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현재 미국 연방 의회에서는 하원의장을 선출하는 투표가 이어지고 있다. 하원의장은 2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다수가 된 당에서 배출하고, 투표에 들어가기 전에 당내에서 물밑 합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의장 선거를 위한 투표는 원래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0년 동안 첫 투표로 의장이 결정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의 의장 선거는 다르다. 하원에서 다수당이 된 공화당 내에서 일부 극우 의원들이 단결해서 후보로 나온 케빈 매카시(Kevin MaCarthy) 의원의 의장 선출을 집요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4일째가 되는 오늘 낮에 이뤄진 12번째 투표에서도 매카시는 당선에 필요한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전인 1923년에는 9번의 투표 끝에 의장이 결정되었다.) 만약 오늘도 결정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비슷한 사례를 찾으려면 이제 18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미국이 노예 제도를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에 빠졌던 그 당시 하원의장 후보였던 너새니얼 뱅크스 의원은 무려 두 달에 걸친 133번의 투표 끝에 하원 의장이 될 수 있었다.

똑같은 결과가 계속 나오는데 두 달 넘도록 투표를 반복하는 건 미련해 보이고, 무엇보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적어도 의원들이 룰을 따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몇 명이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절차를 방해하고 있기는 해도 이는 제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군부의 쿠데타나 히틀러의 의사당 방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및 반란 시도는 제도와 절차를 무시하는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따라서 지금 미국 의회가 보여주는 싸움은 민주주의에서 종종 보게 되는 추한 장면인 동시에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뉴스를 지켜보면서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미국에서 '가장 길었던 야구 경기'로 기록된 어느 마이너리그의 한 경기 이야기. 스포츠를 거의 안 보는 내게 관심 있을 내용이 아니었지만, 순전히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바람에 듣기 시작했고, 재미있게 들은 뒤에 이것저것 관련한 내용을 찾아 확인하게 되었다. 물론 현재 미국의 정치와 전혀 무관한 일이지만 미국, 아니 영미권 사람들의 사고방식, 문화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소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래의 내용은 이 기사를 비롯해 몇 가지 소스를 찾아 본 것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내가 사는 미국의 로드아일랜드주(RI)는 보스턴이 있는 매사추세츠주(MA) 남쪽에 붙어 있다. 미국인들은 뉴욕주의 동북쪽에 위치한 여섯 개의 주를 뉴잉글랜드(New England)라 부르는데, 미국에서 유럽인들의 초기 정착지에 해당하는 이 주들은 대부분 작고 인구가 많지 않아서 각각 별도의 프로 스포츠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식축구의 경우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New England Patriots)를 응원하고, 하키에서는 보스턴 브루인즈(Bruins), 야구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Red Sox)를 자기네 주의 팀처럼 응원한다.

보스턴은 말하자면 여러 면에서 뉴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셈이다.

지역별로 주민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프로야구팀. 자기 주에 프로팀이 없을 경우 가장 인접한 지역의 팀을 응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좀 예외적이다. (이미지 출처: Vegas Insider)

그렇게 여러 주에 걸쳐 응원을 받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경우는 자기 구단 소속의 마이너리그팀(AAA, AA)을 다른 주에 두고 있는 경우가 있다. 포터킷 레드삭스(Pawtucket Red Sox)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이너리그 팀이었는데, 내가 사는 로드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포터킷에 적을 두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이너리그(AAA) 팀은 이제 보스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우스터 레드삭스(Worcester Red Sox)가 명맥을 잇고 있지만, 포터킷 레드삭스는 세계 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갖고 있다.

상대팀인 뉴욕주의 로체스터 레드윙스와 함께 공식적으로 기록된 가장 긴 경기를 한 팀이다. 1981년 4월 18-19일의 일이다.

문제가 있는 규정도 규정이다

야구는 원래 축구나 농구, 하키 같은 경기와 달리 시간제한이 없는 종목이다. 승부가 날 때까지 경기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뜻. 물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리그 별로 룰을 세운다. 가령 한국의 프로야구는 9회가 끝나도록 승부가 나지 않으면 12회까지 연장전을 할 수 있고, 그러고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무승부로 기록한다는 룰이 있다. 그렇다면 1981년에 있었던 이 경기는 어떻게 세계 최장의 경기가 될 수 있었을까?

우선 이 경기는 로드아일랜드주 포터킷 레드삭스와 뉴욕주 로체스터 레드윙스(Rochester Red Wings, 현 워싱턴 내셔널스의 마이너리그 팀) 사이에 있었던 경기다. 장소는 포터킷에 위치한 맥코이(McCoy) 스타디움. 흥미롭게도 각 팀에는 훗날 미국 야구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전설적인 선수들이 있었다. 레드윙스에는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가, 레드삭스에는 웨이드 보그스(Wade Boggs)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갈 기회를 노리며 뛰고 있었다. 지금은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이름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둘 다 20대 초의 무명 신인이었다.

4월 18일 토요일 저녁 8시를 조금 지나 시작한 경기는 그날따라 유난히 거세게 부는 바람 때문에 쉽지 않았다고 한다. 9회 말까지 양 팀은 각각 1점씩 밖에 내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심판용 공식 규정집 (1921, 1981, 2000년판)

그럼 당시 연장전 규정은 어땠을까? 몇 회까지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었고, 새벽 12시 50분에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경기를 중단한다는 커퓨(curfew, 귀가시간) 규정이 있었다. 문제는 하필 그해에 발행된 심판 규정집에는 실수로 커퓨 규정이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룰에 따라야 하는 심판으로서는 경기를 속행할 수밖에 없었고, 심판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팀과 선수들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자정을 한참 지나 22회가 되었고, 새로운 점수가 나기는 했지만 양 팀이 모두 1점씩 더 내는 바람에 2대 2 동점 상황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4월이라고 해도 새벽이 되자 선수와 관중은 추위에 떨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너무 추워서 타월을 몸에 감았고, 그걸로도 안되자 철제 쓰레기통을 가져와서 불을 지폈다. 부러진 야구 배트를 태우다가 땔감이 모자라자 경기장 나무 벤치 일부를 뜯어 태우며 몸을 녹였다.

관중은 다 빠져나가고 거의 남지 않았다. 점수도 나지 않는 마이너리그 경기를 누가 자정 넘어까지 추위에 떨며 보겠는가? 1천700명으로 시작한 관중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28명의 열성팬들만 남아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경기장 간식 판매대에서는 음식과 커피를 공짜로 나눠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끝까지 가보자'며 장난 비슷한 오기가 생겼다고 한다. 어차피 일요일 새벽이었기 때문에 출근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나중에는 구단주가 머무는 박스석으로 남은 관중을 불러들였고, 구단주가 보관하던 시바스 리갈 위스키를 나눠 마셨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야구를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경기장으로 전화를 하는 가족들이 있었고, 심지어 심판의 어머니도 집에 오지 않는 아들의 행방을 묻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누가 유권해석을 할 것인가

20회가 넘어가면서 모두들 지쳤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상태였다. 그러나 경기는 엄격하게 진행되었고, 라디오 중계도 이어졌다. (당시 방송 녹음도 남아있다.) 나중에 이 전설적인 경기에 관한 책('Bottom of the 33rd')을 쓰기도 한 뉴욕타임스의 스포츠 기자 댄 배리(Dan Barry)는 그 경기에서 포터킷 레드삭스의 우익수였던 샘 보웬 선수에게 송구할 때 실수를 가장해서 경기를 끝내고 싶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들은 보웬 선수는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이건 제 직업입니다 (This is what I do).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에 못 미치는 플레이는 하지 않아요." 그의 말을 회상하면서 배리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상대편에게 점수를 허용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30회를 넘기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 정도면 야구 역사에 남을 경기가 될 수도 있었다. 야구야 말로 기록경기 아닌가? 선수들의 결의와 프로정신으로 경기는 이어졌고, 32회 초가 되었다. 시간은 새벽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심판 규정집에 경기 시간을 제한하는 커퓨 규정이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는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사람은 야구의 인터내셔널리그 회장인 해롤드 쿠퍼(Harold Cooper)였다. 포터킷 레드삭스의 단장인 마이크 탬부로(Mike Tamburo)는 새벽 2시부터 쿠퍼에게 유권해석을 내려달라는 전화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멀리 떨어진 오하이오주 집에서 자고 있었는지 술을 마시러 나간 건지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가 유권해석을 내릴 수 없다면 경기는 계속되어야 했던 거다.

끈질기게 전화를 한 끝에 결국 통화에 성공한 게 3시 45분.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쿠퍼의 말은 이랬다. "아니, 아직도 경기를 하고 있단 말이야? 뭐? 당연히 커퓨가 있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End the fucking game!" 당장 경기를 중단하라는 말이었다. 그의 유권해석을 들은 단장은 3루심을 불러서 이야기를 전달했고, 경기는 새벽 4시 7분, 32회만에 중단되었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부활절 아침이었다. 8시간을 넘게 경기를 한 선수들은 지치고 피곤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delirious") 상태였고, 경기장에는 19명의 관중만이 남아있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매코이 스타디움에서는 야구사에 남게 된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19명에게 평생 입장권을 선물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남아있던 관중은 20명이었다. 그중에는 그날 주심이었던 데니스 크레그(Dennis Cregg)의 조카 데이빗 크레그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삼촌을 따라서 경기장에 온 데이빗은 경기를 보다가 자정을 넘기면서 경기장에서 자버렸고, 끝까지 지켜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입장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중단된 경기는 두 달 후에나 재개될 수 있었다. 어웨이팀인 로체스터 레드윙스가 포터킷을 다시 방문하는 날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6월 23일에 속개된 경기는 한 회만인 33회 말에 포터킷 레드삭스가 1점을 내면서 승리하며 마무리되었다. 4월의 경기는 19명이 남아 관람하며 끝났지만, 야구사에 최장시간 경기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퍼지는 바람에 무려 6천 명이 경기장을 찾아 포터킷 레드삭스의 승리를 지켜봤다고 한다.

1980년대 포터킷 맥코이 경기장 모습 (이미지 출처: Bost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