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전쟁 ①
• 댓글 남기기누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창의적으로 된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 평소에 사용하던 방법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낸다. 소수의 창업자가 모여 만든 스타트업이 뛰어난 인재가 넘쳐나는 대기업을 상대로 이기고, 시장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그거다. 대기업의 직원들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데 익숙하다. 무엇보다 특정 프로젝트가 실패한다고 해도 해고당하거나, 빚을 지거나, 굶지 않는다. 스타트업이 가진 약점이자, 장점은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높고,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이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을 당한 이후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뿐 아니라 전쟁을 지켜보는 서방 국가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전술을 종종 사용했다. 2022년 10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크림(크름)반도를 연결하는 크림 대교를 공격하는 데 성공했다. 폭발물을 실은 트럭이 폭발하며 옆에서 다리를 건너던 열차의 연료 차량에도 불이 붙으면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고 도로 교량의 절반 부분 2개가 무너졌다. 2018년에 개통해 푸틴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다리이고, 전쟁에서 중요할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는 보란 듯이 방어망을 뚫고 교량을 파괴했다. 이후로 이 다리는 최근까지 두 번 더 공격을 받았다.

특히 서방 세계의 IT 기술을 곁들인 우크라이나의 유연한 전술은 냉전 시대, 혹은 2차 세계 대전 때 사용하던 교리를 업데이트하지 않은 러시아를 상대로 큰 효과를 냈다. 2022년 4월에는 러시아가 보유한 두 척의 슬라바급 미사일 순양함 중 유일하게 작전이 가능한 모스크바호가 두 개의 대함 미사일을 맞고 침몰했다. 슬라바급의 순양함이라면 대함 미사일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여러 대의 드론을 띄워 방공망을 교란했고, 이 때문에 날아오는 미사일의 탐지가 늦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무기 체계를 사용했기 때문에 (건조가 중단되기는 했지만, 슬라바급 순양함도 한 척을 보유하고 있다) 모스크바호 레이더의 한계—모스크바함의 레이더가 풍랑이 심한 바다에서는 낮게 날아오는 미사일을 감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와 그걸 운용하는 러시아 해군의 허점도 알고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의 모스크바함 공격 작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드론의 사용 방법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부터 드론을 사용해서 러시아군을 괴롭혔다. 지금은 러시아에서도 드론을 제작해 우크라이나 공격에 많이 투입하지만, 전쟁 초기에 사용된 드론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에서 사용한 것이었다. 특히 2022년 뉴스에 자주 등장하던 것이 튀르키예제 바이락타르 TB2 드론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가 이 드론을 공격에 자주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바이락타르 드론에 신경이 곤두섰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이 드론들을 모스크바함 쪽으로 띄워 주의를 집중시킨 사이에 대함 미사일을 쏜 것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군의 전술적 창의력이 있다.

새로운 무기를 사용하면 초반에는 큰 효과를 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은 그 무기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인류 최초의 과학적 전술이라는 참호전(trench warfare)은 방어하는 쪽에서는 처음에 유리했지만, 정작 양쪽 모두 사용하면서 전선이 변하지 않고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차(탱크)가 등장해서 한동안 큰 효과를 봤지만, 대전차 수류탄과 바주카(Bazooka)가 등장하면서 탱크의 약점이 드러났다.
이후부터는 탱크는 더 두꺼운 장갑, 심지어 날아오는 미사일에 자동 반응하는 반응장갑으로 무장했고, 반응장갑을 무력화하기 위해 취약한 전차의 상부를 노리는 미사일이 등장하는 식으로 무기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강대국이 신무기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적의 대응책 개발을 사전에 막기 위함이다.)

이런 무기 체계의 발전 과정을 생각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드론도 점점 더 최첨단 모델로 진화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드론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드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파괴력을 확인한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서 개발하고 있고 (이런 나라들이 최첨단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도 않는다) 당장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드론을, 그것도 하루에 수십, 수백 대씩 소모해 가며 사용해야 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상황은 다르다. 유례를 찾기 힘든 심각한 경제제재를 겪고 있는 러시아는 물론이고,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군수지원이 끊길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도 최첨단 드론 개발에 돈이나 인력을 투입할 여력이 별로 없다.

물론 그렇다고 두 나라가 새로운 드론을 개발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UJ-25 스카이라인(Skyline)이나 AQ-400 사이드(Scythe), 렐레카(Leleka)-100 같은 드론들을 만들어냈고, 그중 일부를 실전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급 드론들은 값비싼 미사일과 같아서 대량 생산하지 못하고, 이때문에 분대 단위로 벌어지는 소규모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DJI의 매빅(Mavic)처럼 일반 소비자용으로 개발된 상업용 드론이다.
전쟁 초기만 해도 일반인들이 우크라이나 부대를 돕기 위해 자기가 레저용으로 사용하던 드론을 가지고 러시아 부대의 위치를 탐색해서 알려주는, 초보적인 수준의 정찰 업무에 그쳤다. 크기도 작고, 비행거리도 군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기 때문이었다. 회전날개가 네 개 있다고 해서 흔히 쿼트콥터(quadcopter)라고 불리지만, 이런 드론에 달린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휴대용 모니터나 헤드셋에 영상을 전달하기 때문에 'FPV(First Person View, 일인칭 시점) 드론'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곧 우크라이나군은 상업용 드론도 수류탄과 같은 작은 폭발물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업용 드론에는 폭발물을 운반하고 떨어뜨리는 장치가 없었지만, 그 정도는 3D 프린터로 쉽게 만들어 부착할 수 있었다. 이로써 전쟁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드론이 전쟁에서 사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가격이 수억 원 대에 달하고, 구매가 까다로운 군사용 드론과 달리, 상업용 드론은 몇백만 원 정도로, 누구나 시장에서 살 수 있다. 가격 부담이 없으니 소규모 작전에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작전 중 실종되거나 파괴되어도 전력 손실이 적다는 장점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상업용 드론을 개조해 전투에 적극 투입할 수 있었다.
효과는 엄청났다. 크기도 작고, 소리도 작아서 시끄러운 전장에서—요란한 전차, 장갑차가 주위에 있다면 드론의 소리를 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발견되지 않고 적의 머리 위까지 다가가 폭탄을 투하했다. 러시아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공포에 빠졌다. 증언에 따르면, 언제 소리없이 다가올지 모르는 드론의 존재는 병사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아래 영상을 보면 폭탄을 부착한 매빅3 드론이 러시아 병사들 위에 떠서 투하 지점을 결정하는 동안 병사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영상에는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등장하니, 시청에 주의를 당부한다. 유튜브가 허용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내용상 이걸 꼭 봐야 하는 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 기술이 가장 좋아서가 아니다. 가령 디지털 카메라의 화질은 필름 카메라보다 좋지 못했지만,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를 시장에서 몰아냈다. 최고의 화질을 얻으려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야 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돌아선 이유는 필름을 사고 인화하는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았고, 프로 사진작가가 아닌 일반 사용자가 보기에 "그 정도면 충분한(good enough)" 화질이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이 값비싼 드론보다 상업용 드론에 끌리게 된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적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드론 전쟁 ②'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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