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이 뜨거웠다는 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있다. 특히 7월 첫 2주는 인류가 기온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더운 기록을 세웠다. 문제는 이런 추세로는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지구는 계속해서 뜨거워질 거라는 사실이다. "이번 여름이 아무리 더웠어도, 훗날 돌아보면 서늘했던 여름으로 기억하게 될지 모른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무서운 경고다.

한국에서는 이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휩쓸고 갔지만, 태풍의 발생 통계를 보면 8월 말인 지금에야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이 시작되었다는 전망이 있다. 과거에는 10월에 태풍이 찾아오는 일이 드물었지만, 기후가 변하면서 이제는 10월 중순까지도 태풍의 영향권 안에 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이 상륙하는 일이 거의 없는 캘리포니아에 80여 년 만에 찾아온 허리케인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는 대형 산불이 일어나 100명 넘게 사망했고, 현재 400명 가까운 사람이 실종 상태에 있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의 경우 피해가 컸던 이유는 두 재난이 그 지역에서 익숙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캘리포니아는 산불과 지진에는 익숙하지만 수해 대비가 부족하고, 하와이는 산불이 일어난 후 경보조차 제대로 발령되지 않을 만큼 주, 지역 정부가 화재 대응에 미숙했다고 한다. 하와이를 덮친 산불이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났으면, 혹은 캘리포니아에 닥친 허리케인이 플로리다에 상륙했다면 각 지역은 훨씬 더 나은 대응을 했을 거라는 얘기다.

인류는 이제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본격화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과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경고했지만 우리가 팔짱을 끼고 있던 결과, 지구의 기온은 꾸준히 상승했고,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재해를 겪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끝났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피해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앞으로 상승할 기온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 별개로, 이제 우리는 더워진 지구에서 사는 법을 익혀야 하는 시점이다. 한반도 10월이 태풍 시즌이 되고, 하와이에 대형 산불이 나고, 캘리포니아에 허리케인이 상륙한다면 우리는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가 적응해야 할 자연재해 중 하나가 폭염이다.

우리는 폭염을 재해, 재난으로 인식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왜냐하면 폭염은 기온이고, 기온은 그저 날씨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틀린 생각이다. 기록적인 폭염을 다룬 책과 연구자들이 항상 지적하는 것처럼, 폭염은 다른 어떤 자연 재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는 재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폭염을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취급하지 않을까?

아래 소개하는 기사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올해 'The Great Displacement (대 이주)'라는 책을 낸 기후변화 전문 기자인 제이크 비틀(Jake Bittle)이 초대 손님으로 나와서 이야기한 인터뷰 형식의 기사로 여기에서 내용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

제이크 비틀의 책과 웹사이트

브룩 글래드스톤, 진행자: 2023년 7월이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웠다면, 그리고 이게 인류가 화석 연료를 태워서 생긴 결과라면 이 폭염은 우연히 한 번 일어난 게 아닙니다. 하지만 폭염의 위험은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정확하게 알기 힘듭니다. 애리조나주에서는 연속으로 31일 동안 섭씨 43도 이상의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이 평소 걸어 다니는 인도가 부엌의 가스레인지처럼 뜨거워졌습니다. 땅바닥 온도가 65도가 넘게 달궈졌기 때문에 잘못하면 2도, 혹은 3도의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만 최소 1,100명이 폭염으로 사망했고, 희생자의 숫자는 더 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폭염은 흔히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희생자들은 더위 속에서 자기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초대한 제이크 비틀은 그리스트(Grist)에서 기후와 관련된 기사를 쓰고 있고, 특히 폭염(extreme heat)이 다른 자연재해에 비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이 언론이 폭염을 다루는 데 어떤 어려움을 주는지에 대한 글을 써왔습니다.

제이크 비틀: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나면 방송사 기자들은 루이지애나주 같은 곳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수천 채의 집이 물에 잠기고, 전선이 끊어지는 등의 피해를 TV로 직접 볼 수 있죠. 하지만 폭염에 대한 보도는 쉽지 않습니다. 다른 자연재해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희생자를 내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들은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폭염 뒤에 증가하는 환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사병(熱射病, heat stroke) 환자들은 응급실로 이송되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죠.

게다가 폭염으로 죽는 사람들은 집이 없는 노숙자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이 아닙니다. 저는 폭염이 오랫동안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보도에서 소외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애리조나주에서 더위 속에 물을 마시는 노숙자의 모습 (이미지 출처: Slate)

진행자: 눈에 잘 띄지 않는 문제에 계층 문제까지 겹쳤군요. 폭염이라는 게 에어컨이 있는 환경에서 살면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문제이니까요.

비틀: 정말 그렇습니다. 허리케인(태풍)이 들이닥치면 부자의 집과 가난한 사람의 집이 구분이 없이 피해를 입죠. 하지만 폭염이 오면 집에 에어컨을 켜면 됩니다. 문제는 에어컨이 없는 환경에 사는 사람들,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이죠. 거기에 (남미 등지에서 오는) 계절 노동자, 야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폭염에 노출된 집단입니다. 폭염으로 아프거나 죽는 사람들이 이들입니다. 폭염은 약간의 물질적 여유만 있어도 피할 수 있는 재해입니다.

진행자: 에어컨이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나요?

비틀: 애리조나주 매리코파(Maricopa) 카운티는 대도시인 피닉스와 그 주변의 교외 지역을 포함하는데요, 근래들어 이 지역에서 폭염과 관련해서 사망한 사람들의 75% 이상이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항상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거죠.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가서 아끼느라 그렇기도 하고,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이걸 고치려고 사람을 부르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포기하는 거죠. (한국에서 흔한 애프터서비스와 달리, 미국에서 이런 수리를 하는 사람들을 부르려면 우리 돈으로 수십만 원이 쉽게 나간다–옮긴이)

애리조나주 매리코파 카운티 (이미지 출처: Data USA

게다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는데요, 폭염에 노출되어 생기는 피해는 몸에 누적됩니다. 에어컨 없이 무더운 밤을 보내면 그게 몸에 쌓입니다. 사람들은 아주 더운 게 아니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돈을 아끼려고 밤에 에어컨을 끄고 자는데요, 그렇게 더운 곳에서 잠을 자는 동안 몸은 계속 망가집니다.

진행자: 말씀하신 것처럼 폭염은 눈으로 보여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미디어에서는 달구어진 땅바닥에서 달걀이 익는 모습이나 해변에 사람들이 몰린 장면 같은 클리셰(cliché)를 보여주는 게 고작이죠.

Jake Bittle: 소화전도요! 이런 건 적절한 장면이 아니죠. 사람들이 열사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심각한 뉴스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요즘 주요 언론사들은 좀 나아져서 심각한 폭염을 겪고 있는 지역에 산업계나 자연 재해를 담당하는 기자들을 보냅니다. 워싱턴포스트가 특히 이런 보도를 제대로 합니다. 과거에는 자연재해를 보도하는 방법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놀이를 가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더운날 소화전을 열어놓고 더위를 식히는 장면은 미국 언론에서 오래도록 사용해온 클리셰다. (이미지 출처: Patch, Ephemeral New York, ALLSHIPS)

진행자: 보도 방식도 나아지고 있고, 폭염과 관련한 보도 자체가 많아졌죠. 하지만 뉴리퍼블릭(New Republic)의 몰리 태프트(Molly Taft) 같은 언론인은 이런 보도가 기후 재난을 일상화하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가령 텍사스주 폭염과 관련한 전국 TV 뉴스 보도를 분석해 보니 단 5%만 기후 변화를 언급했다고 하죠.

비틀: 그건 기후 전문기자들이 아주 오랫동안 지적해 왔던 문제입니다. 이 역시 주요 언론사에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폭염을 날씨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 찾아온 재해가 아니라, 그냥 오늘 내가 느끼는 날씨라는 거죠. 폭염에 관한 보도가 허리케인이나 산불에 관한 보도와 어떻게 다르냐면요, 후자의 경우는 과학 기자나 현장 리포터를 보내어 비바람을 맞게 하고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게 합니다.  

그런데 폭염 보도를 할 때는 기온이 숫자로 기록된 일기예보 화면 앞에 기상 리포터가 서서 "오늘은 화씨 100도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입니다. 기상 리포터들은 전통적으로 폭염과 기후 변화를 연결시키지 않아요.

(이미지 출처: CNN, The Sun, IndieWire)

'폭염과 사는 법 ②'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