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실 계획이 있나요?

제 친구들이 전부 은퇴하고 있어요. 심지어 저보다 젊은 사람들도 은퇴하는데 이 사람들과 대화가 쉽지 않아요. 제가 "요새 뭐하느냐"라고 물으면 "은퇴했죠"라며, "선생님은 뭐하세요?"라고 물어요. 제일 거슬리는 게 뭔지 아세요? "아직도 만화를 (직접) 그리세요?"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저는 그 사람들이 다른 만화가들이 저처럼 작가 자신을 표현하는(personal) 만화, 작가 자신과 밀접한 형태의 창의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저도 그냥 나가서 사람 하나 구해서 대신 작업시킬 거라고 넘겨짚는 건 모욕적인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물론 훗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냥 제가 자기중심적인(egotistical) 성격이라 남에게 맡기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말아요.

생각하기 싫으실 옵션이긴 하지만, 정말 은퇴하고 싶으시면 그냥 만화를 끝내는 방법도 있잖아요.

아, 물론이에요. 언제든지 만화 연재를 끝낼 수 있어요.

하지만 원하시지 않겠죠. 일은 선생님 삶의 중요한 일부일 테니까요.

저는 만화 말고 할 줄 아는 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매일 골프를 치고 싶지도 않고요. 제가 그만하고 싶은 건 사실 (만화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 스튜디오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귀찮은 요청들이에요. 그림을 그려달라거나 특별 출연을 해달라는 것 같은 부탁 말이죠. 그래서 그런 요청을 거절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거절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아내에게 "오늘 저녁에만 세 개를 거절했어!"라고 했어요. (웃음) 그 정도면 꽤 괜찮다고 생각했죠.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거절하시는 게 힘드세요?

아주 힘들어요. 특히 저는 오토그래프(autograph, 흔히 유명인에게 부탁하는 "사인"이 오토그래프. 하지만 사인만 하지 않고 받는 사람에게 하는 짧은 메시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signature와 구분한다–옮긴이)를 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지만 오토그래프는 정말 싫어요. 그걸 해주는 것 자체도 힘들고 귀찮은데 (거절하면) 죄책감을 느껴야 해요. 사람들이 그걸 부탁했는데 안 하겠다고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더라고요.

오토그래프가 싫은 이유는 뭔가요? 뭔가 메시지를 생각해내야 하는 것 때문에 그러세요, 아니면 그런 걸 하는 걸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느껴지시나요? (이 질문에서 진행자 테리 그로스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공감한다–옮긴이)

글쎄요, 손이 떨리는데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냥 피곤해요. 껌종이에 오토그래프를 해달라고 하면 누가 하고 싶나요? (두 사람 웃음) 한번은 어떤 사람이 백화점 주차장에서 제 옆으로 차를 몰고 지나가면서 "찰스 슐츠 아니세요?" 하는 거예요. "네, 맞아요" 했더니 "오토그래프 하나 받을 수 있을까요?" 하더라고요. 차를 멈추지도 않고 지나가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이건 너무 하잖아요!"하고 그냥 하던 걸음을 계속했어요. (웃음)

손이 떨린다고 하셨는데, 오토그래프 때 손이 떨리면 창피하세요? (테리 그로스는 이런 질문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처음에는 뻔한 건데 난감하게 왜 굳이 물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넘겨짚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고, 이런 질문으로 인터뷰이가 다른 데서는 하지 않은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많다—옮긴이)  

네, 아주 창피합니다. 오토그래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스누피를 작게 하나 그려주고 싶은데 손이 떨리니까 창피하죠.

손떨림이 집에서 만화를 그리는 데는 방해가 되지는 않나요?

예전보다 (손떨림이) 더 악화된 건 아닌데 그래도 (그림 그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듯이 하고 작업을 합니다. 예전에 하던 것만큼 빠르게 그리지는 못해요. 예전엔 펜으로 상당히 빠르게 그렸고 그렇게 펜으로 제가 그린 선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조심해서 그려야 해요. 하지만 좀 더 천천히 그리면 돼요. (만화 속) 글씨를 쓸 때도 아주 천천히 쓰지만 지금도 글씨는 아주 분명하게 잘 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슐츠 후기의 그림체는 손떨림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이미지 출처: Schulz Museum)

피너츠가 아닌 다른 만화를 그려보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그랬어요. 다른 만화를 그릴 일은 없겠지만, 진짜 아이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죠. 제가 항상 그리는 것처럼 조그만 몸에 커다란 머리를 가진 과장된 캐릭터가 아니라 사실적인 모습으로 말이죠. 그렇게 해서 뭔가 의미 있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만화가들이 작업해야 하는 공간이 워낙 작아서 그런 그림을 그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피너츠에 대한 의리도 다른 작품을 만드는 걸 꺼리게 되는 이유일까요?

네, 제가 지금 그리고 있는 만화를 좋아하니까요. 제가 하는 생각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모두 피너츠에 사용할 수 있어요. 황당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는데 피너츠에 사용할 수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피너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만으로 제가 떠올리는 아이디어들을 모두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기독교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구절처럼 꽤 심각한 것들부터 아주 유치한 아이디어까지 말이죠. 정말 유치하다면 스누피에게 주면 됩니다. 그럼 스누피는 우드스톡(스누피의 친구인 노란 새–옮긴이)에게 그 황당하고 유치한 얘기를 들려주고, 둘은 배꼽을 잡고 웃다가 개집에서 떨어지는 거죠. (두 사람 웃음) 그런 게 재미있어요. 만화라는 게 그런 걸 하라고 있는 거니까요.

만화가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medium, 수단)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화로 TV 배우나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와 그들의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만화가는 그들이 못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화 캐릭터들은 뒤로 자빠지고 실제 배우들이 할 수 없는 걸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배우들은 만화가 못하는 걸 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만화가는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이해해야 합니다.

찰스 슐츠 씨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위의 인터뷰는 1990년에 방송된 것이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2000년 2월에 슐츠는 세상을 떠난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자신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마지막 편을 그렸고, 이 스트립이 신문에 게재되기 하루 전에 숨을 거뒀다. 아래가 그 내용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저는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을 거의 50년 동안 그리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제 어린 시절 꿈을 이룬 거죠. 아쉽게도 저는 이제 더 이상 매일 만화를 그리는 일정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들은 이 만화가 다른 작가의 손으로 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은퇴를 선언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저를 충실하게 도와준 편집자들과 이 만화에 놀라운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찰리 브라운, 스누피, 라이너스, 루시... 저는 이 아이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찰스 M. 슐츠
조지아주의 대표적인 신문인 애틀랜타 저널 컨스티튜션은 이날 만화면을 피너츠 특집으로 구성했다. (이미지 출처: e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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