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rlboss
• 댓글 남기기지난주 내내 메타의 COO 셰릴 샌드버그가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이 큰 화제가 되었다. 샌드버그가 회사를 떠나려 한다는, 혹은 떠나야 한다는 얘기는 지난 몇 년 동안 끊임없이 나왔기 때문에 특별히 놀랄 뉴스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샌드버그가 하고 있던 실질적 역할과 갖고 있던 상징성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거대 테크 기업들 중에서 여성 임원으로서 샌드버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무대 뒤에서가 아닌) 전면에서 수행해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샌드버그의 퇴임에 관심이 몰리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머리사 마이어도 샌드버그와 비슷하게 구글 초기에 입사해서 성장한 후 다른 기업의 임원(야후의 CEO)으로 옮겨가서 큰 재산을 모았지만 이미 기울어가던 회사를 살려내지는 못했다. 메그 휘트먼과 칼리 피오리나의 경우 모두 HP의 CEO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HP는 두 사람이 이끌기 전에 이미 업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대기업이었다. 거대 조직을 이끄는 일은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불과한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키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이고,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일은 (백인) 남성만이 할 수 있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궁극의 걸보스
'하지만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가 세워서 이끄는, 저커버그의 회사 아닌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샌드버그는 한 번도 페이스북, 메타의 CEO를 맡은 적이 없고 CEO인 저커버그에 이은 서열 2위의 COO였는데, 이 기업 성공의 수훈갑은 저커버그 아니냐고 할 수 있다. 메타는 저커버그가 탄생시킨 게 맞다. 초기에 페이스북의 웹사이트와 알고리듬을 만들고, 이를 미국 대학가에 유행시킨 역할을 저커버그가 한 거다. 하지만 그 정도의 바람을 일으키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소셜미디어는 얼마든지 있다. 페이스북은 그 단계에서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 기업, 소셜미디어의 대명사로 퀀텀 점프를 하는 데 성공한 기업이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 준 사람이 셰릴 샌드버그다.
정확하게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에서 어떤 일을 해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저커버그일 거다. 샌드버그의 퇴임 발표 후에 저커버그와 샌드버그가 직원들과 한 대화를 기록한 문서(내부용이지만 당연히 전문이 유출되었다. 여기에서 모두 읽어볼 수 있다.) 중에서 특히 이 대목이다:
(셰릴이 합류할 때만 해도) 저는 23살이었고, 회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에게는 훌륭한 제품이 있었습니다. 그 제품은 모바일 앱이 아니라 웹사이트였고, 그냥 페이스북이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훌륭한 제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로 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는 좀 있었는데 광고를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당시만 해도 엉성한 스타트업에서 진짜 기업 조직으로 변신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셰릴은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의 광고 비즈니스를 만들어냈고, 뛰어난 인재들을 채용했고, 우리의 경영 문화를 만들어냈고, 저와 이 회사의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를 경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 회사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고 오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을 만들어낸 것(이 셰릴이 한 일)입니다.
샌드버그가 해냈다는 일들을 보면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한 스타트업을 유니콘으로 만들고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진짜' 작업들이다. 스타트업을 해봤거나 스타트업에 투자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수익 만들기, 인재 채용, 조직 문화 만들기, 경영 프로세스 구축은 성공한 스타트업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느냐를 가르는 장벽으로, 많은 창업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를 풀지 못해 사업을 접거나,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멘토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흔히 본다.
여성이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업계의 성공한 남성 멘토에게서 배워야 하고, 뛰어난 남성 구루(guru)가 이끌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팽배한 세상에서 셰릴 샌드버그는 그 역할을 뒤집은 사람이다. 실리콘밸리에 좋은 여성 CEO가 있고, 좋은 여성 멘토도 많지만 제멋대로 운영되던 스타트업을 큰돈을 버는 업계 일인자로 만들어준 여성을 찾는 건 쉽지 않다. 따라서 샌드버그가 궁극의 걸보스(girlboss)라 불리는 건 당연해 보인다. 참고로, 걸보스라는 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여기에서 읽어볼 수 있다. 동명의 책이 나온 2014년(한국어판은 2015년) 즈음이 샌드버그 명성의 최고점이었던 것도 완전히 우연은 아니다.
시기를 놓친 퇴임
하지만 셰릴 샌드버그가 지금의 메타를 만든 장본인이라면, 메타라는 기업이 가진 문제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좋은 결과에 대한 공로와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샌드버그가 나중에 드러난 페이스북/메타의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기를 원했다면 2014년 즈음이 그가 페이스북을 떠날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흥미롭게도 2008년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에 합류하던 시점만 해도 그는 약 5년 정도만 페이스북에서 일하고 나올 생각이었다고 한다.)
페이스북의 초창기 직원들을 갑부들로 만들어주면서 실리콘밸리 일대의 부동산 가격을 치솟게 만들었다는 페이스북의 성공적인 IPO는 샌드버그의 경영 개선과 지휘 없이는 불가능했다. (참고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최우수 졸업을 한 샌드버그의 멘토이자 논문 지도교수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등장하지만 윙클보스 쌍둥이가 저커버그와의 분쟁 때문에 찾아간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 서머스였다.) 그렇게 2012년에 IPO를 성공시키고, 2013년에 '린 인'을 통해 실리콘밸리의 실력자이자 젊은 여성 직장인들의 롤 모델로 떠오른 후 주가가 최고점으로 올랐을 때가 2014년이었다.
영국의 브렉싯(Brexit)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한 '캠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의 시작은 사실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을 전후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와 인터넷 기술은 온 세상을 좋은 곳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소셜미디어가 이끈 혁명이라고 불린 '아랍의 봄'은 2010~2012년 사이에 일어났다) 그런 환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2015년 즈음이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이를 눈치챈 사람은 많지 않았고, 2016년에 브렉싯이 현실이 되고,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난주 샌드버그가 퇴임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지금이냐"라고 물었던 건 정확하게 말해 "왜 지금까지 기다렸느냐"라는 의미다. 2014년에 사람들이 박수 칠 때 떠났어야 그가 쌓은 명성과 평판을 다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어야 다음에 하려는 일에 훨씬 더 임팩트를 줄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거다.
샌드버그가 2014년까지 쌓아온 명성에 어떤 흠집을 냈는지는 이 글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그의 성과가 가진 이면이다. 사용자의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기반으로 구축한 광고 비즈니스 모델은 페이스북과 광고주에게만 유용했던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허위 정보를 퍼뜨려는 세력에게도 유용했고, 이런 일들이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벗겨지는 동안 샌드버그는 회사의 편에 서서 회사를 옹호해야 했다. 카라 스위셔는 뉴욕타임즈의 칼럼에서 이를 두고 "방어할 수 없는 일을 방어하는 최고 방어책임자(the company’s chief defender, often of the indefensible)"로 바뀌었다고 묘사했다.
Weapons of Mass Distraction
여기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있다. 아무리 샌드버그가 광고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회사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을 옹호하느라 비난을 받았어도, 이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하는 사람은 CEO인 저커버그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몇 년 동안 페이스북이 받은 비판의 대부분은 저커버그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이 페이스북/메타를 미워할 때 그 기업의 얼굴은 항상 저커버그였고, 그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커버그가 갈수록 여론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고 정치권과 언론의 공세에 대해 전투적인 방어자세를 취할 때마다 이런 견해를 전달해야 하는 사람은 샌드버그인 경우가 흔했다.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이 반드시 그걸 해야 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C-레벨 경영진의 경우 각자의 영역을 칼같이 나누기 어려울 때가 많다) 저커버그는 샌드버그가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평판 자본(reputation capital)'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샌드버그가 "페이스북은 최선을 다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하는 것이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잘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NYU의 스캇 갤로웨이는 이를 두고 "저커버그가 샌드버그를 WMD(weapons of mass distraction, 핵심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무기)로 사용했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샌드버그가 2015년, 아니 2016년에만 페이스북을 떠났어도 민주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에도 출마할 수 있었을 사람이지만 저커버그가 그를 페이스북의 방패로 사용하면서 샌드버그의 브랜드에 커다란 흠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도 갤로웨이는 샌드버그가 여전히 정치에 입문할 것으로 생각한다. (글 서두에 언급한 HP의 칼리 피오리나와 메그 휘트먼도 그렇게 정계의 문을 두드렸다.) 갤로웨이의 의견과 무관하게 '포춘(Fortune)'의 보도에 따르면 샌드버그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는 일이 임박한 상황이 자신이 메타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앞으로 자선사업(philanthropy)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는 했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자신의 말이 정치적인 발언으로 해석될 것을 모를 샌드버그가 아니다.
갤로웨이가 이 말을 한 팟캐스트는 꼭 한 번 들어볼 만한데, 공동 진행자인 카라 스위셔는 샌드버그가 정치를 하지 않을 거라고 잘라 말했고, 갤로웨이는 아예 내놓고 2024년에 다이앤 파인스틴(Dianne Feinstein, 88세의 민주당 여성 상원의원으로 샌프란시스코를 지지 기반으로 활동해왔는데, 근래 들어 정신적으로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다음 선거에는 나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의 상원 자리를 노릴 거라는 예측을 했다.
갤로웨이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비유와 표현을 사용해 통찰력 있는 전망을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의 586세대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미국 베이비부머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꽤 진보적이고 열린 사고를 하지만, 그 세대에서 성공한 백인 남성의 기본적인 정서를 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런 그가 샌드버그에 관한 대화를 종합하면서 스위셔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에게 순 긍정적(net good, positive)였다고 생각하세요, 순 부정적(net negative)였다고 생각하세요?" 잘 한 일도 있었고, 잘못 한 일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합산하고 나면 결국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느냐, 부정적인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카라 스위셔는 그런 갤로웨이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완벽한 대답을 했다:
"샌드버그가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트럼프와 남자들에 대해서도 그런 질문을 던지나요? 그 사람은 임원이었을 뿐입니다. 그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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