큐어넌은 그 문제의 원인을 이상한 데서 찾았을 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네트워크를 이용해 그걸 덮으려 했던 시도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알고도 모른 척하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따라서 엘리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큐어넌 신봉자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많은 여성 배우들에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복역 중인 하비 와인스틴. 권력층이 재판을 받게 되면 없던 병이 갑자기 생겨 거동이 불편해지는 현상은 만국 공통인 듯하다. 대개는 귀가하면 곧바로 낫는다.

엘리트들이 미국의 공장을 중국으로 보내고, 성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을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든 건, 그렇게 권력자들을 불신하는 음모론자들이 트럼프를 따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클라인의 말을 빌려 이 부조리극 같은 상황을 설명해 보자.

"도널드 트럼프야말로 부패한 엘리트다. 트럼프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메디케이드(Medicaid, 저소득층 의료보장 제도)와 푸드스탬프(Food Stamp, 저소득층 식품구입비 보조 제도)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이 트럼프다. 하지만 트럼프는 취임 후 자기 지지자들을 완전히 배신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앞으로 10년에 걸쳐 우리 돈으로 1,674조 원을 삭감했다) 부자들에게는 엄청난 감세를 선물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를 지지한 사람들에게는 메디케이드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다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했다. 이건 분명한 부패다. 트럼프는 가장 부패한 엘리트다."

즉, 큐어넌 음모론자들은 엘리트를 싫어한다면서 그들을 제대로 비판하는 대신 엉뚱한 혐의를 씌웠고, 그러면서 정작 가장 부패한 엘리트의 거짓말에 속아 그를 지지하는 것이다.

모든 트럼프 지지자들이 가난하지는 않지만, 저소득층 트럼프 지지자들이 유독 그 지지를 강하게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큐어넌 신봉자들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과 가장 가까웠던—게다가 본인이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트럼프가 가상의 "엘리트 성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자기들의 요구대로 엡스틴의 고객 리스트를 공개해 줄 거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모든 기록을 바탕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트럼프는 엡스틴의 고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정작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음모론자들이 트럼프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제프리 엡스틴(왼쪽)은 자기가 10년 동안 트럼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했고,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엡스틴이 멋진 친구라며 "나처럼 예쁜 여자들을 좋아하고, 대부분 어린 여자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마가 내전 ③'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