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저궤도 제국 ③
• 댓글 남기기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를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머스크의 요구에 바이든 행정부는 국방부 고위 관료인 콜린 칼(Colin H. Kahl)을 보내어 중재하도록 했다. 10월 7일, 칼과의 전화 통화에서 머스크는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공격작전을 수행하는 데도 사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칼은 머스크에게 "스타링크를 끊으면 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의 인터넷 일부를 끊어버렸다.
작년 말에는 한 영국인이 지원한 1,300개의 스타링크 단말기가 작동을 멈췄다. 복수의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 단말기당 2,500달러인 월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뿐 아니다. 땅을 빼앗으려는 러시아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황이 변화할 때마다 스타링크의 연결이 제한되기도 한다. 전선(戰線)이 변화하면 머스크는 지오펜싱(geofencing, 실제 위치에 기반해 가상의 경계나 구역을 만드는 것–옮긴이) 기술을 활용해 인터넷 접속을 제한한다. 스페이스X는 단말기를 통해 수집한 위치정보를 사용,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을 정하고 지오펜싱의 경계를 설정한다.
스페이스X의 이런 행동이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해 가을,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는 헤르손 등의 지역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동안 통신을 위해 인터넷 접속이 필요했다. 페도로프 장관과 우크라이나군은 머스크와 스페이스X 직원들에게 연락해서 우크라이나가 진격하는 지역에 인터넷을 켜달라고 요청했다.
페도로프 장관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곧바로" 들어주었다.
머스크가 허락하지 않으려는 건 더 있다. 복수의 소식통이 확인해 준 바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해 크림반도 근처에서 스타링크를 사용하게 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거절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점령, 통제하고 있는 지역으로, 우크라이나는 폭탄을 실은 해상 드론으로 흑해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을 공격하기 위해 이 지역에서 인터넷 통신이 필요했다.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머스크는 트윗을 통해 스타링크는 장거리 드론 공격에 사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이 부분에서 머스크의 트윗을 링크하고 있지만, 머스크의 트윗 전문을 읽어볼 필요는 있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머스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끼어서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처지에 있다고 말한다. 트윗 전문은 이렇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최전방까지 우크라이나 인터넷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건 '이래도 욕먹고(damned if you do)'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타링크가 장거리 드론 공격에 사용되는 것은 허락하고 있지 않다. 이건 '저래도 욕먹는(damned if you don't)' 부분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서 스페이스X가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상황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다. 가령, 북한 문제 등으로 러시아와 관계를 완전히 끊으면 안 되는 한국 정부가 내놓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지 못하는 게 그렇다. 하지만 머스크는 외교관이 아니라 사업가이며,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머스크의 사업에 필수적인 국가가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머스크는 자신이 국제정치를 보는 방식대로 행동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자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이 개입했다. 국방부가 400~500개의 스타링크 단말기 추가 구매를 승인한 것이다. 이 계약은 새로 구입한 단말기들이 우크라이나 내 어느 지역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스페이스X가 아닌) 국방부가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서 단말기들이 "주요 작전 수행"에 사용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스페이스X의 개입을 걱정하지 않고 민감한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방위산업체들의 경우 외국에 무기를 수출하는 계약은 연방 정부를 통해 성사된다. 하지만 스타링크는 무기가 아니라 상업용 제품이기 때문에 머스크가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전직 국방부 관료이자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 블루 오리진에서 일했던 그레고리 C. 앨런은 스페이스X가 우크라이나에서 스타링크 비용을 계속해서 부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설명한다. 현재 전략국제연구소(CSIS)에서 일하는 앨런은 "개인이나 기업이 전쟁 중에 드러내놓고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걸 근래 들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비용을 부담하지 않겠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뉴욕타임즈의 설명이 약간 부족해 보인다. 얼마만큼이 미국 정부의 지원이고, 얼마만큼이 스페이스X의 지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민간기업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의 방어 작전에 상당 부분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머스크에 비판적인 사람들 중에서도 스타링크 사용비는 미국 정부가 부담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이미 스페이스X에 큰 고객이기 때문에 사용료 산정에서 스페이스X가 일반 시장 가격을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불만을 느끼거나 협상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서 머스크에 대한 견해는 갈린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인 미하일로 포돌리아크는 지난 2월 트위터에서 스페이스X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에서) 어느 편인지 결정하라고 했지만, 디지털 장관인 페도로프는 머스크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11월, 우크라이나가 대대적인 포격을 받고 인터넷이 끊어지게 되자 머스크는 스타링크 터미널 1만 개를 신속하게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스페이스X와 일론 머스크는 자신들이 누구 편인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느냐"는 것이 페도로프 장관의 생각이다.
대만에서 유럽까지
지난 2월, 중국의 상선이 대만 본섬과 중국 대륙에 가까운 마쭈 열도를 잇는 인터넷 케이블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로 마쭈 열도 전역에 인터넷이 끊어졌고, 대만의 통신 인프라의 취약성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중국이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대만은–중국의 공격에 대비해–스타링크가 가장 필요한 지역일 수 있다. 하지만 대만은 선뜻 내키지 않아 한다. 그리고 이런 대만의 우려는 세계 각국의 정부에 퍼지고 있다. 머스크 같은 사람이 결정권을 가진 스타링크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전직 국회의원이자 디지털 인프라와 관련한 정부 자문을 하는 제이슨 슈(Jason Hsu)에 따르면 대만의 관료들은 스타링크와 관련해 스페이스X와 이미 상의를 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은 테슬라 등의 사업 때문에 중국에 재정적 이해관계가 있는 머스크에 대해 "아주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테슬라 신차 생산의 약 50%가 상하이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중국 정부가 그에게 대만으로 가는 인터넷을 끊으라고 압력을 가하면 과연 머스크가 이에 저항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스쿨에서 펠로우인 슈는 "대만은 스타링크에서 단말기를 주문했다가 일종의 덫에 걸리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다. 일론은 중국에 큰 상업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4월, 미국의 의회 대표단이 대만을 방문했을 때 공화당 소속으로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이클 매컬(Michael McCaul, 지역구가 테슬라의 본사와 스페이스X의 발사대가 있는 텍사스주에 있다–옮긴이)은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의 오찬 자리에서 스타링크를 사용하는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차이잉원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미 의회 보좌관들은 그 오찬 직후 대만은 머스크가 중국과 가진 관계 때문에 스타링크가 사용할 만한 옵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대만의 디지털 장관인 오드리 탕은 대만이 6월에 (스타링크의 경쟁업체인) 원웹과 계약을 맺었으며, 다른 위성 인터넷 기업들과의 계약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대만은 가능한 한 많은 위성 서비스를 테스트해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머스크의 영향력은 다른 지역에서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스타링크가 위성 인터넷 시장을 지배하는 것을 우려해 24억 유로(약 3조 4,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해 자체 인공위성망을 만들기로 했다. 빠르면 2027년에 첫 발사를 예정하고 있는 이 사업을 감독하는 티에리 브레튼(Thierry Breton) 유럽 집행위원은 "우주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영역이 되었고, 유럽연합은 이 분야에서 우리의 중대한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라며, 유럽연합은 다른 곳에 의존하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고 했다.
스페이스X는 각국 정부의 이런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난해 스타링크와 연계된 새로운 서비스인 스타쉴드(Starshield)를 선보였다. 국가 안보와 관련한 기밀자료를 다루고 민감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도록 보안을 강화한 서비스다.
권위주의 국가들도 스타링크를 비판한다. 지난해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자 머스크는 시위대가 스타링크를 통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두고 이란 정부가 스페이스X가 이란의 주권을 훼손한다고 비난한 것이다. 중국은 올해 UN 패널에 제출한 서한을 통해 스페이스X가 너무 많은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우주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항의했고, 지난 2월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는 스타링크로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겠다는 머스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튀르키예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에 불리한 소식이 온라인에 퍼지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라고 봤다. 디지털 권리단체 액세스나우(Access Now)에서 튀르키예를 분석하는 셰리프 엘 카디(Chérif El Kadhi)는 "튀르키예 정부는 스타링크가 자기들의 통제 밖에 있어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두려워한다"라고 했다.
당분간은 머스크가 우주를 지배하는 상황이 변할 것 같지 않다. 지난 5월 아마존에서 두 개의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었지만 발사가 연기되었다. 로켓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 때문이었다.
아마존이 발사를 연기한 이후로 지금까지 머스크는 최소한 595개의 스타링크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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