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일본은 달라졌다 ①
• 댓글 남기기지난달 말에 오터레터에서 발행한 글 '일본은 미래였다'에서 일본에서 10년을 살다가 떠나는 BBC 특파원의 소감을 소개했다. 기자 개인의 생각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다른 문화에서 온 기자/특파원의 눈에 일본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글이 크게 화제가 되면서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왔다. 그중 눈에 띄는 글이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지금은 노아피니언(Noahpinion)이라는 유료 블로그를 운영하는 노아 스미스(Noah Smith)의 "일본은 많이 변했다(Actually, Japan has changed a lot)"라는 글이다. 두 글 모두 서구 문화(영국, 미국)에서 온 백인 남성의 시각이라는 점은 좀 아쉽지만, BBC 특파원이 지적한 내용을 반박한다는 점에서 일본을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게 도와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번역했다.
내용 외에도 이 글이 상대방의 생각을 깎아내리거나 싸우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건설적인 토론을 위한 반박문이라는 점에서 글의 전개 방법도 눈여겨 보시기를 권한다.
BBC의 루퍼트 윙필드 헤이즈(Rupert Wingfield-Hayes) 기자가 오랜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일본을 떠나면서 쓴 작별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불만스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는 2012년 부터 일본에서 거주하고 일하면서 느낀 인상을 침체와 정체로 요약하면서 "이곳에서 10년을 보낸 나는 일본이 가진 방식에 익숙해졌고, 일본의 이런 방식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역시 일본에서 살았던 사람으로서, 2011년 이후로 매년 한 달씩 머물러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일본의 경제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나는 일본은 분명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중요하고 눈에 띄는 변화다.
윙필드 헤이즈 기자의 글을 살펴보며 그 글이 잘못 전달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게 있다. 나는 윙필드 헤이즈 기자를 만난 적이 없지만 그는 좋은 사람인 것 같고, 일본이 지금보다 더 잘했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비판 중 일부는 정확할 뿐 아니라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장로정치(gerontocracy, 나이 든 사람이 권력을 갖는 구조–옮긴이)가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그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윙필드 헤이즈 기자는 이게 정치에 적용되는 것–나이 든 유권자들 때문에 나이가 많고 경직된 정치 계층이 권력을 유지한다–을 지적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업에서 일어나는 장로정치다. 사실상 일본의 모든 조직에서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는데, 여기에 낮은 창업률과 인구 고령화까지 더해지면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쇠퇴하는 작은 제국을 편안하게 관리하려는 경직된 임원과 관리자 층이 만들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 기업들이 마이크로프로세서, 스마트폰, 반도체 제조, 배터리 방식의 전기차 등과 같은 혁명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면서 외국의 경쟁 업체들에 뒤처지게 되었다.
생산성이 낮고 보잘것없는 일자리가 일본에 넘쳐난다는 윙필드 헤이즈의 지적도 맞다. 슬픈 일이지만 2명이 할 일에 6명을 고용하는 일은 일본에 흔하고, 이게 일본의 임금이 낮고 정체되어 있는 중요한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일본에 새로운 고성장 기업이 없다는 것인데, 그 원인은 연구개발(R&D)의 부족, 스타트업의 마지막 단계(late-stage) 펀딩의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대신 점점 작아지는 국내 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따라서 한때 일본은 미래를 지향했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는 윙필드 헤이즈의 지적은 정당하고, 주요 원인이 노인 정치라고 지적한 것도 옳다. 하지만 일본 전체를 정체되고 멈춘 사회로 묘사하는 것은 크게 빗나간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서구의 독자들이 이런 기사를 읽으면 일본을 1980, 90년대에 반복된 진부한 관점–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 공업의 성공, 거품 경제, 잃어버린 몇십 년 등등–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건들은 분명 중요하지만, 2020년대의 일본이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자, 이제 윙필드 헤이즈가 놓쳤다고 생각하는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이야기해보자.
일본의 끊임없는 건설
윙필드 헤이즈 기자의 주장 중에 가장 동의하기 힘든 것은–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니라면–일본 도시들의 '건설된 환경(built environment)'이 이제는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어진 지 30년 된 건물을 허무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이상하다. 나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 얼마나 많은지에 깜짝 놀란다.
윙필드 헤이즈는 1990년대 초기 일본의 도시 풍경을 그리워한다.
"내가 일본을 난생처음 방문했을 때가 1993년이다 (....) 도쿄는 놀라울 만큼 깨끗했고 질서정연했다 (....) 도쿄는 콘크리트 정글이었지만, 아름답게 잘 가꿔진 콘크리트 정글이었다 (...) 도쿄의 왕궁 앞 스카이라인은 미쓰비시, 미쓰이, 히타치, 소니 같은 일본 대기업의 매끈한 유리 빌딩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도쿄는 1993년의 도쿄보다 그가 하는 묘사에 훨씬 더 가깝다. 도쿄는 내가 20년 전에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아름답게 가꿔진 도시가 되었다. 어수선했던 '시타마치(下町)' 지역들은 현대화되었고, 유행에 뒤떨어진 "쇼와" 풍의 아파트 건물들은 새 건물로 교체되었고, 조각과 장식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게다가 번쩍이는 간판과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처럼 우리가 현대적인 일본과 동일시하는 것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가령, 도쿄의 거대한 빌딩들에 감탄하는 사람이라면 일본의 부동산 기업인 모리빌딩(Mori Building Company)이 도시 곳곳에 짓고 있는 높은 빌딩들을 놓칠 수 없다. 그중 가장 높은 빌딩(아래 사진)은 올해 개장할 예정이다. 하지만 고층빌딩이 전부가 아니다. 쇼핑센터와 바, 클럽, 번쩍이는 간판이 가득한 자쿄(雑居, 잡거) 건물들도 계속 늘어간다.
나는 윙필드 헤이즈 기자가 도쿄에서 10년을 살면서 어떻게 이걸 놓쳤는지 모르겠다.
사실 일본이 건물을 끊임없이 부수고 새로 짓는 건 일본의 임대료가 저렴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이고, 지역 정부가 서구 국가들과 달리 밀집 개발을 멈추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윙필드 헤이즈는 일본의 주택들이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오르는 대신 떨어진다는 불평으로 글을 시작한다.
"일본에서 집의 가치는 자동차와 같다. 집을 사서 이사 들어오는 즉시 부동산 가치는 내가 지불한 금액 이하로 떨어진다. 40년에 걸쳐 주택융자금을 모두 갚고 나면 집의 가치는 거의 남지 않는다. 나는 BBC의 특파원으로 일본에 부임하면서 이 사실을 처음 알고 놀랐는데, 이제 10년이 지나 떠나게 된 지금, 상황은 그때와 똑같다."
이상한 건, 그가 이를 마치 오래전에 고쳤어야 하는데 아직도 고치지 못하는 만성적인 문제처럼 이야기하는 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부동산 가치의 하락은 일본이 가진 강점 중 하나다. 일본인들이 서구와 달리 자기 집을 투자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는 님비(NIMBY) 현상이 서구 사회에서만큼 흔하지 않다. 일본인들은 부동산의 가치가 어차피 0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부동산 가치를 떨어뜨릴지 모르는 지역의 개발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 결과, 일본의 도시들은 지방에서 대도시로 인구 유입이 계속되어도 주거 비용을 떨어뜨릴 만큼 충분한 주택을 건설할 수 있었다. 만약 일본이 침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래 표에서 일본과 서구의 도시들을 비교해 보라.
'반론: 일본은 달라졌다 ②'에서 이어집니다.
무료 콘텐츠의 수
테크와 사회, 문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냅니다.
유료 구독자가 되시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