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KND |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
• 댓글 남기기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무력충돌이 휴전 협정으로 간신히 멈췄다. 그런데 이 충돌이 열흘이 넘게 이어지면서 민간인 사상자들이 나오는 동안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폭격 중지(cease fire)를 공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막후에서는 "조용히, 열심히(quiet, intensive)" 중재를 위한 외교전을 벌였다고 말하면서도 폭격을 당장 중단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비아랍계 우방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미국 내 정치의 문제가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많은 의원이 유대계거나 친 이스라엘 정치인이고, 뉴욕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유대계 유권자들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보수 기독교인들도 (다소 이상한 이유로)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거기에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여전히 살아있고, 최근 들어 아시아계 혐오와 함께 미국에서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싸운다고 주장하는 무력충돌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한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주 WKND에서는 이 난감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몇 가지 목소리(혹은 전략)를 소개한다.
1. 조 바이든 대통령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이번 사태를 주도했다는 비난을 받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80년대, 아직 두 사람 모두 정치 신인이던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다가 양국의 정상이 된, 각별한 사이다. 바이든은 부통령이던 시절, "비비(네타냐후의 애칭), 자네가 말하는 건 하나도 동의를 못 하겠지만, 나는 자네를 좋아하네(Bibi, I don’t agree with a damn thing you say, but I love you)"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말을 했던 2014년에도 이슈는 이번과 똑같은 유대인들의 정착지를 팔레스타인 거주지로 확대하는 문제였다. 정착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야 하고, 그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이를 진압하면서 무력충돌이 생기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로켓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이를 이유로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벌이며 좁은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위치한 하마스 본부를 파괴하는 과정에 민간인들이 사망한다. 디테일은 조금씩 달라도 비슷한 과정이 반복됐다.
바이든이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폭격 중지를 요구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하마스가 수천 발의 로켓을 쏘았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는 "다른 나라가 미국 수도에 수천 발의 로켓을 쏘고 있는 상황이면 당신들도 우리와 똑같은 반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사실 미국이었으면 훨씬 더 강력한 반격을 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2. 존 디커슨 CBS 앵커
네타냐후의 논리는 훌륭해보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에는 결국 일이 이렇게 진행될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왜 정착지를 확대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질문을 해야 한다. CBS의 앵커 존 디커슨이 바로 그 질문을 했다.
영어를 잘 하는 네타냐후는 종종 미국 미디어에 나와서 (앞서 말한 것 같은) 자신의 논리를 펴곤 하는데, 10분이 좀 넘는 인터뷰 말미에 진행자 디커슨이 돌직구를 던졌다. "국내에서 총리께서 겪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에 관해서 물어보겠다"면서 "당신은 현재 뇌물과 사기, 배임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23개월 동안 정부 구성에 실패했는데" 현재 (팔레이스타인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일이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거다.
당연히 네타냐후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했다. 자신이 군인이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부정했다. 물론 이런 주장은 진위를 판단하기 힘들다. 본인이 아니라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자 디커슨은 뛰어난 인터뷰 실력을 발휘한다. "네, 그런데 그 비판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런 비판이 계속 나온다고 보십니까?"
네타냐후는 "내가 계속 선거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지만, 시청자들은 그 대답에 별로 수긍하지 못했다. 질문 자체가 이미 많은 답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3. 앤드류 양 뉴욕시장 후보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월스트리트가 있고, 미국의 미디어 기업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 도시의 시장 선거는 웬만한 연방의원 선거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뜨겁다. 그런데 뉴욕은 "쥬욕(Jew York)"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유대계가 많은, 미국 최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대계의 지지를 받지 않고 시장에 당선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유대계 미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대계 중에서도 정통파(Orthodox) 유대계는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공립학교와 다른 커리큘럼을 요구하는 자체 교육기관인 예시바(yeshiva)는 뉴욕시와 줄다리기를 하는 뜨거운 이슈이고, 팬데믹 기간 중에 집회금지를 명령한 뉴욕시에 반발해서 트럼프 깃발을 휘두르며 경찰과 대치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그 어떤 유대계보다 친 이스라엘 성향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아랍계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거대한 유권자 블록을 구성하고 있는 뉴욕에서 시장에 출마해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앤드류 양이 이번 무력충돌과 관련해서 아무런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이 상황에서 양은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완전히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 "나는 포격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이고, 테러리스트 집단인 하마스를 규탄한다"고 말한 것이다.
앤드류 양은 뉴욕에서 시장이 되기 위해 유대계들의 품에 안긴 것이다. 유대계와 중국계는 미국에서 문화적으로 서로에게 특이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앤드류 양의 발언은 그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혹은 그가 중동 정치의 가장 기초적인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앤드류 양은 시장이 되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거다.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이고, 무슬림 의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즉각 양을 규탄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실망했다" "지지를 거둔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양은 자신의 말을 오해하지 말아달라면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지만, 여전히 유대계 유권자를 원하고 있다. 위의 트윗을 지우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그리고 뉴욕의 정통파 유대계들은 그런 앤드류 양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뉴욕타임즈는 "앤드류 양은 어떻게 정통파 유대계가 모여있는 브루클린을 따냈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앤드류 양의 철저한 계산을 설명했다. (이 신문은 뉴욕시장 후보로 앤드류 양이 아닌 다른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있다).
4. 노먼 핑클스틴 교수
국제 문제를 해결하라는 압력을 받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뉴욕에서 시장이 되려는 앤드류 양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해서 득이 될 가능성이 적다.
욱일기를 닮은 문양에도 피가 끓어오르는 한국인의 정서를 생각하면 수 세기에 걸쳐 받은 탄압이 DNA에 새겨지다시피 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랍국가들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하는 선택을 무작정 비난하기도 힘들고, 나라를 빼앗긴 경험을 한 입장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동정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는 분명한 답이 없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물러나 있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유대계라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비난할 수 있다. 당사자이기 때문에 오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다. 물론 그래도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반유대주의라는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이 노먼 핑클스틴 (전직) 교수다. 나치의 수용소에 감금되었던 경험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핑클스틴은 "이스라엘의 행위는 나치가 한 것과 똑같다"면서, "나치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탄압받는 팔레스타인 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계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아래는 그런 핑클스틴이 몇 년 전 한 대학교 강연에서 이스라엘을 나치에 비유하는 말을 했다가 일부 청중으로부터 항의를 받는 영상이다. 한 학생이 눈물까지 흘리며 "이스라엘을 나치에 비유하는 것은 독일인과 유대인들을 모두 모욕하는 일"이라며 항의하자, 핑클스틴 교수는 그 학생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의 부모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부모 양쪽 집안이 모두 나치에 희생당했다"면서 "내 부모님의 가르침 때문에" 자신은 유대인들이 겪은 희생을 팔레스타인을 고문하고 탄압하고, 그들의 거주지를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규탄하며, "눈물로 내 입을 막으려 하지 말라"고 외친다. "당신에게도 심장(마음)이 있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