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미국 정부가 베네수엘라의 범죄자들을 추방한다는 소식을 크게 환영했다. 이를 통해서 트럼프는 '한다면 하는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정치적 점수를 얻는 대가로 미국이 무엇을 포기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조치가 과연 미국은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는 외적법(Alien Enemies Act) 적용의 타당성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 법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쳐 범죄 여부를 확인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이 억울하게 체포된 사람들은 무죄를 증명할 기회가 없었다. 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과 지역 경찰은 베네수엘라 출신 중에 몸에 특정 타투(문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트렌데아라구아의 조직원이라고 판단하고 체포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모든 타투가 범죄 조직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미술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자기표현을 위해 타투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타투를 하기도 했는데, 경찰과 단속반원들은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잡아들였다. 이들은 미국에서 체포되었지만 재판 과정 없이 국외 추방을 당하게 된 것이다.

트렌데아라구아 조직원들의 것으로 알려진 타투
이미지 출처: Telemundo

이들은 베네수엘라 출신이니 국외 추방을 한다면 본국인 베네수엘라로 보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반미 좌파 성향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은 자국 출신 이민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트럼프의 추방에 동의하지 않았고, 트럼프가 그들을 강제 송환한다고 해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불법 이민자 추방이라는 칼을 빼 들었지만 휘두를 수 없게 된 트럼프 행정부는 이들을 받아 줄 다른 남미 국가를 물색했고, 엘살바도르가 눈에 들어왔다. 엘살바도르의 초대형 교도소는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은데, 트럼프는 600만 달러(우리 돈 87억 원)를 주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추방하는 260여 명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을 1년 동안 수용해달라고 요청했고, 엘살바도르의 정부가 이에 동의하면서 '거래'가 성립된 거다.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정부효율부까지 만든 트럼프가 이렇게 큰돈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같은 인원을 미국의 교도소에 수용할 경우 비용은 두 배가 되기 때문이고, 일단 미국에서 쫓아내야 국민에게 '성과'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들을 엘살바도르로 보내기로 계획한 날이 열흘 전인 3월 15일, 토요일이었다. 트럼프는 이날 (앞의 글에서 설명한) 1798년 외적법을 적용해서 이들을 추방한다고 발표했다.

엘살바도르의 초대형 형무소
이미지 출처: Wikipedia, NPR

이 소식을 들은 ACLU는 곧바로 피해자들을 대신해 법원에 정지명령을 신청했다. 이게 'J.G.G. 대 트럼프(J.G.G. v. Trump)'라는 사건이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벽한 준비를 마친 ACLU는 웹사이트에 이 사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깔끔한 페이지까지 올려놓았다. ACLU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침은 전시(戰時)에나 사용할 수 있는 법의 한계를 무시했고, 이민법이 정하는 절차와 보호 규정을 위반했다고 고발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워싱턴 D.C. 소재 연방 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James Boasberg)는 화상 회의로 고소장을 받은 즉시 구두로 임시제한명령(temporary restraining order)을 내렸다. 이 재판을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인들의 추방을 금지하는 이 명령은 연방 정부가 집행을 서두르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판사의 명령을 두고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ACLU의 변호사들은 보스버그 판사에게 "추방되는 이민자들을 태운 비행기 2대가 이미 이륙했다"고 했고, 이 말을 들은 판사는 "비행기의 항로를 되돌려서라도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왜냐하면, 비행기가 엘살바도르에 착륙해서 이민자들이 비행기에 내리는 순간, 미국 법원의 관할권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명령을 내린 것이 토요일 저녁 6시 45분이다. 일단 구두로 명령을 내린 보스버그 판사는 한 시간이 채 안 된 7시 26분에—이번에는 서면으로—연방 정부가 외적법을 사용해 추방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이미 출발한 두 대에 이어 세 번째 비행기를 이륙시켰다. 연방 판사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미국에서 추방당한 260여 명은 비행기 3대에 나눠 엘살바도르로 보내졌다.
이미지 출처: Bloomberg

트럼프에게 돈을 받고 베네수엘라 사람들을 수용하기로 한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Nayib Bukele) 대통령은 다음날인 16일, 일요일 아침에 소셜미디어(X)에 보스버그 판사가 정지 명령을 내린 것을 보도하는 미국 매체를 캡처해서 "Oopsie...Too late 😂 (앗, 너무 늦었네)"라며 조롱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하지만 부켈레 대통령의 이런 무례한 메시지도 이후 이어진 트럼프 행정부의 법원 공격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었다.

출처: 부켈레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계정

트럼프 행정부는 처음에는 보스버그 판사의 결정이 비행기가 미국의 영공을 벗어난 후에 나왔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을 이행할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댔지만, 세 번째 비행기는 판사의 명령이 나온 후에 이륙했기 때문에 명백한 명령 거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를 알게 된 보스버그 판사는 3대의 비행기가 정확하게 언제 이륙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 요구에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보를 줄 수 없다"라며 내놓고 법원의 명령을 무시했고, 보스버그 판사가 "과격한 좌파 미치광이"라며 소셜미디어에서 인신공격을 시작했고, 판사의 탄핵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보스버그는 트럼프의 주장처럼 과격 좌파 판사일까?

62세의 보스버그 판사는 예일대 법대 출신으로 재학 당시 현재 연방 대법관인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의 룸메이트였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연방 검사로 5년 동안 일하면서 살인사건을 전담했는데, 한 번도 패소한 적이 없었을 만큼 유능한 검사였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를 트럼프가 "좌파"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를 연방 판사 후보에 지명한 사람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일 뿐 아니라, 2021년 1월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침입 난동 사건을 비롯해 트럼프와 관련된 사건을 재판하면서 그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일 거다.

트럼프와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
이미지 출처: CNN

하지만 트럼프의 보스버그 판사 공격은 보스버그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미국의 사법부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트럼프의 외적법 적용은 이 오래된 법의 너무나 지나친 확대 해석, 적용이기 때문에 보스버그가 아닌 다른 판사가 이 사건을 맡았어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가 이민자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한 것은 처음부터 법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으로 봐도 지나치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그런 태도는 트럼프의 국경 문제 총책임자인 톰 호먼(Tom Homan)의 말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멈추지 않겠다. 나는 판사들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좌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대통령도 아니고 행정부 소속의 간부가 이런 말을 거침없이 할 만큼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결정은 대통령이 내리고, 대통령이 내린 결정에 법원은 반대할 수 없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부통령인 J.D. 밴스는 “행정부의 정당한 권한을 판사들이 통제할 수 없다"며,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미국 헌법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헌법적 위기'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했는데, 행정부가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기로 작정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방 판사의 탄핵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사법부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연방 대법원장 존 로버츠(John Roberts)가 이례적으로 트럼프의 행동을 제지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판사를 탄핵할 수 없다는 건 지난 2세기 넘게 확립된 원칙"이라면서 "항소법원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로버츠의 말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까? 로버츠 대법원장과 보수 대법관들은 작년 여름, 대통령이 재임 중에 한 공적인 행위에 대해서 광범위한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트럼프가 지지자들로 하여금 헌법 기관인 의회를 공격하라고 부추긴 것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 행동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었다.

트럼프는 지난달 의회 연설을 마친 후 참석한 로버츠 대법원장과 악수하면서 "고맙다(Thank you)," "잊지 않겠다(Won't forget)"라고 말한 것이 마이크에 잡혔다. (아래 영상) 많은 미국인이 이 장면을 미국의 사법부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제왕적 대통령에 굴복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미국의 법원이 과연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을까?

트럼프 2기는 1기 때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는 과거에도 무모한 행동을 했지만, 이렇게 내놓고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며 독주하지는 않았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자기 권한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렇게 빠르고 노골적으로 행동한 대통령은 없었다.

뉴욕대학교에서 파시즘과 권위주의를 연구하는 루스 벤 기아트(Ruth Ben-Ghiat) 역사학 교수는 트럼프는 자기 개인의 권력(personal power)를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말 두려운 것은 현재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규모와 속도"라고 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 만큼 많은 곳에서, 너무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

엘살바도르에 도착한 베네주엘라 이민자들은 법적 절차 없이 곧바로 투옥되었다. 과거 한국의 삼청교육대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미지 출처: AP News