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함께 사는 법 ②
• 댓글 남기기진행자: 쓰신 기사에서 유난히 눈에 띈 대목이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폭염으로 재난지역 선포를 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연방 재난 관리청(FEMA)은 주 정부, 지역 정부가 폭염과 관련한 지출을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줄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정작 폭염과 관련해서는 자연재해로 간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비틀: 맞아요. 그렇습니다. 스태포드법(Stafford Act)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재난 관리청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규정합니다. 그런데 폭염(heat)은 재난 관리청의 재난(재해) 리스트에 올라와 있지 않아요. 그게 리스트에 없다고 해서 재난 관리청이 재난 선포를 할 수 없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일단 리스트에 없다보니 선포를 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거죠. 재난 관리청이 폭염에 대처하기 위한 자원을 지원하는 선례를 만들기 전에는 선례가 없는 거고, 선례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겠죠.
진행자: 스태포드법에 자연재해(natural catastrophe)로 나열된 걸 보면 허리케인, 토네이도, 수해(high water), 풍수해(wind-driven water), 해일, 쓰나미, 지진, 화산 폭발, 산사태, 이류(泥流, mudslide), 폭설, 가뭄이 있고, 원인을 불문한 화재, 홍수, 폭발도 있어요. 폭염은 거기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 어떤 자연재해보다 많은 사망자를 내잖아요?
비틀: 맞습니다. 그런데 리스트를 다시 보시면요, 거기에 등장하는 재해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재산, 혹은 농작물을 파괴하는 재난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재산을 파괴하는 재해여야 스태포드법이 정하는 재해 리스트에 들어가는 건데 폭염만 예외입니다. 폭염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도로가 약화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피해는 사람이 받습니다. 그렇게 피해를 입어 노동력을 상실하는 경우죠. 그러니 다른 자연재해처럼 나서서 대비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진행자: 말씀을 들으니 생각나는데요, 언론의 폭염 보도는 (연방, 주, 지역) 정부가 폭염을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따라 미디어가 이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지는 걸 발견하셨다고 하셨죠. 정부가 폭염을 재해라고 취급하지 않으면 언론도 재해로 보도하지 않는다고요.
비틀: 홍수 같은 재해는 구호물자가 도착하고 헬리콥터를 보내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죠. 지역 정부는 오래전부터 허리케인 같은 재해가 예상되면 경보를 발령하고, 지역 보안관(sheriff, 주로 도시를 관할하는 경찰과 달리,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 지역은 보안관이 관할하는 경우가 흔하다–옮긴이)은 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을 두드리고 대피하라고 합니다.
진행자: 그런 장면은 TV, 라디오에 꼭 나오고요.
비틀: 그렇습니다. 보안관이나 시장이 문제라고 말하면 언론에서는 그걸 받아서 문제라고 보도하고, 그걸 본 사람들은 문제라고 인식하고 행동합니다.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어도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경보 시스템이 존재해 왔는데, 폭염과 관련해서만은 작동하지 않아요. 지역 정부가 소통을 제대로 못 한다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전통적으로 폭염은 재난에 대비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이 고려하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칭찬할 건 칭찬해야 하죠. 하지만 미국 재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1995년 시카고 폭염 사태를 살펴보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행자: (미국 서북부) 오레건주 포틀랜드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는 끔찍한 폭염을 경험한 후에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비틀: 서북부는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곳도 시카고처럼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폭염을 맞이했죠. 연방 정부의 대응 방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워싱턴주는 폭염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에도 미래의 폭염에 대비할 수 있는 지원금을 받지 못했죠. 그래서 워싱턴주에서는 주민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하고, 주에서 가진 예산의 범위 내에서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습니다. 시애틀의 경우 에어컨이 흔하지 않기 때문에 (기후 변화 이전까지는 여름이 서늘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옮긴이) 무더위 쉼터(cooling center)를 도시 곳곳에 마련하는 식이죠.
병원 인프라도 폭염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열사병 환자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을 가능한 한 빠르게 식히는 겁니다. 가령 얼음물로 채운 욕조에 집어넣는 거죠. 하지만 포틀랜드에서는 대량의 얼음을 구하기 힘들어요. 제빙기가 부족한 거죠. 그러니 폭염이 오면 얼음을 미리 만들어서 비축하게 했습니다.
진행자: 혼자 사는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해결책이 있을까요?
비틀: 혼자 사는 미국인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들은 폭염 때 큰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폭염의 피해를 입게 되니까요. 1995 시카고 폭염을 연구한 사회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사회적 결속력이 강한 커뮤니티나 가족들과 물리적으로 가깝게 살던 사람들의 경우, 동등한 소득 수준을 가진, 그러니까 에어컨을 가질 만한 경제적 여력이 비슷한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피해자가 적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염이 오면 지역 주민들끼리 이웃의 상태를 확인하는 노력이 도움이 됩니다.
진행자: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웃의 안부를 확인했죠.
비틀: 맞아요. "여러분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세요"라고 안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이 있는지, 피신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방법이니까요.
진행자: 허리케인처럼 폭염에 이름을 붙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페인의 세비야에서는 이번 여름 폭염에 이아고(Yago), 제니아(Xenia)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요?
비틀: 그렇게 이름을 붙이자는 이유는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주목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허리케인에 취약한 지역들의 경우 그렇죠. 이름이 있으면 괴물(monster)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격체가 부여되는 겁니다. 만약 폭염에 이름이 붙으면 그냥 밖이 덥다는 게 아니라 위험하다고 인식합니다. 포커스 그룹을 만들어서 폭염에는 어떤 이름을 붙이는 게 좋겠느냐고 했더니 매운 음식의 이름을 붙이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이름을 부여하면 시작과 끝이 분명한 존재가 되고, 그 존재가 내가 사는 마을에 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데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진행자: 그렇게 하면 허리케인 샌디, 앤드류, 마리아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폭염도 구분해서 기억하게 될까요? 우리는 허리케인의 이름을 들으면 그게 왔을 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고,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기억하잖아요.
비틀: 맞습니다. 가령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사는 주민이 2023년 여름을 회상하면서 '그해 여름은 오랫동안 아주 더웠던 거 같아'라고 생각하지, 조이, 제임스 같은 이름으로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진행자: 미국의 기상학자인 가이 월튼(Guy Walton)은 폭염에 석유회사 이름을 붙이자는 제안도 했어요. 'BP 폭염'처럼 말이죠.
비틀: (웃음) 재미있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로 폭염이 이토록 심각해졌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으니까요. 특정한 폭염이 특정한 석유회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석유를 태운 결과와 폭염을 연결시킬 수는 있습니다. 폭염이 얼마나 치명적인 재해인지를 대중에게 인식시키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화석 연료의 사용과 폭염의 관계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