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가 말하는 슐츠 ③
• 댓글 남기기피너츠 전에는 어떤 걸 그리셨죠?
만화 몇 개를 시도해봤어요. 이런저런 이유에서 저는 (프랑스) 외인부대에 관한 만화도 그려보려고 했어요. (둘이 함께 웃음) 스누피가 외인부대를 이끌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내용이 등장하는 게 그래서예요.
슐츠가 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가 십 대 시절에 나온 헐리우드 영화 보 게스티(Beau Geste)가 인상에 깊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청소년/청년기에 즐겨 듣던 노래는 평생 잊지 못한다는 reminiscence bump 현상 아니었을까? 이유가 어쨌든 스누피는 게리 쿠퍼(Gary Cooper)가 주연한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 내고 있다.
톰보이(tomboy, 남자아이처럼 행동하는 여자아이) 같은 여자아이 캐릭터도 하나 시도해봤는데 별로 반응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시도하면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에 그림을 몇 개 팔다 보니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 제가 아이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그리면 반응이 좋더라는 겁니다. 신문 편집자들이 이런 걸 제일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죠.
찰리 브라운, 혹은 찰리 브라운과 같은 캐릭터를 제일 먼저 사용한 만화 스트립(strip, 사각형이 이어진 만화 한 줄)이 뭐였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나요, 아니면 (피너츠와는) 다른 초기 버전이 있었나요?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처음 유나이티드 피처스(United Features, 만화 같은 콘텐츠를 여러 신문사에 공급하는 신디케이트–일종의 에이전시–중 하나로, 신문 만화가들은 보통 이들과 계약해서 콘텐츠를 제공한다)에 지원할 때는 한 장 짜리 패널(우리나라 신문의 만평처럼 한 장면 짜리 만화)을 제출했었기 때문에 정해진 캐릭터가 없었어요.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하러 뉴욕에 있는 사무실에 가면서 만화 스트립도 대여섯 개 가져갔어요. 에이전시들에게 제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연습하던 거였죠. 그런데 그것들을 보자마자 즉각 자기네는 패널보다 스트립 만화가 훨씬 더 좋다는 거예요. 신문사에 팔기가 더 용이하다는 거죠. 그러니 계속 등장할 캐릭터들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문제없다고 했죠. 저는 제가 조그만 개를 그리기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집에 돌아가자마자 친구인 찰리 브라운에게 네 이름을 써도 되겠냐고 물었고, 찰리는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패티(Patty)와 셔미(Shermy, 초기에 등장하다 사라진 캐릭터)를 추가했죠. (스누피를 포함해) 그렇게 네 주인공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만화는 제가 그리지 않았다면 좋았겠다고 후회하는 스트립입니다. 셔미와 패티가 길가에 앉아있는 장면인데, 멀리서 찰리 브라운이 다가오는 걸 봅니다. 셔미는 "저기 찰리브라운이 온다"라면서 "그렇지, 굿 올 (good ol') 찰리 브라운" 하더니 찰리 브라운이 지나가자 "나 저 인간이 싫어!"라고 말합니다. 그런 식의 내용이 제가 당시에 그리던 건데요, 지금이라면 절대 만들지 않았을 내용입니다.
굿 올(good ol'혹은 good ole)은 good old의 옛날식 발음으로, 오랜 세월 동안 잘 알고 지낸 인물을 묘사할 때 애정을 담아 쓰던 표현이다.
왜 후회하시죠?
음, 그런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저 인간이 싫어(How I hate him)'라는 말은 너무 지나칩니다. 요즘 같으면 더 부드럽게 표현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만화를 신디케이트에 처음 보냈을 때 그쪽에서 '피너츠(Peanuts)'라는 제목을 들고 나왔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 이름이 싫으셨다고요.
아마 만화 제목으로는 최악의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 말을 꼭 해요. 복수를 하고 싶거든요. 그 이름은 너무나 부적절하고, 제가 그리는 내용과 전혀 무관합니다. (이 인터뷰에서 슐츠가 가장 강한 목소리를 사용하는 대목이었다–옮긴이) 하지만 신디케이트에서 일하던 사람들은–그분들은 아주 좋은 분들이었고, 제가 많은 신세를 졌고, 훗날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지만–제가 당시 어떤 걸 그리려고 하는지 아무런 이해가 없었어요.
신디케이트의 편집자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림을 가지고 찾아와)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사람과 그 사람이 가져온 그림을 보고 그 잠재력을 알아내야 하는 거니까요. 이 사람이 이 일에 정말 열심인지(a fanatic) 아니면 그냥 재미 삼아(for a lark)하는 건지 그 자리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진심이고 열심인 사람을 알아봐야 하는 거죠. 제가 찾아갔을 때 제 말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어요. (슐츠는 자신이 그리려는 그림이 하찮은 내용이 아니라는 걸 회사가 눈치챘어야 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옮긴이)
다행이었던 것은 제목은 만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뽀빠이(Popeye) 만화의 제목이 사실 심블 시어터(Thimble Theatre)라는 걸 아는 사람이 있나요? 제목은 중요하지 않죠.
피너츠라는 이름이 어때서요?
우선 피너츠라는 건 하찮은 것을 의미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죠. (실제로 영어에서 '푼돈'을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옮긴이) 무엇보다 피너츠는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사람들이 오해할 거라고 말했어요. 나중에 보니 제 걱정이 맞았어요. 제 만화를 본 사람들이 (찰리 브라운의 이름을 피너츠라고 착각하고) "지난번 만화에서 피너츠가 자기 강아지랑 노는 장면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면 아주 미치겠더라고요. (함께 웃음)
그럼 어떤 제목을 원하셨어요?
제 생각에는 '굿 올 찰리 브라운'이라고 하면 좋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냥 '스누피'가 제일 좋은 제목이었을 거라고 깨닫게 되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스누피가 주인공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에는 그럴 줄 몰랐죠.
나는 어릴 때 다들 '스누피'라고 부르던 만화가 '피너츠'라는 사실을 커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만화의 제목을 틀리게 부르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슐츠의 설명을 듣고 보니 사실은 사람들이 무심결에 슐츠가 원하던 대로 부르고 있었던 거였다.
그림을 대신 그려줄 (조수) 만화가들을 고용하신 적이 있나요? 대부분의 만화가들이 그렇게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하느니 그냥 그림을 그만 그릴 거예요. 제가 잠시 아파서 그림을 한동안 일정에 맞춰 발행하기 힘들게 된다면 그냥 만화를 잠시 중단하고 다 나은 후에 다시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심장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저는 미리 열심히 그림을 그려서 3개월 분량의 그림을 완성해두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회복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거든요. 나중에 보니 한 달이면 충분했더라고요. 하지만 제 만화는 저 외의 다른 사람이 그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만화는 제 자신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조수와 함께 일하는 다른 만화가들을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조수가 필요한 만화가들은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손대는 걸 원치 않아요. 제 아이들도 똑같이 생각해요. 아이들은 신디케이트 계약서에 제가 은퇴하거나 세상을 떠나면 이 만화도 중단되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으라고 고집했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 아빠의 그림을 그리는 걸 원치 않아요"라는 게 그 아이들의 말이었어요.
'슐츠가 말하는 슐츠 ④'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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