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는 2024년 대선 출마 의사를 사실상 밝힌 상태다. 물론 공식적인 선언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식적인 선언은 그 자체로 잘 준비된 일종의 선거운동 이벤트이기 때문에 언론은 공식 발표 이전에 후보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돌면서 공개된 연설을 하는 모습을 통해 출마 의사를 확인한다. 따라서 펜스의 출마 의사는 최근 그가 하고 다니는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펜스는 지난주 화요일(7월 26일) 한 컨퍼런스에서 연설자로 나서서 자신은 도널드 트럼프와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초점(focus)을 어디에 두느냐가 다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선거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라고 했다. 펜스의 이 말이 아직도 지난 2020년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를 향해서 한 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대선 출마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이제 와서 굳이 이런 말로 트럼프와 자신을 구분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펜스는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재 2024년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1위 도널드 트럼프, 2위 론 드산티스, 3위 마이크 펜스다. 하지만 펜스가 트럼프의 당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듣는 공화당의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출마하는 이유는 미국의 대선 과정이 길고 예측 불허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패하더라도 자신의 프로파일을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에 동의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말 중간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공화당 우세주(red states)에서 경선에 참여하는 공화당 후보 중 절반 이상이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피로 현상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틈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세 명 사이에서 흥미로운 역학관계가 보인다. 트럼프와 드산티스는 서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린다. 트럼프는 드산티스를 경쟁자로 띄워주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고, 드산티스는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데려와야 하기 때문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고 외부적인 요인으로 트럼프의 출마가 어려워지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3위인 펜스는 그럴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기 때문에 트럼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이데올로기적으로는 트럼프와 같지만 포커스가 다르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언론은 이런 펜스의 행보가 (펜스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드산티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드산티스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 즉 2020년 선거 얘기 좀 그만하라는 말을 펜스가 대신해주면 드산티스는 손을 대지 않고 코를 풀 수 있다.

드산티스의 '매력'

그렇다면 트럼프를 충실하게 따르던 지지자들이 론 드산티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계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지각변동(the great realignment)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로 공화당은 백인 부자와 기득권의 당, 민주당은 노동자와 흑인, 히스패닉과 같은 소수인종이 지지하는 당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트럼프의 등장 이후 이런 과거의 정체성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공화당을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공화당이 노동자 계층을 위한 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해서 그들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백인의 울분(white grievance)을 대변하는 데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졸 학력의 백인 남성들은 미국 경제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이다. 공장이 바다 건너로 이전되고 미국이 지식경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학을 가지 않은 사람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일자리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자인 트럼프는 그런 백인들의 울분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었을까? 바로 지식인, 엘리트, 그리고 기성 언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트럼프가 2016년 선거 기간 중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을 다루는 가장 적나라한 방법은 '언론이 나를 공격하는 건 당신들(블루칼라 백인들)을 공격하는 것'이라는 프레임이었다. 폭스뉴스와 일부 극우 매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사를 자신의 적으로 만들면 자신의 지지자들이 기성 언론의 비판적 보도에 귀를 막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성 언론을 공격하는 것은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런데 그걸 트럼프보다 더 잘 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건 드산티스다. 아래의 두 영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 영상은 CNN의 기자가 플로리다주에서 백신 보급에 문제가 생긴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하는 장면이다. 기자는 백신 접종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을 조목조목 나열하는데 드산티스는 기자의 말을 끊고 대답을 하기 시작한다. 기자가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며 말을 계속 잇자 드산티스는 "질문을 하려는 거냐, 연설을 하려는 거냐"라며 사납게 다그친다. 그뿐 아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느냐"라고 묻자 드산티스는 "당신이 취재한 결과 원인을 찾았느냐"라며 시종일관 기자에 적대적이다.

두 번째 영상은 플로리다주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어린 학생들에게 성 정체성과 관련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든 것과 관련해서 기자를 다그치는 장면이다. 이 법안은 흔히 'Don't Say Gay Bill(게이 언급 금지 법안)'이라 불리는데, 기자가 질문을 하면서 법안의 공식 명칭 대신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드산티스가 화를 내는 장면이다.

드산티스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성 언론에 대해 분노하는 것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게 아니다. CBS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인 60 Minutes는 드산티스가 백신을 플로리다주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특정 매장(Publix)에 특혜를 주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드산티스는 그 보도가 나오자마자 반박을 하고 오보임을 밝히는 증거를 내놨고, CBS는 잘못된 보도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위의 두 영상이나 CBS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트럼프(혹은 드산티스) 지지자들에게 통쾌한 장면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루퍼트 머독의 변심

물론 미국 보수 언론의 대명사인 폭스뉴스(FoxNews)는 다르다. 드산티스는 폭스뉴스에게만큼은 애정을 갖고 있다. 진보 언론은 물론 대부분의 기성 언론사 기자들과는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지만 폭스뉴스에는 자주 출연한다. 하지만 이는 짝사랑이 아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에서 드산티스로 말을 갈아탈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래 폭스뉴스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2016년 초만 해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비판적인 보도를 내곤 했던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경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태도를 바꿔 그를 전적으로 지지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시청자로 흡수해 지난 몇 년 간 '트럼프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트럼프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줄어들었다. 이런 태도의 변화는 결국 사주인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의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특히 On The Media의 설명에 따르면 머독이 소유한 뉴욕포스트(New York Post)와 월스트리트저널은 1.6 의회 난입 사건을 두고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논조의 칼럼을 같은 날 게재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과거 머독 소유의 언론사들의 행동을 보면 이는 사주의 생각 변화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기자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머독이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머독은 꾸준히 그런 역할을 해왔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고, 공화당 주류의 승리를 점치고 그들을 지지했던 2016년 대선은 바로 트럼프 때문에 헝클어졌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드산티스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도 만약 2024년 경선에서 트럼프의 승세가 분명해지면 머독은 그를 전력을 다해 지지할 게 분명하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트럼프와 거리를 두려는 태도가 분명하고 그 수혜자는 드산티스로 보인다.

울분과 분노의 정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산티스에게 끌리는 사람들은 "울분에 찬 백인들"이고, 드산티스는 기성 언론과 엘리트 계층을 상대로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지자들의 영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에는 문제가 있다. 선거 승리에 중요한 중도층의 외면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드산티스는 이 문제를 트럼프와 동일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 중도층을 끌어안기보다는 그들이 정치에 관심을 잃게 만들고, 대신 자신의 지지층을 분노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해서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런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트럼프가 2016년에 당선될 수 있었던 건 각종 가짜 뉴스 캠페인을 통해 힐러리 클린턴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중도층의 투표율을 떨어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0년에 패배한 이유는 같은 방법이 조 바이든에게 먹히지 않았던 탓이다. 따라서 드산티스로서는 열혈 지지자들의 분노에 올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이고, 어느 단계에서는 트럼프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중도 보수 유권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면 더 큰 문제는 본인에게 있을지 모른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뉴요커 기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를 가까이에서 아는 사람들은 그가 사람들과 대면접촉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분명히 똑똑한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호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의 보수 칼럼니스트인 데이빗 브룩스(David Brooks)는 정치인들은 유권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일반인들은 흉내내기 힘든 수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재주가 있다는 거다.

반면 드산티스를 언급하는 거의 모든 기사들이 드산티스의 냉담한(aloof) 태도를 큰 단점으로 지적한다. 어떤 지적에 따르면 "리처드 닉슨 이후로 그렇게 인간적인 친근함이 없었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트럼프의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적어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웃긴(funny) 면이 있는 사람인데, 드산티스는 항상 화가 나고 싸우는 투사의 이미지밖에 없다는 건 백악관을 바라보는 정치인으로서는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론 드산티스는 영리하다. 트럼프의 지지자를 데려오기 위해 트럼프의 제스처도 흉내 내는 사람이 앞으로 2년 넘게 남은 시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2024년에 있을 공화당 경선의 승리는 트럼프가 어떤 결심을 하느냐에 달려있겠지만, 그가 나서지 않고 드산티스가 트럼프 지지자들을 물려받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드산티스도 단순히 백인의 울분에만 기대어 본선 승리를 기대하지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