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속 유령 ② 13개의 시나리오
• 댓글 3개 보기앞의 글에서는 ChatGPT가 가져올 수 있는 미래를 대략적으로 소개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ChatGPT의 기반이 되는 GPT-3.5의 뒤를 이을 GPT-4가 2023년에 대중에 공개된다고 한다. 그런데 GPT-4의 미공개 버전을 사용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신의 얼굴을 본 것 같다"라고 했단다. 정말로 그렇게 뛰어난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하는 생각을 무시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인류사회에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과거의 기술 혁명/혁신이 가져온 (혹은 가져오는 데 실패한) 변화를 통해 비유적으로 설명한 글이 있어서 번역했다. (원문은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인류사회가 겪었던 13개의 기술 변화를 인공지능 글쓰기에 적용해 예측해본 것이다.
참고로, 아래 글에서 이야기하는 LLM은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ChatGPT가 사용하는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을 의미한다.
1. 얼음 판매와 냉동고
The ice trade & freezers
원래 얼음은 자연에서 채취해서 배를 통해 먼 곳으로 운송하곤 했다. 얼음을 만드는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는 위험하고 비쌌고,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은 빙질도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계(냉동고)의 성능이 좋아졌고, 아무도 자연의 얼음을 채취하지 않게 되었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처음에는 신통치 않고 별로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개선이 이뤄지면서 사람이 하는 것과 동등한 수준, 그리고 그걸 뛰어넘는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다가 인간의 글쓰기는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2. 체스 플레이어와 체스 AI
Chess humans & chess AIs
체스 AI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사람이 하는 체스는 그 어느 때보다 인기.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인간보다 글쓰기를 더 잘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떤가? 우리는 인간의 글쓰기를 좋아한다. 텍스트는 (준)사회관계의 일부가 아니면 흥미롭지 않다. 웹브라우저를 만드는 회사들은 사람이 쓰지 않은 글을 발견하면 사용자에게 경고를 하는 LLM 탐지기를 웹브라우저에 넣을 것이다. 작가들은 글쓰기 연습에 LLM을 사용하게 되고, 때로는 작가들 사이에 글을 쓰면서 LLM을 사용했다는 비난이 오고 가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기도 할 것이다.
(참고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걱정할까 싶어 알려드리지만 이 글의 끝에 "이 글은 LLM을 이용해서 쓴 글입니다ㅎㅎ"라는 얘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독자와의 준사회관계를 이런 장난으로 훼손할 생각이 없다.)
3. 농부와 트랙터
Farmers & tractors
1800년 경에는 부자나라들에서도 인구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농부들의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1인당 음식 소비량이 50배 증가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우리는 비싼 재료에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다. 화이트 트러플과 새프런, 와규, 캐비어가 들어간 버거를 매 끼니 먹는 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인구의 1~4%만이 농업에 종사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한 명의 "작가"가 훨씬 더 많은 작품을 생산하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50배 더 많은 콘텐츠를 소비하거나, "더 나은" 글에 특별히 더 관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다른 일을 찾게 될 것이다.
4. 말과 철도
Horses & railroads
기차가 등장한 초기에는 말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기차의 등장으로 재화의 수송량이 크게 증가했고, 기차역과 다른 장소를 잇는 운송 수단으로 말이 더 많이 필요했던 탓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인간 작가에게 LLM이 주어지면 그들이 더 효율적인 글쓰기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 작가들이 직업을 잃지는 않는다. 새로운 글쓰기는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수요가 늘어날 뿐 아니라, 각 독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춰 제작된 글을 원하게 된다. 8백만 명이 한 달에 20달러를 내어 5,000명의 작가(기자)들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가령 뉴욕타임즈 같은) 언론 제품을 만들어내는 대신, 100명의 독자가 한 달에 200달러를 한 명의 작가에게 지불하고 자신들의 취향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을 받아보게 된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글이 그만큼 더 좋기 때문에 기꺼이 10배의 돈을 지불한다. 많은 수의 새로운 작가들이 시장에 들어오고 작가들의 총숫자는 증가한다. 그렇게 되면서 LLM은 더욱 좋아지고 모든 작가들이 직업을 잃게 된다.
5. 칼과 총
Swords & guns
총이 등장한 후 제일 먼저 활을 대체하는 이유는 활에 비해 연습이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후 총은 더 개선되면서 훈련받은 궁수보다 더 좋아진다. 그러고 나서 창을 대체한다. 그후 보병들은 작은 칼(총검)이 끝에 부착된 소총으로 옮겨가고, 그 후에는 총검이 자취를 감춘다. 이는 "생산성"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적들이 무기를 총으로 바꿀 것을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변화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처음에는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지 않는 종류의 글을 쓰는 인간들을 대체하고, 점차적으로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LLM이 쓴 글과 인간이 쓴 글을 적절히 배합한 것이 최고의 글쓰기로 받아들여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런 변화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은 LLM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가들이 만든 더 뛰어난 콘텐츠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다.
6. 칼싸움과 펜싱
Swordfighting & fencing
칼싸움은 엄청나게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재능과 훈련, 체력, 수년에 걸친 수련을 필요로 하며, 심지어 철학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제 칼(검)은 실제 전투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술을 습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들은 하나의 스포츠로 검도를 익힌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인간의 글쓰기보다 더 나아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은 "최고의 사고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녀를 글쓰기 캠프에 보내고, 자신은 여가시간에 글을 쓴다고 겸손을 가장한 자랑을 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쓰기는 텍스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상적인 용도일 뿐이며,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를 그만하게 될 것이다.
7. 수제품과 대량생산
Artisanal goods & mass production
대량생산은 양복과 자동차, 차주전자의 가격을 낮췄고, 공급도 늘려주었다. 하지만 벤틀리 자동차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수제품(artisanal goods)은 여전히 품질이 우수하고 더 고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글쓰기의 가격을 낮추고, 공급도 늘리게 된다. 하지만 최고의 인간 작가들의 퀄리티에는 절대 도달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글쓰기는 언제나 이메일이나 사내 보고서였고, 이런 글쓰기는 LLM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뉴요커(New Yorker) 같은 매체는 변함없이 인간이 쓴 글을 게재할 것이다. 정보를 복사하는 건 공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읽는 건 대부분 사람들이 쓴 글일 것이다.
8. 건축 주택과 조립식 주택
Site-built homes & pre-manufactured homes
대량 생산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활용해 공장에서 집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집은 주택 시장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의 집들이다. 미국인의 6%만이 이렇게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조립식 주택에 산다. 그리고 이 비율이 당장 바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텍스트의 가격을 낮추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기술적? 법적?) 이유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은 질이 훨씬 낮은 것으로 취급되고 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
9. 그림과 사진
Painting & photography
카메라는 실제 세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능력에서 화가들을 능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화가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림은 지위 상징(status symbol)으로 남아있고, 화가들은 사실화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대부분의 "글쓰기"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된다. 단, 직접 글을 쓸 만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외다. 하지만 그때 즈음이면 인간 작가들은 자신이 LLM보다 잘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찾아낼 것이고, 바로 그런 것들이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전적으로 우연히 높은 지위를 가진 것들을 더 선호하고, 지위가 낮은 것(글)들을 참지 못하겠다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작가들은 잘 살아남을 것이다.
10. 보행과 세그웨이
Feet & Segways
그러다가 세그웨이(Segway)가 등장해서 "인간들의 이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라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걸어 다닌다. 가끔 전동 킥보드 같은 저렴한 대안이 보이기도 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잘 작동하지만 사람들이 굳이 애써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남게 되며, 사회가 LLM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특정 영역에 국한된 LLM이 사용되는 애플리케이션은 존재하지만 "보편적(general)" LLM의 경우 우리는 관광객이나 쇼핑몰 경비원의 이동수단과 같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LLM, 아니 세그웨이를 타다가 넘어진 걸 가지고 다들 호들갑을 떤 것처럼 말이다.
11. 걸윙 도어와 시저 도어
Gull-wing & scissor doors
1950년대와 60년대에 자동차 회사들이 문이 수직으로 열리는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런 형태의 문은 차에 탄 사람이 내리기 편할 뿐 아니라 좁은 공간에도 차를 주차할 수 있고, 뒤에서 오는 자전거, 오토바이가 부딪힐 위험이 적다. 하지만 이 문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차 위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고, 사고가 나서 차가 뒤집어지면 차에 탄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따라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다.
12. 섹스와 포르노
Sex & pornography
[현 상황에 대한 설명은 19금이라 생략]
이 비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쓴 글을 엄청나게 많이 소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글들은 사람이 쓴 글을 "진짜로" 대체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이 쓴 글은 조금 덜 소비되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13. 계산원과 계산기
Human calculators & electronic calculators
원래 컴퓨터(computer)라는 말은 계산을 하는 사람(계산원)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비유에 따르면 LLM은 분명히 승리하고 모든 사람이 사용하게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 쓰는 법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LLM이 뭘 하는지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하지만 직접 글을 쓰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고 하나의 직업으로 존재하기를 멈추게 된다. 그래도 아주 작은 영역에서는 "작가들"이 글을 쓰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LLM을 또 하나의 생산성 도구(productivity tool)로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이런 일을 직접 해야 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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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사고 실험을 해본 결과 앞으로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확신은 더 줄어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불확실성의 이유만큼은 분명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물론 LLM이 얼마나 빨리, 얼마나 더 좋아질지에 대한 질문은 분명히 남아 있다. 하지만 LLM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LLM은 인간 글쓰기의 경쟁자에 가까울 것인가, 아니면 보조자에 가까울 것인가?
- 사람들은 LLM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어쩌면 LLM이 기가 막힌 소설 작품을 쓰고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 만약 사람들이 LLM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정할 경우 어떤 대응책이 가능할 것인가? LLM이 만들어낸 텍스트를 감지해낼 수 있는 머신러닝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컬러복사기의 노란 점(yellow dots, 컬러복사를 할 경우 사용된 기계의 번호를 복사물에 아주 작게 삽입하는 기술)에 해당하는 기술을 LLM 제작기업이 마련하도록 강제해야 할까? 사람이 만들었음을 보증하는 증명 절차를 만들 수 있을까? (책을 쓰는 과정을 비디오에 녹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비디오의 진위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런 것들 외에는 위의 비유들이 얼마나 유용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다른 영역들과 글쓰기가 크게 다른 점은 글은 한번 만들어지면 복제하는 비용이 0에 가깝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에 가장 가까운 예는 손으로 필사해서 만들어지던 책이 인쇄기의 등장으로 쉬워진 것이나, 컴퓨터가 책을 대체하기 시작한 예일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글쓰기가 가져올 변화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어서 위의 비유들 중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
오터레터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의 13가지 예 중에서 본인의 의견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으면 (한 개 이상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댓글로 남겨주세요! 저도 궁금하지만 다른 독자분들도 궁금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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