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반도체인 H20 칩의 중국 수출을 허가했다. 이유는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중국의 화웨이가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중국의 대미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해제하게 하려는 중국과의 딜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적당한 수출을 통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에도 이미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H20 칩의 수출을 제한했다가 약 3개월 후에 이를 해제했다. 그럼, 트럼프는 H20 칩 수출 제한을 중국의 희토류 수출을 해제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한 것뿐일까?

그렇지 않다. 중국이 자국 희토류의 미국 수출을 제한한 시점은 4월 4일로,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항상 그러듯, 트럼프는 자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한 것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은 허용했던) H20 칩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는 '대(對)중국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었고, 문제에 부닥친 기업, 국가들이 자기에게 찾아와 협상을 요구하는 모습을 자기에게 힘이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일으킨 소동이 가라앉고 나면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바뀐 것도, 해결된 문제도 없다.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다른 나라들이 기어와서 내 엉덩이에 입을 맞춘다"고 자랑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렇게 무대 위에서 쇼를 할 때 커튼 뒤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들은 그의 투정을 어떻게 달래고, 어떤 끈을 동원해서 그가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할까? 엔비디아의 H20 칩의 수출 재개는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뉴욕타임즈에서 실리콘밸리의 테크 업계를 집중 취재하는 트립 미클(Tripp Mickle) 기자가 이를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한 기사가 있다. 미클 기자는 트럼프는 왜 돌연 태도를 바꿨느냐는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잠깐, 미국 정부가 수출을 규제하는 엔비디아 칩을 살펴보면, 바이든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고성능 AI 칩인 A100, H100 등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 제한 방식은 칩의 성능 스펙을 정해 두고 그걸 넘으면 수출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엔비디아는 성능을 낮춘 중국 맞춤형 칩인 H20, L20, L2 등을 개발해서 중국에 수출했다. 하지만 당시 H20은 H100보다 성능은 낮지만 메모리 대역폭이 뛰어나 여전히 AI 추론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트럼프가 수출을 규제한 것이 바로 H20 칩이다.
트립 미클 기자는 2022년에 스티브 잡스 이후의 애플을 다룬 책 'After Steve'를 펴냈다. 이 책의 부제는 '애플은 수조 달러의 기업이 되면서 영혼을 잃었나'이다.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둘로 나뉜다. 이를 미국의 안보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하나고, 자유 무역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다른 하나다. 자유 무역이 미국을 망쳤다고 믿는 트럼프는 항상 전자에 속했다. 대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와서 공학을 공부하고, 엔비디아를 설립해 최첨단 칩을 만들어 파는 젠슨 황(Jensen Huang)은 많은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후자에 속한다. 황은 바이든의 수출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트럼프는 바이든의 규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H20 칩 수출 재개에 합의하게 되었을까?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에 익숙하지 않았던 젠슨 황은 트럼프의 취임식 때부터 그와 어긋나기 시작했다.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취임식 당일 (다른 나라도 아닌) 중국에 있었다. 다른 정치인도 그렇겠지만, 특히 그런 일로 자존심에 쉽게 상처가 나는 트럼프(아래에 그런 사례가 또 나온다)의 눈에 좋게 보였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프는 엔비디아가 그나마 중국에 수출하고 있던 H20 칩의 수출을 불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황은 자기가 가장 싫어하는 일, 즉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에서 30년 가까이 사업을 해온 젠슨 황이 워싱턴 DC를, 그것도 백악관을 찾아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엔비디아도 다른 기업들처럼 워싱턴에 사무소를 내고, 공화당을 전담할 로비스트를 고용하기로 한다.

테크기업들은 덩치가 커지고, 정부의 다양한 규제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로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구글(알파벳)도 로비스트를 처음 고용한 것은 2009~2010년쯤이다. 빅테크의 로비 비용은 그 기업이 정부 규제에 얼마나 민감하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4년 기준으로 메타가 가장 큰 비용(2,420만 달러)을 썼고, 아마존(1,760만 달러), 알파벳(1,210만 달러)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에 비하면 마이크로소프트(950만 달러), 애플(770만 달러)은 적은 편이다.
현 행정부 내에서도 트럼프의 과격한 무역 정책을 가장 진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은 중국에 대해 불신을 숨기지 않았고,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이 더 이상 중국의 AI 개발을 돕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정부 부처가 아닌 백악관을 상대로 한 로비는 단순히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되는 게 아니었고, 젠슨 황이 트럼프를 직접 만나야 할 문제였다. 그때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 황에게 트럼프의 집인 플로리다주 마라라고(Mar-a-Lago) 리조트에 와서 트럼프를 직접 만나서 호소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트럼프가 정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여는 만찬—1백만 달러, 14억 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 참석할 수 있다—에 오라는 것이었다.

황은 이를 수락하고 플로리다에 가서 트럼프를 만난다. 그 자리에서 그는 H20 칩의 성능이 대단한 게 아니니 중국에 수출해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듣던 보좌관들은 황이 트럼프에게 그 칩의 성능을 지나치게 낮춰서 설명했다고 생각했고, 트럼프는 H20 칩의 수출을 막아버린다. 황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끈

과거에 만난 적이 없던 트럼프를 만나서 저녁 식사 한 번에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젠슨 황은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하고 트럼프의 백악관 AI 및 가상화폐 총책임자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를 만났다.

색스는 실리콘밸리의 전설 같은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자, 일론 머스크의 오른팔 같은 존재다. 그가 AI나 가상화폐를 정말로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머스크가 엔지니어들과 회의를 할 때 색스가 들어오자 "못 알아들은 얘기니 나가라"고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아직 트럼프와 사이가 좋던 시절에 머스크가 백악관에 심어 놓은 인맥이자, 트럼프의 바로 옆에서 실리콘밸리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옆에 배석한 데이비드 색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에 따르면 색스는 현재 행정부에서 테크 관련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벤처 투자자이자, 리버태리언(자유방임주의자)인 그는 엔비디아의 AI 칩을 중국에 팔지 않는다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는 황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더 나아가, "미국 기업이 AI에서 최선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기술이 최대한 빨리 세계에 퍼져야 한다"는 주장을 트럼프 주위에 퍼뜨렸다. 미클 기자는 이게 실리콘밸리 특유의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익숙한 제품, 플랫폼을 계속해서 사용한다. 아이폰을 사용하던 사람이 폰을 바꿀 때 아이폰을 사고,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하던 사람이 윈도우 컴퓨터를 사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 엔비디아의 칩 수출을 막을 게 아니라, 열심히 팔아서 의존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지난 5월 중순, 트럼프가 중동 지역을 순방하면서 아랍에미리트(UAE)에 들러 AI 반도체와 기술 협력과 관련한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이 딜에 따르면 미국은 UAE로부터 2,000억 달러(약 280조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UAE는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H100 포함)을 연간 50만 개까지 수입할 수 있는 대규모 딜이었는데, 젠슨 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대규모 거래는 트럼프의 브랜드와 같은 거라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게 성사되면서 트럼프는 젠슨 황의 엔비디아가 '미국의 승자'를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트럼프는 발표장에서 "젠슨 어디 있느냐"며 그를 찾아 일어나라고 하며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서 "(애플의) 팀 쿡은 여기에 없는데" 황은 있다고 굳이 둘을 비교하는 말을 한다. 황은 이때 트럼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트럼프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지 배웠다.

트럼프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자유무역보다 보호무역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그는 자기가 힘을 발휘할 수 없는—혹은 자기의 권력을 제한하는—국제 조약을 싫어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힘을 개인적인 힘으로 축소시켜서 사용하고 싶어 하고, 외국 정상이나 기업가들이 자기 앞에 와서 직접 부탁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황은 이달 중순, 트럼프를 다시 찾아가서 지금은 대만에서 만들고 있는 칩을 미국에서 제조하겠다고 했다. 그게 정말로 실현 가능한 일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황은 그런 말로 트럼프의 마음을 사는 데는 성공했다.

백악관을 찾아간 젠슨 황

화웨이의 위협

하지만 젠슨 황이 트럼프의 환심을 산 것만으로 그의 생각을 바꿨다고 볼 수는 없다. 트립 미클 기자에 따르면 데이비드 색스와 젠슨 황은 중국 빅테크의 상징 같은 화웨이(Huawei)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트럼프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만약 중국의 AI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제품을 사지 못할 경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화웨이가 만든 성능이 떨어지는 칩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화웨이는 그렇게 번 돈을 연구와 제품 개발에 투입해서 점점 더 빠르고 강력한 칩을 만들어 낼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엔비디아가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 미국의 잠재 수익을 놓치는 것만이 아니라, 화웨이에게 엔비디아를 추격할 자금을 주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화웨이는 엔비디아, 즉 미국 기업을 추월하게 된다.

화웨이의 위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데이터센터와 인프라에 AI가 적용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엔비디아의 칩을 사용할 수 없다면 그 빈 자리를 중국 기업의 기술이 채우게 될 것이다. 황과 색스는 중국이 사용하게 될 AI 기술이 미국의 기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즉, 중국에 선두를 뺏길 수 있다는 트럼프의 두려움을 자극한 것이다.

미클 기자는 이 상황을 미국의 나스카(NASCAR) 자동차 경주 대회에 비유한다. 각 팀은 자기만의 자동차를 제작해서 참여하는데, 헨드릭 모터스포츠(Hendrick Motorsports) 같은 팀은 자체 엔진을 만들어 사용할 뿐 아니라, 경쟁 팀에도 판매한다. 그렇게 올린 수익으로 더 나은 엔진을 개발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자기들이 만든 엔진을 상대로 경쟁하는 것이다. 뛰어난 팀이지만,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때로는 자기 엔진을 사용하는 다른 팀에 패한다.

"경주에는 엔진 외에도 다른 변수가 많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자동차 경주는 한 번 졌다고 끝이 아니죠. 그런데 AI 기술은 무기를 비롯한 많은 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AI 칩의 공급을 통제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 외에도 미국이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많아요. 미국의 AI 칩의 수출 재개는 큰 도박입니다." 🦦

나스카 경주 중 일어난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